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이상훈


가로수 나무가 군데군데 밑동을 드러내고 넘어져있다. 얼마만큼의 비바람이 휘몰아쳤으면 저리 됐을까! 솔직히 그 당시에는 그런 생각을 가질 새가 없을 정도로 폭우가 바람과 함께 우산의 앞뒤 옆 모두에서 부딪혀 왔었다.


어젯밤부터 내린 비가 아침 세상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폭우는 빗방울의 간격이 너무 좁아 어쩌면 안개 같이 하얗게 보일만큼 거대한 물 덩어리였다. 바람과 물덩어리는 나뭇가지를 찢고 사정없이 흔들어 댔다.

도로 위에서는 물덩이가 하얗게 바닷물결처럼 으르렁거렸다.


내가 20대 직장 초년기의 어느 날에도 비가 쉼 없이 내렸었다. 15분 정도 걸어가면 영등포역이 위치한 곳에. 살 았는데 맑은 날의 경우에는 운동 삼아 혹은 아침 풍경을 보고자 역까지 걸어서 출근하곤 했다. 전철은 용산역까지 네 정거장 정도를 가면 되었으므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당시에는 신길역이 없었다.


비가 내리는 날은 걷는 것이 예외였다.

비를 뚫고 전철역까지 가기에는 비바람을 이겨낼 재간이 없기에 말이다.

출근길에 비가 내린다. 아니 새벽부터 장대비가 하늘이 뚫린 것 마냥 쏟아져 내리고 있다. 그날은 불가피하게 집 앞 버스정류장으로 나섰다. 비가 많이 내리고 자가용이 일반화되지 않았을 때여서 정류장은 우산행렬이 길게 늘어서 있다.

이런 날은 우의를 입는 게 훨씬 낫다. 왜냐하면 비바람으로 인해 하의를 막론하고 옷 전체를 포기해야 할 상황이기 때문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보랏빛 무늬를 가진 76번 버스가 도착했다. 차 안은 이미 만원이었다. 버스 안은 뜨거운 열기와 땀 그리고 빗물로 꿉꿉하기가 이를 데 없다. 아직도 한강대교를 건너려면 30분 이상 필요하고 지나야 할 정류장 수도 10곳이 넘는다.

서울역 방향으로 노량진을 지나 한강대교를 건너면 삼각지에 이르기까지 모두 2개의 육교가 있었다. 사무실로 가려면 첫 번째 육교를 건너야 했다. 또 육교 밑에는 약국과 버스 정류장이 있었다. 예전에는 용산역에 군인들을 위한 TMO가 있었고, 많은 군장 용품점이 역 주변으로 성시를 이루었었다. 지방으로 가는 사람들이 이용하는 용산 버스터미널도 있고 해서 사람들의 왕래가 번잡한 곳이었다. 용산 버스터미널이 강남 쪽으로 이전하고 난 후부터는 사람의 이동 급격히 감소했는데 그럼에도 많은 수의 다방은 그대로 남아 건물마다 두서 개씩 간판을 붙이고 있었다.

육교를 건너 사무실이 위치한 건물에 들어서니 그동안 빗소리 때문에 듣지 못했던 소리가 구두에서 들린다. 찌걱찌걱하고 말이다. 양말과 구두 표면 사이에서 나는 물 마찰 소리이다. 사무실 책상에 앉아 구두를 벗어 보니 양말이 흠뻑 젖어 있다. 쾌쾌한 발 냄새와 구두 가죽에 나는 냄새가 엉켜 나온다. 구두 안에 신문지를 구겨 넣어 물기를 잡고, 화장실로 향한다. 빗물로 화장실 안이 꼬질꼬질하다. 그나마 맨발로 뽀송뽀송한 슬리퍼를 신으니 5층을 오르면서 느꼈던 꿉꿉함은 사라지고 맨발의 시원이 느껴졌다. 그때 사무실에 에어컨이 있었다고 생각은 나는데 정작 에어컨이 작동을 했는지 어땠는지 기억은 없다. 칸막이로 둘러쳐진 내 자리까지 냉기가 오지 않았고, 아마 에어컨 대신 매직으로 신문이라고 큼직하게 글을 써 놓은 스탠드 선풍기가 기억에 남는다. 선풍기 앞에서 머리와 셔츠 등을 말리고 대충 자리에 앉아 본다. 창밖은 빗방울이 여전히 세차게 부딪히고 있었다. 빗소리를 들으며 세면대에서 양말을 벗어 빨고 책상 한편에 널었던 기억이 엊그제 같다.


