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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LK Mar 14. 2017

도시의 승리?

15년만에 다시 찾은 뉴욕의 그림자

정말 오랜만에 글로 찾아뵙는 것 같습니다. 2017년 새해 들어서는 처음인 것 같고요. 제가 이번 학기, 한국에서는 보통 논문제출자격시험이라고 부르는, 3개의 종합시험을 치러야 하는데 첫 번째 시험을 앞두고 1-2월에는 글을 쓸 여유가 도통 나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첫 번째 시험을 무사히 마치고 지난 주에 봄방학을 맞아 기분전환도 할 겸 친구와 뉴욕을 다녀왔습니다. 학부생 때 뉴욕을 처음 방문한 이후로 뉴욕은 15년만이었는데요, 이번 글은 오랜만에 다시 찾은 뉴욕을 여행하며 느낀 소회를 적어보고자 합니다.

          사실 많은 한국인들을 포함한 정말 수많은 사람들이 뉴욕을 방문하고 있고, 이 기행문이 그다지 새로울 것은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제가 이번에 뉴욕을 다시 찾으며 이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제가 3년 전 파리를 여행하며 느꼈던 것과 매우 유사한 감정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때도 파리를 정말 오랜만에 다시 여행하게 된 것이었고, 이번의 뉴욕도 비슷했습니다. 15년 전에 뉴욕을 찾았던 저는 뉴욕의 모든 것이 신기하고 놀랍기만 한 20대 대학생이었죠. 

          2014년의 파리는 2000년대 제가 경탄했던 파리와 무척 달랐습니다. 그때의 제가 루브르나 개선문, 노트르담, 에펠탑, 몽마르트르 언덕 등 파리의 명소를 찾으며 연신 감탄했던 것과 달리, 2014년의 저는 파리의 어두운 모습이 먼저 눈에 띄었습니다. 노후화된 지하철, 이민자와 유색인종의 주요 거주지역인 파리 북역 지구, 18,19,20구와는 너무나 대조적인 파리 시내의 부촌 마레 지구의 모습, 그리고 샤를 드골 공항에서 전철을 타고 오며 차창 밖으로도 느껴지던 파리 외곽 동북지역의 황량한 풍경이 잊혀지지가 않았습니다. 그곳은 사르코지 정부 시절, 프랑스 사회에 만연해있는 차별과 억압에 항의하는 이민자들의 대대적인 시위와 폭동이 일어난 곳이기도 하지요. 소위 선진국가라 일컬어지던 서방의 주요국가에서도 사회의 주변부에서 빈곤, 차별과 씨름하고 있는 이민자와 소수인종들의 고단함, 그리고 점점 더 확대되고 있는 빈부격차가 그대로 도시의 외관에 나타나는 것 같아 뭔가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놀랍게도 이번에 뉴욕을 15년만에 다시 보면서 비슷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20대 때의 저는 뉴욕의 화려한 모습을 보며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었다면, 30대의 저는 뉴욕을 보면서 복잡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도로는 너무 더럽고, 지하철은 도대체 개선의 의지가 있는 것인지조차 의심스러울만큼 낡아있으며 고장도 잦은 데다가, 심지어 여행 마지막날에는 거의 한 시간 가량 열차가 멈춰서더니 급기야 신호체계 문제로 맨앞쪽 차량으로 승객들이 전부 이동하여 역사 바깥으로 걸어나가야 했습니다. 물론 뉴욕에 사시는 분들이나 뉴욕에 자주 계셨던 분들은 이런게 뉴욕의 일상이라고 웃으며 이야기 하실 수 있겠지요. 그렇지만 이렇게 대중교통이 문제가 많다면 일반적인 차량 흐름이라도 원활해야 하는데, 택시나 버스를 타도 대략 한 시간 정도는 도로에서 지체되는 것을 당연히 여겨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동권이 삶의 질의 중요한 척도라면 이건 좀 심각한 문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습니다.

          하지만 제 마음을 가장 크게 흔들었던 경험은 도시 곳곳에서 걸인과 노숙자를 마주친 것이었습니다. 특히 저는 지하철에서 만났던, 노숙자의 절실한 외침이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자신이 지금 원하는 건 따뜻한 물로 샤워하는 것과 수프 하나와 빵으로 허기를 달래는 것인데, 이를 위해 이 차량에서 20달러 정도를 모으는 것이 목표라며 열차 안의 사람들에게 도와달라고 호소하더군요. 물론 이런 행동이 다 돈을 더 받아내려는 전략이라며 냉소하실 수도 있겠지만, 저런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게 어떻게 조금이라도 돈을 주지 않을 수 있겠으며, 결국 무엇이 이런 사람들을 이렇게 극한 상황으로까지 내몬 것일까하는 생각이 들어 참 심란했습니다.

          단지 며칠 간의 여행으로 뉴욕과 파리의 현재 모습을 제가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겠지요. 더구나 2000년대 초반과 지금, 제가 느낀 두 도시의 모습이 현저하게 다르다는 것이 두 도시의 문제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바로 연결할 수 있는 정확한 근거도 없고요. 다만 저는 화려한 두 도시의 어두운 이면에 자꾸 눈이 가는 것이 우연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한편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욕이 민주당과 리버럴에 압도적인 지지를 보내는 것이 어쩌면 이해가 가기도 했고요. 친구와 이야기하면서 느낀 것이지만, 아마 뉴욕 시민들을 관통하는 정서는 이민자와 다양성이 뉴욕을 지탱하는 힘이며 뉴욕의 도시문화와 도시경제에 공헌하는 바가 크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실제로 그러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이제 그러한 “표현”을 넘어서서 이민자, 소수인종, 그리고 성실히 하루하루 노동하는 평범한 사람들이 인간적인 존엄을 누리며 살 수 있도록 구체적인 정치적 해법을 마련해야 할 때가 아닐까요. 이것이 없다면 그 표현은 한낱 자기기만적인 수사에 불과할 테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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