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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석진 Jun 19. 2020

북한식당 대화록

 하얼빈 유학시절, 외국에서 온 친구들이 내게 자주 부탁했던 것이 함께 북한 식당에 가자는 것이었다. 친구들에게는 내가 북한 사람과 같은 말로 소통하는 것이 신기한 일이었다. 친구들은 그곳 직원분들의 반응에 얽힌 재미있는 일화를 아직도 기억한다. 그 중 베스트 3을 소개한다. 


 첫장면은 역시 주문장면. 우리는 중국 하얼빈에 있으니 중국어로 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나는 내 신분을 좀 숨기고 싶었다. 뭔지 모르게... 숨기고 싶었다) 그렇게 메뉴판을 펼치고 주문을 하는데... 친구들이...


 친구1 : (영어로) 뭐하는 거야? 미친?

 친구2 : (영어로) 한국어로 하라고!

 친구3 : (영어로) 우리가 여기 온 이유가 뭔데!

 나 : (한국어로)알았어 알았어. 자. 여기 두부조림이랑 냉면이랑 나물 세트랑 김치찌개랑 된장찌개 순두부찌개 주세요~


 순간 정적이 이어지다가...


 북한식당직원 : 아이~ 진작 우리말로 하지.


 그녀는 이렇게 주문을 받고는 가버리셨다.

 

 친구1 : (영어로) 너 혼난거 다 알고 있어.

 친구4 : (영어로) ㅋㅋㅋ

 친구2 : (영어로) 한국 남자애들은 군대 다녀와서 저러는 거 같음.

 친구3 : (영어로)ㅋㅋㅋ


 두번째 장면은 내가 친구들의 냉면을 자르기 위해 가위를 요청했을 때의 장면이다. 이 장면은 남과 북이 어느 관계에 서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당시 나는 가위를 가져온 직원으로부터 가위를 받으려고 했을 뿐이었다...  


 나 : 감사합니다. (가위 받는 동작)

 북한식당직원 : (멈칫) 제가 자르겠습니다.


 정적. 냉면 잘리는 소리...


 친구1 : (영어로) 저거 흉기라서 너한테 안주는 거임

 친구2 : (영어로) ㅋㅋㅋ

 친구3 : (영어로) 적이다 적

 친구4 : (영어로) ㅋㅋㅋ

 북한식당직원 : 남조선에서 오셨습니까? 

 나 : 네...

 북한식당직원 : 같은 반 동무들입니까?

 나 : 네...

 북한식당직원 : 어느 나라에서 오셨습니까?

 친구1 : 헝가리

 친구2 : 인도

 친구3 : (미국인인데) 캐나다!

 친구4 : (역시 미국인이면서) 캐나다!


 세번째 장면은 내가 기타를 부탁하는 장면이다. 당시 기타를 배우는 중이었다. 밤마다 공연을 하는 북한식당에도 통기타가 있었다. 미국인 친구가 능글맞은 얼굴로;

 

 친구4 : 기타 빌려달라고 해보셈. 그러고 둘 다 아는 음악 연주해보셈.

 친구1 : 꿀잼이겠다.

 나 : 곤란해... 그런건...

 친구2 : 친구야 가즈아. 

 친구3 : 내가 불러야지~ 한국말로 직원을 어떻게 부르지?

 친구4 : (한국말로) 여기요~


 평소 나와 한국 삼겹살 집에서 폭탄주를 자주 말아먹던 친구4의 여기요~는 직원분들에게 꺄르르꺄르르 웃음을 안겼다. (과연 그가 미국인인 것을 아셨어도 꺄르르 하셨을지...)


 나 : 정말 실례인줄 압니다만. 저기 저 기타를 쳐봐도 되겠습니까?

 직원 : 기타 잘 칩니까?

 나 : 저 초보입니다만...

 직원 : 그래서 잘 칩니까 못칩니까?

 나 : 잘... 쳐보겠습니다.

 직원 : 그럼 쳐보십쇼.


 나는 기타를 잡고 아리랑을 연주했다. 연주가 엉망이었는지 직원분들의 호응은 없었다. 

 

 친구1 : 이거 저분들도 아는 노래야?

 나 : 어 한국 전통 음악인데.

 친구2 : 너가 잘 못쳐서 못알아들이시나바

 친구3 : 그럼 그렇지

 친구4 : (한국말로) 병신새끼~

 나 : -_-;;;



 이제는 사이도 좋아졌으니 언젠가 북한 식당에 가면 가위는 받을 수 있겠구나... 했는데. 

 아쉽게 되었다.

 

 그래도 그때처럼 기타는 쳐주게 해주겠지.

 아리랑 코드부터 다시 연습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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