#45 잘려 나가는 봄
식목일은 나무를 심는 날이지요. 겨울이 지나가고 봄을 맞이하여 사람들은 나무를 심습니다. 하지만 식목일이 무색하게 많은 나무가 흉측하게 잘려집니다. 군사 훈련처럼 대대적으로 전격 시행되는 가로수 가지치기이지요.
봄바람이 부는 한국의 길거리에는 굉음이 들립니다. 시끄러운 전기톱 소리와 함께 가로수들이 싹둑싹둑 잘려 나가지요. 봄은 가로수에게 푸른 잎과 꽃을 피우는 아름다운 계절이 아니라 나무의 팔다리, 몸통이 잘려 나가는 참혹한 계절이 되기도 합니다.
과거 중고등학교 남학생들은 머리를 짧게 잘라야 했지요.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고등학교 중간고사 때 시험지를 받아들고 문제를 푸는데, 교문을 열고 선생님이 바리깡을 들고 들어오시더군요. 그 바리깡으로 앞머리가 조금 긴 친구들의 머리를 앞에서부터 허옇게 길을 내었습니다. 시험지 위로 떨어지는 머리카락, 앞머리 가운데에 공사장 도로 나듯이 난 바리깡 자국. 왜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분노가 일었지요. 어떤 친구는 그 조치에 저항하겠다고 흉측하게 잘린 두발 상태로 며칠 동안 안 자르고 다니다 더 혼나기도 했지요. 그 당시 썼던 검은 교모를 깊이 눌러쓰고 등하교를 했던 친구 모습이 기억납니다.
가로수가 가지치기를 넘어 벌목 수준으로 싹둑 잘려 나가 겨울을 겪고 봄을 맞는 것을 보면 그때 생각이 납니다. 바리깡으로 빡빡머리가 될 수밖에 없었던 친구의 모습과 같이 전기톱에 참혹하게 잘려 나간 가로수의 잘린 단면은 슬프다 못해 분노를 일으킵니다.
이런 것 하나 제대로 관리 못 하나 싶지요. 브라질 아마존 숲이 벌목되는 뉴스를 접하면서 그들의 야만성을 비판하지만, 나무가 잘려 나가는 야만성은 지금 한국에서도 매년 일어나고 있지요.
외국의 공원이나 길가에 우거진 나무들 모습이 부럽습니다. 우리나라도 이제 공원을 잘 가꾸는 지자체들이 많이 생기지만, 가로수의 부끄러운 가지치기, 아니 벌목 현장은 내년 봄에도 또 봐야 하는지요.
1990년대 두발에 대한 폭력이 삼십 년 지난 오늘 볼 때 너무도 우스워 보이는데, 2021년 나무에 대한 폭력이 이삼십 년 후에는 얼마나 우스운 사진이 되어 있을까요.
잎도 나고 꽃도 피는 나뭇가지를 보길 원합니다. 싹둑 잘려 아픈 몸통만 간직한 가로수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