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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LK Dec 16. 2016

인민주권을 향한 여정

팀 샤록이 정의하는 1945년 이후의 한국 현대사

혹시 팀 샤록Tim Shorrock이란 저널리스트를 아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팀 샤록은 미국의 극비문서를 발굴하여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미국이 신군부의 특수부대 투입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으며, 이를 묵인했다는 것을 밝혀낸 사람입니다. 광주시는 그의 공적을 기려 그에게 명예 시민증을 수여하기도 했지요. 우리와 인연이 깊은 이 저널리스트는 작년에도 화제가 된 바 있습니다. 팀 샤록은 2015년 11월 한국에서의 대규모 시위를 보고 미국의 시사 주간지 네이션The Nation 지에 농민 백남기씨의 생명을 앗아간 경찰의 강경 진압을 비판하는 기사를 썼습니다. 이에 뉴욕 총영사관은 잡지의 편집자와 접촉하여 “외압”을 행사하려 했지요. 팀 샤록은 그럴 시간이 있으면 오히려 이런 비판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민주주의 국가다운 모습일 것이라며, 잘못된 점을 지적하는 것이 언론의 의무라는 따끔한 일침을 가했습니다. 그는 작년에 이뤄진 한국일보와의 인터뷰(2015/5/24)에서도 자신은 “인권 저널리스트”로 기억되고 싶다며, “80년대 초 광주에서 만난 사람들은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꼭 알려달라’고 애원했다”고 언급했습니다. 지금 한국의 상황에서도 더욱 빛을 발하는,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 참된 언론인의 표본이라 할 수 있겠지요. 그가 최근 탄핵가결을 이끌어낸 한국의 촛불시위를 지켜보며 한국의 현대사에 대해 중요한 통찰을 전해주는 글을 썼습니다. 평소에도 한국인이 이뤄낸 민주주의에 지대한 경외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팀 샤록의 글을 번역하여 소개하고자 합니다.


“미국 군대가 아닌, 한국 인민의 힘이 한국의 역동적인 민주주의를 만들어냈다”

지난 주, 결국 사면초가에 몰린 대통령 박근혜의 탄핵을 이끌어 낸, 몇 주 동안 거리를 채웠던 수백 만 한국인들의 모습은 나에게 어떤 정치적 후렴구를 연상시켰다. 그것은 우리가 미국의 정치 지도자들로부터 한국에 관해 흔하게 듣는 것이다.

       그 후렴구란 다음과 같다: “1950년 공산주의자들의 침략을 막기 위해 개입하여, 북한과의 국경지대에 수천 명의 미군을 주둔시키고, 미국이 제공하는 안보로 한국은 오늘날 역동적인 민주주의를 일궈냈다.” 이러한 자부심은 2005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주한미군을 방문했을 때의 언급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난다.

부시는 “지난 50년간 우리 군의 희생으로 한반도의 평화와 민주주의가 지켜졌다”고 외쳤다. 힐러리 역시 위키리크스를 통해 밝혀진, 2013년 은행가를 대상으로 한 연설에서 그러한 감성을 되풀이했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말하길, 한국은 “민주주의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functional)” 국가가 되었다. 왜냐하면 “우리 군대가 그곳에 있고, 도움을 줬으며, 우리 미국 산업이 존재한다. 즉 우리가 오랫동안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감정에는 약간의 오만이 담겨있다. 미국의 정책이 한국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한국의 민주주의를 만들어낸 것은 다름아닌 한국인, 그들 자신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격동하는 한국의 역사 속 중요한 몇몇 시점에서, 미국의 행동과 오판은 한국의 진보에 심각한 차질을 야기했다. 때때로 미국은 한국인의 편이었지만, 어떤 때는 아니었다.

       예를 들어 1960년 한국의 초대 대통령이었던 이승만의 정권이 몇 주 간의 격렬한 거리 시위 끝에 전복되었을 때, 아이젠하워 행정부는 불개입 정책을 취했다. 이승만은 [미국에] 골칫거리로 보였다. 그가 빈번하게 외쳤던 “북진”이 1953년의 휴전협정을 지키려던 미국 관리들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이승만의 하야 후, 서울을 지나던 미국 대사의 리무진은 미국의 지지에 고마워하며 기뻐하는 학생들로 둘러싸일 정도였다. (이 단락의 괄호는 제가 삽입한 것입니다)

       그러나 일년 후, 육군 장군이었던 박정희가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했다. 많은 한국인들이 충격을 받은 상황에서, 케네디 대통령의 국무부는 이 새로운 군사정부를 지지하기로 결정했다. 박정희는 빠르게 독재자가 되어갔다. 그는 정치적 반대자를 투옥하고 고문하며, 노조를 조직하려는 노동자들을 억압하는 경찰국가 체제로 한국을 통치했다.

