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잊고 사는 것이 보편적이다.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아웃 오브 사이트 아웃 오브 마인드라고 하는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진다는 괜한 말이 아니다. 새로운 것, 아름다운 것을 보면 잊히지 않을 만큼 기억에 남기도 하지만 자연스레 잊어지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울긋불긋한 단풍이 멋들어지게 타오르고 있는 경치를 보고 있자면 자신도 모르게 연신 감탄사를 연발한다. 얼마나 나의 마음을 풍요롭게 해 주었으면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감탄을 할까 모르겠다. 그 순간이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는 착각을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오래도록 추억으로 기억에 남을 것이다. 요즘은 출근을 승용차와 지하철 그리고 도보를 혼용한다. 여기에 도보를 넣은 것은 지하철역 한 정거장 정도를 걸어서 출근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다 졌던 나무에 잎이 돋고 꽃이 피고 단풍이 들고 그런 과정을 몇 년 동안 반복해서 보았다. 요즘은 보도 위에 나뭇잎이 뒹군다. 아직 그렇게 기온이 내려가지 않았지만 돌다리 아니 돌 징검다리라고 표현하는 게 적절하다. 그곳을 걷자면 차가운 수온에 물소리가 더 청량해진다. 여름 한낮의 물소리와는 분명 차이가 난다. 아마 공기 밀도가 달라지고 수온이 달라져 귀에 들어오는 소리가 차이를 보이는 것 같다. 많은 철새들이 날아들고 광명시와 금천구에서 가꾸어 놓은 수변공원의 꽃들도 철철이 색을 달리한다. 이렇게 아름답고 귀한 소리도 어느 날인가는 더 이상 듣지 못할 수도 있지만 언제까지 보고 듣겠다고 생각도 안 해 봤고 내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사람관계는 좀 다른 듯하다. 모두가 자연이고 모두가 자연의 섭리에 따라야 하는데 말이다.
어린 시절 친척집에라도 잠시 가 있으면 내가 없는 부모님 집에서 큰일이 날 것만 같았다. 그렇게 가고 싶어 밤새 이불속에서 울면 같은 방에서 주무시던 할머니께서 들으셨는지 할머니께서 백부님에게 나를 집에 데려다 주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리워한다는 것은 좋은 것 같으면서 이처럼 참 쓸데가 없는 것 같다. 그립다고 해서 막상 보면 별 효용을 갖는 것도 아니고 그냥 일상의 일부였던 것을 단지 떨어져 있으면 그게 그렇게 서러울 수가 없다. 영영 헤어질 수도 있다는 불안감 때문에 밀려오는 분리불안일 수도 있다. 어린 시절에는 특히 그랬다. 눈에 보이는 안심이나 소리에 의한 안심 등이 있기에 그럴 수 있을 듯싶다. 그립다는 관계는 어쩌면 일방의 희생이 필요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다면 단지 부모라고 해서 마냥 그리울 수는 없지 않을까. 나를 일방적으로 보호해 주는 이에 의지하려는 것이고 길러지지 않은 자아에서 파생된 것일 수도 있다. 어쨌든 부모와의 관계는 자식의 애착형성단계에서는 참 중요한 일이다.
내가 떠나고 당신이 떠나고의 문제는 다 자란 성인의 문제이고 아동의 애착형성시기에는 부모와의 관계가 참 중요하니 말이다. 이 시기에 애착형성관계를 잘 맺으면 헤어짐도 잘하는 것 같다. 분리불안증도 크지 않다는 연구도 있다.
그렇지만 50~60년대의 아이들은 부모와의 애착형성이 그리 잘 되어 있지 않은 비율이 높을 것 같다. 모두가 먹고살기에 바빠 어린아이들도 일찍부터 사회성을 기르기에 바빴다. 많은 형제와 사촌들 사이에서 경쟁하고 집안일을 도와야 했으므로 다른 분야가 훨씬 더 발달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 당시의 우리 집은 예의와 염치를 강조했으니 갖고 싶어도 갖고 싶다 말도 못 하고 보고 싶어도 보고 싶다고 말도 못 했을 수도 있다. 부모님들도 마찬가지이다. 어른이기에 참아 내야 하는 것들이 많았다. 그런 현상은 노랫말에서도 가끔 찾을 수 있다. 특히 음식 관련 노래에도 그런 것들이 내포되어 있다. 김창완 노래 어머니와 고등어도 그렇고 음식은 보이지 않는 정을 대변하기도 했다.
기억에 남는다고 다 그리울 것이냐 그것은 또한 아니겠다. 아름다운 것이라고 모두에게 똑같이 기억되지도 않는다. 기억에 남는 것들도 두뇌가 젊어 활발하게 할 때 더 기억에 남는다. 그래서 옛사랑이 더 기억에 남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지나간 것에 대하여 잊혀지고 잊고 하는 일들은 분명 정상이고 과도한 반응은 집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