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제주x제주

제주에 살아볼까? 제주다움

감성작가 이힘찬

by 이힘찬

# 왜, 제주

지금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제주에서 무얼 하고 있는지, 제주에 왜 갔는지, 물어보는 사람이 많아서가 아니라, 이 귀한 경험에 대한 흔적을 남기기 위해서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이라기보다는, 나 자신을 위한 기록에 가깝다.

"제주에 살기로 한 거야?"

제주에 머문지 한 달쯤 되었을 때 친구에게 들었던 말이다. 물론, 제주에 살려고 내려온 것도 아니고, 애초에 제주 오래 있을 예정도 아니었다. 단지 기회가 되어서, 조금 더, 아주 조금씩 더 머물게 된 것일 뿐이었다.

제주라는 공간을 ‘처음’ 접한 시기는 남들보다 꽤 늦었다. 정신없이 사느냐고 제주에 올 수 없었다-는 말 외에는 마땅한 핑계가 떠오르지 않는다. 결국 처음 제주에 온 것은, 대학 편입을 준비하던 즈음이었다. 그때도 개인적인 계획이 아니라 친구네 가족 여행에 발을 살짝 얹은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때의 기억들은 생생하기보다는, 낯선 풍경들에 대한 희미한 기억만이 남아있다.

제주를 '여행'하기 시작한 것은, 첫 책(감성제곱)을 출간하기 직전이었다. 첫 책의 원고를 모두 출판사에 보내고 나서, 조금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동생들과 함께 제주로 여행을 떠났었다. 책을 쓰면서도 온라인에 계속 연재를 하던 참이라, 또 출판 직후 바로 다음 책(사랑제곱)을 준비해야 하던 시기라, 한참 이야기에 목마를 때이기도 했다. 쉬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새로운 풍경을 보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쌓고 싶다는 욕심이 더 가득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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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2014년)에는 2박 3일로. 4월에는 4박 5일로 제주에 왔었다. 3월에는, 개인적으로 계획한 첫 여행인 탓에 아무런 정보도 아무런 그림도 없었다. 그래서 남동생 G와 둘이서 3일 내내 거센 비바람을 맞으며 꽤 힘겨운 뚜벅이 여행을 했다. 힘든 만큼 그 기억이 더 강하게 자리 잡기도 했다. 4월에는 그림이 많이 달랐다. 아마도 함께 여행을 준비한 두 소녀 D와 J 덕분이 아닐까. 하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이 확실한 그들 덕분에 날짜별로 확실한 방향이 있었다. 그리고 G와의 여행 때와는 달리 조금 더 안전하고 편안한 이동을 이유로 제주에서의 필수 조건인 '차'를 렌트했었다. 그래서 가고 싶은 곳을 가고, 멈추고 싶은 곳에서 멈추고, 그렇게 마음껏 제주를 누렸었다.

그때 그 두 번의 제주 여행으로부터 나의 제주 사랑이 시작되었다. 그때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낀 제주는, 내가 추구하는 앞으로의 삶과 매우 가까웠다. 그래서 그 후로 시간이 허락될 때마다, 아니 허락되지 않는 때에도 어떻게든, 제주를 찾아왔다.

“어디로? 제주? 또? 몇 달 전에도 갔잖아”

그러다 보니 주변 사람들 사이에서는 어느새 제주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제주에 대한 정보를 많이 갖고 있어서가 아니라, 제주에만 다녀오면 내가 마냥 행복해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나 스스로도, 제주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푸른 하늘과 푸른 바다, 나무의 갈빛과 잎사귀의 초록빛, 내가 좋아하는 풍경이며 색감들이, 그곳 어디에나 있었으니까.

왜 자꾸 제주에 가냐고 물으면, 항상 ‘숨을 쉬러 간다’고 답했다. 글을 쓰러 그림을 그리러 사진을 찍으러 간다는 뜻이었다. 아니, 나를 위로하러 간다는 뜻이었다. 아니, 주어진 하루를 누리고 싶어서 간다는 뜻이었다. 그만큼, 제주는 내 막힌 생각과 마음을 열어주는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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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제주

몇 달 전 5월, 페이스북에 알림이 울렸다. 누군가 어느 게시물에 나를 태그 했다는 알림이었다. 그런 일이 많지 않아서 바로 눌러 확인을 했다. '작가님에게 잘 어울릴 것 같아요'라며 아는 분께서 나를 태그 한 글에는, ‘제주다움’이라는 프로그램의 참여자를 모집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제주에서 한 달 동안 살면서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교류하는, 제주 창조경제혁신센터의 프로그램이었다. 제주에서의 한 달이라니, 제주의 매력에 푹 빠져 사는 나에게는 너무도 솔깃한 이야기였다. 너무도,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그렇다고 바로 신청을 한 것은 아니었다. 사실 처음에는 겁이 났다. 늘 새로운 경험을 추구하고, 여행을 좋아하고, 무엇보다 제주를 사랑하는 나였지만, 또 언제부턴가는 외로움을 많이 타기 시작한 나였기에, 한 달 동안 잘 지낼 수 있을지 겁이 났다. 그래서 며칠은 외면하고 잊고 지냈다. 하지만 아무래도 겁보다는 호기심이 더 나를 사로잡았던 것 같다.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카페에 앉아 작업을 하다 말고 급하게 신청서를 작성했다. 제주에서 어떤 생활을 할 건지, 신청 이유에 대해서 뭐라고 써야 할지 몰라서, 그냥 내가 제주를 좋아하는 이유를 썼다. 그 제주에서 담고 싶은 이야기에 대해 썼다. 다행히도 일주일쯤 지나서, 프로그램에 합격했다는 문자를 받았다.

