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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힘찬 Aug 17. 2017

제주에 살아볼까? 제주다움

감성작가 이힘찬

제주
 
지금 이 글을 쓰는 이유는제주에서 무얼 하고 있는지제주에 왜 갔는지물어보는 사람이 많아서가 아니라이 귀한 경험에 대한 흔적을 남기기 위해서다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이라기보다는나 자신을 위한 기록에 가깝다.
 
"제주에 살기로 한 거야?"
 
제주에 머문지 한 달쯤 되었을 때 친구에게 들었던 말이다물론제주에 살려고 내려온 것도 아니고애초에 제주 오래 있을 예정도 아니었다단지 기회가 되어서조금 더아주 조금씩 더 머물게 된 것일 뿐이었다.
 
제주라는 공간을 처음’ 접한 시기는 남들보다 꽤 늦었다정신없이 사느냐고 제주에 올 수 없었다-는 말 외에는 마땅한 핑계가 떠오르지 않는다결국 처음 제주에 온 것은대학 편입을 준비하던 즈음이었다. 그때도 개인적인 계획이 아니라 친구네 가족 여행에 발을 살짝 얹은 것이었다그래서인지 그때의 기억들은 생생하기보다는, 낯선 풍경들에 대한 희미한 기억만이 남아있다.
 
제주를 '여행'하기 시작한 것은첫 (감성제곱) 출간하기 직전이었다첫 책의 원고를 모두 출판사에 보내고 나서조금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동생들과 함께 제주로 여행을 떠났었다책을 쓰면서도 온라인에 계속 연재를 하던 참이라또 출판 직후 바로 다음 (사랑제곱) 준비해야 하던 시기라한참 이야기에 목마를 때이기도 했다쉬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새로운 풍경을 보면서새로운 이야기를 쌓고 싶다는 욕심이 더 가득했던 것 같다.

3(2014)에는 2박 3일로. 4월에는 4박 5일로 제주에 왔었다. 3월에는개인적으로 계획한 첫 여행인 탓에 아무런 정보도 아무런 그림도 없었다그래서 남동생 G와 둘이서 3일 내내 거센 비바람을 맞으며 꽤 힘겨운 뚜벅이 여행을 했다힘든 만큼 그 기억이 더 강하게 자리 잡기도 했다. 4월에는 그림이 많이 달랐다아마도 함께 여행을 준비한 두 소녀 D와 덕분이 아닐까하고 싶은 것보고 싶은 것먹고 싶은 것이 확실한 그들 덕분에 날짜별로 확실한 방향이 있었다그리고 G와의 여행 때와는 달리 조금 더 안전하고 편안한 이동을 이유로 제주에서의 필수 조건인 ''를 렌트했었다그래서 가고 싶은 곳을 가고멈추고 싶은 곳에서 멈추고그렇게 마음껏 제주를 누렸었다.
 
그때 그 두 번의 제주 여행으로부터 나의 제주 사랑이 시작되었다. 그때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낀 제주는내가 추구하는 앞으로의 삶과 매우 가까웠다그래서 그 후로 시간이 허락될 때마다아니 허락되지 않는 때에도 어떻게든제주를 찾아왔다.
 
어디로제주몇 달 전에도 갔잖아
 
그러다 보니 주변 사람들 사이에서는 어느새 제주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제주에 대한 정보를 많이 갖고 있어서가 아니라제주에만 다녀오면 내가 마냥 행복해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물론 나 스스로도제주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푸른 하늘과 푸른 바다나무의 갈빛과 잎사귀의 초록빛내가 좋아하는 풍경이며 색감들이그곳 어디에나 있었으니까.
 
왜 자꾸 제주에 가냐고 물으면항상 숨을 쉬러 간다고 답했다글을 쓰러 그림을 그리러 사진을 찍으러 간다는 뜻이었다아니나를 위로하러 간다는 뜻이었다아니주어진 하루를 누리고 싶어서 간다는 뜻이었다그만큼제주는 내 막힌 생각과 마음을 열어주는 공간이었다.


