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시험은 평가방법 중의 하나일 뿐

by 이상훈

우리 모두는 풍성한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을 쉽게 구분할 수 있습니다.

물론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좋아하는 것의 스펙트럼이 넓어지기는 했지요. 그래도 인성이 좋은 사람 곁에는 많은 이들이 머무는 것을 보면 개인적인 호감도 외에 누구나 알 수 있는 따뜻함이 있어야 할 것으로 봅니다. 리더십이란 그런 따스함 즉 덕을 바탕으로 이뤄지며, 표현의 방식은 리더에 따라 각기 다르게 나타날 수도 있다고 봅니다.


누가 리더가 되어야 하는 가는 최근의 우리나라 정치 상황을 보면 적어도 이런 사람은 하면 안되겠다 그런 생각이 듭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지 않으려는 사람말이지요. 물론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모두 좋은 사람이냐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기는 합니다. 누가 좋은 사람이냐 하는 기준은 포괄적으로 접근할 일이고 단순히 한두개의 사례로 다를 수는 없다고 봅니다.



링컨은 사람의 인성은 그 사람에게 권력이 주어졌을 때 나타난다고도 했습니다.

권력이 없는 소시민은 그저 주어진 일상의 범주 내에서 표 나지 않은 결정과 참여를 시킬 수 있는데 그마저도 영향력이 미미하여 절대다수가 특정인의 성향을 알기가 쉽지 않습니다. 주어진 권력이 없으니 그저 주변의 말에 호응하고 함께 비난하는 정도에 머물겠지요. 우리가 판단하게 되는 기준은 상대가 동원하는 단어나 표현 방식 정도에 불과하고 내면의 성향까지 판단하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자주 만나는 정도가 아니라면 이 또한 알 수가 없지요. 말을 안 하면 중간은 간다는 것도 이 범주에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최근의 정치상황을 보면서 이런 점을 더 뼈저리게 느꼈는데요. 권력이 주어줬을 때 나타나는 속성들 특히 그 인성이 참 적나라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우유부단한 사람부터 물불 가리지 않고 밀어붙이는 사람까지 다양한 군상들입니다. 다들 절대 선에는 미치지 않지만 나름의 이유가 그럴싸하기도 하지요. 다만 그것이 세상의 이치인가는 고민해 봤는가? 그것이 하느님세상에 적합한 것인가? 과연 누구에게 이익이 되는 것들인가? 말이지요.

그래서 드는 생각이 권력자에게는 지혜와 세상의 이치 그리고 따뜻함을 함께 가져야 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격증으로 만 세상을 살아온 사람에게는 세상의 기준이 온통 시험뿐일지도 모릅니다. 시험이 그 사람의 능력 일부를 드러내 보이는 것은 맞지만 세상을 이끌 수 있는 자격을 주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사람의 본성은 이태원참사, 제주항공 참사 사건 등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엿볼 수 있는데 이러한 상실의 경험을 갖지 않고 승승장구하고 세상의 모든 것을 테이블 위에서 결정하려는 태도는 지금과 같은 괴물을 만들어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오랜 옛날에도 관료의 덕목으로 “덕”을 들고 있습니다. 사람의 본성과 관련하여는 작자미상의 우화에도 많이 있는데 “개구리와 전갈”에 대한 우화를 한 번 보겠습니다.


옛날에 강 건너 풍요로운 마을로 이사를 가는 개구리가 있었습니다. 풍요로운 것은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음으로 독침을 가진 전갈 역시 그 마을로 이사를 가고 싶어 했지만 갈 수 있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개구리가 강을 건너 풍요로운 마을로 이사를 가려할 때 독침을 가진 전갈이 평소와 다르게 난폭함을 숨기고 자신을 건너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개구리가 그동안의 성향을 보아왔던 터라 “내가 너를 어떻게 믿고 강을 건너 줄 수 있느냐, 네가 나를 찌르면 나는 죽고 말 터인데” 그러자 전갈이 합리적인 이유를 댑니다. “내가 너를 찌르면 나도 같이 강에 빠져 죽을 터인데 내가 너를 어찌 찌르겠느냐”하고 말이지요.

개구리가 전갈을 등에 태우고 강 중간쯤 건널 때 갑자기 따끔함을 느끼고 온몸에 힘이 빠짐을 느낍니다. 전갈이 개구리에게 독침을 쏜 것이지요. 개구리가 죽어가면서 전갈에게 묻습니다. “왜! 내게 독침을 쏜 것이지, 그러면 너도 죽을 텐데” 전갈이 답을 합니다. “나는 어쩔 수 없는 전갈이니까” 이처럼 감춰진 속성은 언젠가는 드러납니다.




사람도 오래 만나다 보면 그 사람의 속성을 알게 됩니다. 속성이 일반적인 것이냐는 것은 차지하고 어쨌든 남들에게 잘 보이려고 했던 표현들 속에 우리가 흔히 “모국어”라고 하는 단어와 무엇을 결정할 때의 조율 등을 보게 되는 것이지요. 국가를 운영하는 것, 기관을 운영하는 것에 어는 정도 효율성도 필요하지만 합리성을 갖은 이들이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여 결정하는 것은 다원화된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일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격증을 획득하여 얻은 전문지식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 경험을 갖는 것 그리고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