       그러나 지금 막 탄핵당한 대통령의 아버지인 박정희는 미국에 전략적으로 유용했다. 미국은 그에게 수백만 달러에 달하는 군사원조를 제공했고, 박정희는 그 호의에 대한 보답으로 한국군을 남베트남에 파병했다. 하지만 미국 관리들이 한국을 “경제 기적”과 중요한 동맹이란 말로 칭송했다 하더라도, 한국인들의 분노는 들끓고 있었다. 1979년 10월, 부산과 마산에서 학생들과 노동자들이 박정희의 권위주의적 통치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며 들고 일어났다. 이 항쟁의 와중에, 박정희는 그 자신의 CIA라 할 수 있는 중앙정보부의 수장에 의해 암살되었다.

       이는 미국이 한국에서 저지른 가장 중대한 실책 중의 하나로 향하는 단초가 되었다. 1980년, 이란의 이슬람 혁명이 미국의 지지를 받던 이란 팔라비 왕조를 전복시킨 뒤, 카터 행정부는 “또다른 이란”의 출현을 방지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었다. 그해 5월, 광주에서 수백 명의 사람들이 또 다른 장군 전두환이 일으킨 군부의 정권 탈취에 반대하며 시위를 벌였고 이들은 공수부대에 의해 무자비하게 학살당했다. 이 참극에 분노한 사람들은 시민군을 조직하여 광주를 계엄령으로부터 해방시켰다. 이들 중 많은 이들은 인권을 대외정책의 중점으로 표방한 카터 대통령이 민주주의를 수호하려는 편에 설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1980년 5월 22일, 백악관은 광주 민주화 운동이 공산주의자들이 주도하는 반란이자, 북한이 개입할 빌미를 준다고 확신한 나머지 정반대의 결정을 내리고 말았다. 한국군은 북한의 공격으로부터 한국을 보호하기 위해 설립된 한미 연합 사령부의 지휘 아래 놓여 있었다. 미국은 한국 군대가 이 봉기를 진압하는 것을 허용했고, 5월 27일, 한국 군대는 그렇게 했다. (나는 정보 자유법(The Freedom of Information Act)에 의해 다량의 비밀 문서가 기밀 해제되면서 당시의 그 치명적인 결정을 내린 회의 의사록을 얻을 수 있었다)

       이 위기에 대한 카터 행정부의 미숙한 대응은 결국 7년간의 또 다른 군사 독재로 이어졌다. 1960년대와는 다르게, 이제는 반정부 인사들이 공개적으로 미국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시기 반미주의의 물결이 한국의 젊은이들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1987년 6월, 한 학생이 고문으로 사망한 사건은 다시 한번 한국인들을 자극하여 거리로 뛰쳐 나오게 만들었다. 워싱턴은 이 때는 올바른 결정을 내렸다.

       전두환이 다시 계엄령으로 위협하자, 레이건 대통령 (1981년 백악관에서 이 독재자를 환대했던)은 그에게 직설적으로 미국은 또 다시 군부가 정권을 장악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통고했다. 1988년, 민주주의가 마침내 복원되었다. 박근혜의 탄핵을 이끌어 낸 대규모 촛불시위는 많은 한국인들에게 있어서 민주주의를 향한 한국의 기나긴 행진의 마지막 발걸음을 찍는 것이었다.

       하지만 미 국방부는 박근혜의 탄핵에, 그리고 그녀의 사임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초조해하고 있다. 미 국방부는 북한에 대한 강경정책-연례 군사훈련, 최근의 사드 배치 결정을 포함하는-을 지지하는 박근혜 정부를 신뢰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은 과거로부터 교훈을 배운 것 같다. 지난 몇 주간 벌어진 사건들의 파고 속에서, 주한 미국대사 마크 리퍼트는 한미동맹은 “강력하게 지속될 것”이라고 약속했다. 하지만 그는 중요한 단서를 덧붙였다. “명백히, 이 결정 (박근혜 탄핵)은 궁극적으로 한국민과 그들의 민주적 기구들에 달려있는 내정문제다.”

       그가 옳다-그리고 바로 그것이 정확히 여태까지 그래왔어야 했던 것이다.


원문은 다음 사이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medium.com/@TimothyS/people-power-not-the-u-s-military-created-south-koreas-vibrant-democracy-246232020ac9#.rtw9dzav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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