비가 오면 술 생각이 많이 나는 것은 그 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아마 그날 퇴근은 무엇을 직감했는지 퇴근시간을 알리자마자 집으로 향했던 것 같다. 또 많은 직원들이 아침에 물폭탄 속에 지각을 했기에 저녁에는 모두 집에 가기 바빴었다.

무엇을 예감은 했을까.

설마 신축 다세대 주택에 무슨 일이야 있으려고....

집에 도착해 문을 열고 들어서서 전등불을 켜고 부엌을 지나 안방에 들어서 보니 방바닥에 물이 한가득이다. 새집에서 이런 일이 생길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 두꺼운 벽을 뚫고 이렇게 빗물이 안방으로 들이닥치다니 말이다. 마른걸레로 방바닥과 벽을 대충 훔쳐내니 빗물이 더 이상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텔레비전과 책장 그리고 책꽂이와 그 안의 책들도 빗물을 피하지 못했다.



오늘 아침 뉴스에 보면 영화 기생충에서 보았던 지하셋방 보다 더 처참하게 거기에 살던 이들이 죽음을 맞았다. 대통령은 또 그것을 배경으로 사진을 남긴다.

빗물의 지하셋방 주인은 신용불량자가 된 지 오래였다. 그 집을 구할 때는 나는 20대 중반으로 어렸고, 무엇이 중한지를 모를 때였다. 사람들이 살고 있으니 무슨 문제가 있겠냐 하는 생각으로 편안한 맘이 있었다. 세를 놓는 이는 건축주였는데 집주인으로부터 모든 것을 위임받았다면서 집주인의 인감을 가지고 빈 방 하나를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었다. 집주인의 어머니는 4층에 사셨지만 집주인인 아들로 인해 매번 사채업체 등에게 곤혹을 치르는 경우가 많았다. 그 당시에 보면 집만 있고 집 지을 돈이 없는 사람들에게 다세대 주택을 지어 주건 환경을 개선하고 전세금을 받아 건축비를 충당하면 충분히 이익 난다고 꼬드기는 경우도 많았다. 그 집도 그런 사정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 분명했다.

전깃불을 켜지 않으면 눈뜬장님 모양 벽을 더듬어 스위치를 찾아야 하는 집, 그래서 빛을 조금이라도 얻으려면 부엌과 방 사이의 문을 열어 놓아야 했다. 창문은 안방에 만 있었고 옆집과의 거리가 50센티미터 내외로 바짝 붙어 있어 바람도 잘 들지 않았다. 그런데 빗물이라니....

걸레로 방바닥에 흥건하게 고인 물을 닦아내고 밤새 물이 들어오면 어쩌나 하며 밤을 지새웠는데 새벽에 화장실에 가보니 화장실 변기 위로 오물이 솟구쳐 오른다. 지하에 신혼부부 두 가구가 더 있었는데 처지가 비슷할 듯했다.

너무 많은 양의 비가 끊임없이 내리다 보니 요즘은 덜하지만 그 당시 매설된 우수관은 용량이 적은 편이어서 맨홀마다 물이 뿜어져 나왔었다. 우수관이나 하수관도 일 년에 한차례 이상 이물질 제거 작업을 하지 않으면 적은 양의 비에도 금방 기능을 상실하기 일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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