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 꿈을 꾸면 좋다던데 하며 어린 시절 장사를 나가던 어머니가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똥이 귀한 재물과 같은 의미로 쓰였다는 게 흥미롭습니다. 아이들에게는 더럽게만 보였을 똥이지만 비료가 흔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개똥조차 귀하게 여기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똥과 똥을 관리하는 것은 매우 불결하고 비위생적이라는 느낌이 많지요. 일을 보는 뒷간조차 두려움의 대상이었습니다. 어둠침침하고 귀신이 나올 듯 한 고요함 속에 감각에 의해서만 일을 보아야 했던 곳이 뒷간 즉 화장실이었습니다. 요즘 같이 편하게 뒷일을 보고 비데기로 뒷물도 했던 때가 과거에 또 있었을까요? 화장실이 깨끗해지고 사용 또한 많이 간편해졌는데요. 우리 기억에서의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화장실은 두려움의 장소였습니다. 간혹 수학여행을 가서 보게 된 유명 사찰에 해우소라고 쓰인 것도 본 적이 있는데 그 단어는 현상보다는 철학적인 뜻을 더 담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서민 가정의 화장실은 마당 한편에 벽돌과 슬레이트 지붕으로 만들었습니다. 도시에서도 대문 옆에 벽돌과 콘크리트 타설 지붕으로 만든 화장실이 많았습니다.
정화조도 지하 깊숙이 따로 매설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직사방식의 똥통을 지하 면에 설치하고 그 위에 시멘트로 발판을 만들어서 사용했습니다. 시멘트 발판에 사각의 구멍을 낸 것이지요. 과거 어느 사이 흔하게 사용되다 잊히고 있는 흰색의 앉은뱅이 변기도 없었습니다. 어두컴컴한 사각 구멍에 일을 보는 것임으로 요즘 아이들은 무서워서 울며불며 화장실 가기를 거부하기도 했습니다. 시멘트 바닥에 앉은뱅이용 변기와 벽돌로 쌓아 올리고 나무창문을 내고 전등을 설치한 화장실은 그나마 양반이었습니다. 시골의 경우에는 창고나 헛간 한편에 어두컴컴한 공간에 일부 벽을 세워 만든 화장실이 많았습니다. 흙벽으로 만든 화장실도 많았는데 흙벽이 풍화 작용으로 녹아내리고 천장에는 거미줄과 뒷일 보던 앞쪽으로 사각으로 잘라 놓은 신문지가 화장지를 대신했지요. 화장실문도 규격이 일정하지 않은 송판으로 대충 만들어 놓아 문틀과 맞지 않고 문을 여닫을 때마다 경첩이 삐꺽거렸습니다. 화장실 문이 거적으로만 되어 있고 곳곳에 사방 하다 못해 천장까지 구멍이 숭숭 뚫린 뒷간 혹은 측간도 많아 겨울에는 찬바람에 일을 보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어린 시절 아무리 큰집도 화장실은 1-2개에 불과했습니다. 내가 고등학교 때 자취했던 집도 예닐곱 가구가 살았지만 화장실은 수돗가 옆 안마당 한편에 딱 하나가 있었습니다. 주인집 식구는 부부 두 명하고 아이들이 세 명 총 다섯 명이고, 세 들어 살던 7 가구에도 각각 두 명 정도 살았기에 총 19명의 사람이 화장실을 가지고 볼 일을 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물론 지금과 같이 목욕을 화장실에서 하거나 그러지는 않아 번잡도 비교는 맞지 않기도 하지만 서두요. 고등학교 시절에도 분뇨수거차가 와서 배설물을 처리하곤 했는데 화장실이 깊게 비어지면 뒷일을 볼 때 똥 덩어리가 떨어지면 깊은 울림과 똥물의 튀김이 동시에 벌어집니다. 아마 피부나 옷에 묻기도 하지요. 그런 경험을 몇 번하면 이제는 똥물 치우는 일이 있은 며칠간은 커다란 신문지를 들고 화장실로 향합니다. 그걸 화장실 깊은 곳에 던져 넣어 똥물이 튀는 것을 막아보자는 심산이었습니다.
실은 화장실의 변천사를 쓰려고 했던 것은 아니고 예전 우리 가옥 곳곳에 숨어 있는 귀신 이야기를 하고자 했는데 엉뚱한 곳으로 빠졌습니다. 보통 부엌에는 조왕신 있듯 화장실에도 측도부인이라는 귀신이 있었나 봅니다. 예밈하고 집착이 강해 천장에 붙어서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머리칼을 세는 귀신이라는데 화장실 앞에서 헛기침을 않고 들어가면 머리칼을 세던 귀신이 갑자기 머리칼을 거둬들여 그 참에 화장실에 들어서던 이가 넘어지는 사고도 잦았다고 합니다. 보통 화장실에서 넘어지면 살아남기 힘들다는 이야기도 있잖아요. 그 이야기를 듣고는 한동안 밤이고 낮이고 간에 화장실 가기가 정말 힘들었습니다. 밤에는 특히 밖에 있는 화장실을 가려면 엄마나 누나를 대동하고 플래시 불을 밝히고 가야 했는데 중간중간에 밖에다 대고 “누나 거기 있어”를 확인하곤 했지요. 거기다 뻥 뚫린 똥통을 쳐다보고 있노라면 빨간 종이 줄까, 파란 종이 줄까하고 귀신이 손을 내밀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