제주다움 프로그램에 대한 자세한 연락을 받고 나서는, 한동안 설레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어떤 이야기들이 펼쳐질지, 어떤 사람들과 마주하게 될지, 또 그 속에서의 나는 어떠한 모습일지. 설렘과 기대감, 그리고 걱정과 두려움이 섞인 묘한 감정으로 첫날을 기다렸던 것 같다. 그리고 제주로 향하는 당일, 25kg이라는 엄청난 양의 짐이 있었지만 동생 G의 도움으로 무리 없이 공항에 도착했다. 그때까지도, 내가 이전에 좋아하던 제주 그 이상으로 제주를 알아가게 될 거라는, 좋아하게 될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G 군과 작별 인사를 하고, 특별한 이유 없이도 늘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만드는 게이트를 지나 제주를 향해 날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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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나의 제주 생활이 시작되었다. 한 달을 지낼 수 있을까, 내가.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을까, 내가. 그렇게 걱정이 가득하던 나는. 아직 선선한 바람이 불던 6월, 그곳에서 나와 같이 제주다움에 신청한 스무 명의 사람들을 만났다. 한 달이라는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 동안, 나는 내가 몰랐던 세상을 배워나갔다.

열흘쯤 지났을까, 아직 적응도 채 끝내지 못했을 때에, 7월 프로그램 참여자 모집에 대한 안내가 떴다. 어떠한 확신이 없었음에도 제주 바람에 이끌렸는지, 한라산에 걸친 구름에 반했는지,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참가 신청을 했다. 그리고 며칠 뒤, 제주 바다와 제주 공항이 보이는 도두봉 아래를 걸으며 노을을 기다리고 있을 때, 7월 신청 합격에 대한 연락을 받았다.

그렇게 또 7월, 한 달을 연장한 나는 새로이 15명의 사람들을 만났고, 나 혼자만의 세상에 세워놓은 벽을 허무는 새로운 도전을 했다. 교류, 연결, 콜라보레이션. 그리고 또 좋은 기회로 8월 11일 오늘, 나는 여전히 제주에 있다. 제주 생활, 세 달 째에 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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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제주

그 안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를 세세히 써내려가려면 아마 책 한 권으로도 모자라지 않을까 싶다. 바쁘게 봐야만 했던 제주를 천천히 바라보며, 천천히 눈에 마음에 담으며 얻은 것은 신기하게도 제주에 대한 정보가 아닌, 나의 대한 것들 투성이였다. 쫓기고 쫓기던, 날카롭고 차가웠던 도시를 떠나서, 아니 어쩌면 그저 너무도 익숙한 환경을 떠나서, 그동안에는 없었던 수많은 기회들과 마주한 것이 아닐까.

나와 전혀 다른 사람들, 혹은 나와 닮은 사람들 틈에서 이전에 하지 못했던 경험을 했고, 이전에 보지 못했던 것들을 발견했고, 지금은 이전에 걷을 엄두조차 못 냈던 길 위를 하나씩 걸어보는 중이다. 쌓여가는 상처를 핑계로, 쌓여가는 현실적 문제들을 핑계로, 겁쟁이가 되어가던 나에게 이 시간들은 너무도 귀중한 선물이 되어주었다.

그래서 이 모든 이야기는, 한 번에 쓰지 않기로 했다. 아주 천천히, 띄엄띄엄.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기억과 기억이 겹치고, 실제 상황이 어땠었는지 헷갈려질 때까지. 그렇게 길게 돌아서 쓰기로 했다. 그 특별한 시간들을 그리워하며, 더 애틋한 이야기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그리고 어찌 됐든, 나는 지금도 제주에 있으니까. 지금도, 새로운 이야기들이 쌓여가고 있으니까. 앞으로도 나는, 계속은 아니더라도 이전보다 더 자주, 제주에서 시간을 보낼 테니까. 앞으로 내가 써 내려가는 모든 이야기 속에, 제주의 흔적이 여기저기 자리 잡고 있지 않을까. 마치 제주가 나의 오랜 연인이라도 된 것처럼.


- #제주살이 #제주체류 #제주다움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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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나는, 여전히,
앞으로도, 제주가 좋다.
내 사랑과 참, 닮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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