제주
 
몇 달 전 5페이스북에 알림이 울렸다누군가 어느 게시물에 나를 태그 했다는 알림이었다그런 일이 많지 않아서 바로 눌러 확인을 했다. '작가님에게 잘 어울릴 것 같아요'라며 아는 분께서 나를 태그 한 글에는, ‘제주다움이라는 프로그램의 참여자를 모집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제주에서 한 달 동안 살면서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교류하는제주 창조경제혁신센터의 프로그램이었다제주에서의 한 달이라니제주의 매력에 푹 빠져 사는 나에게는 너무도 솔깃한 이야기였다너무도흥미로운 이야기였다.
 
그렇다고 바로 신청을 한 것은 아니었다사실 처음에는 겁이 났다늘 새로운 경험을 추구하고여행을 좋아하고무엇보다 제주를 사랑하는 나였지만또 언제부턴가는 외로움을 많이 타기 시작한 나였기에한 달 동안 잘 지낼 수 있을지 겁이 났다그래서 며칠은 외면하고 잊고 지냈다하지만 아무래도 겁보다는 호기심이 더 나를 사로잡았던 것 같다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카페에 앉아 작업을 하다 말고 급하게 신청서를 작성했다제주에서 어떤 생활을 할 건지, 신청 이유에 대해서 뭐라고 써야 할지 몰라서그냥 내가 제주를 좋아하는 이유를 썼다그 제주에서 담고 싶은 이야기에 대해 썼다다행히도 일주일쯤 지나서프로그램에 합격했다는 문자를 받았다.
 
제주다움 프로그램에 대한 자세한 연락을 받고 나서는한동안 설레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어떤 이야기들이 펼쳐질지어떤 사람들과 마주하게 될지또 그 속에서의 나는 어떠한 모습일지설렘과 기대감그리고 걱정과 두려움이 섞인 묘한 감정으로 첫날을 기다렸던 것 같다그리고 제주로 향하는 당일, 25kg이라는 엄청난 양의 짐이 있었지만 동생 G의 도움으로 무리 없이 공항에 도착했다그때까지도내가 이전에 좋아하던 제주 그 이상으로 제주를 알아가게 될 거라는좋아하게 될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G 군과 작별 인사를 하고특별한 이유 없이도 늘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만드는 게이트를 지나 제주를 향해 날아올랐다.

그렇게 나의 제주 생활이 시작되었다한 달을 지낼 수 있을까내가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을까내가그렇게 걱정이 가득하던 나는아직 선선한 바람이 불던 6그곳에서 나와 같이 제주다움에 신청한 스무 명의 사람들을 만났다한 달이라는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 동안나는 내가 몰랐던 세상을 배워나갔다.
 
열흘쯤 지났을까아직 적응도 채 끝내지 못했을 때에, 7월 프로그램 참여자 모집에 대한 안내가 떴다어떠한 확신이 없었음에도 제주 바람에 이끌렸는지한라산에 걸친 구름에 반했는지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참가 신청을 했다그리고 며칠 뒤제주 바다와 제주 공항이 보이는 도두봉 아래를 걸으며 노을을 기다리고 있을 때, 7월 신청 합격에 대한 연락을 받았다.
 
그렇게 또 7한 달을 연장한 나는 새로이 15명의 사람들을 만났고나 혼자만의 세상에 세워놓은 벽을 허무는 새로운 도전을 했다교류연결콜라보레이션. 그리고 또 좋은 기회로 8월 11일 오늘나는 여전히 제주에 있다제주 생활세 달 째에 접어들었다.


결국제주
 
그 안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를 세세히 써내려가려면 아마 책 한 권으로도 모자라지 않을까 싶다바쁘게 봐야만 했던 제주를 천천히 바라보며천천히 눈에 마음에 담으며 얻은 것은 신기하게도 제주에 대한 정보가 아닌나의 대한 것들 투성이였다쫓기고 쫓기던날카롭고 차가웠던 도시를 떠나서아니 어쩌면 그저 너무도 익숙한 환경을 떠나서그동안에는 없었던 수많은 기회들과 마주한 것이 아닐까.
 
나와 전혀 다른 사람들혹은 나와 닮은 사람들 틈에서 이전에 하지 못했던 경험을 했고이전에 보지 못했던 것들을 발견했고지금은 이전에 걷을 엄두조차 못 냈던 길 위를 하나씩 걸어보는 중이다쌓여가는 상처를 핑계로쌓여가는 현실적 문제들을 핑계로겁쟁이가 되어가던 나에게 이 시간들은 너무도 귀중한 선물이 되어주었다.
 
그래서 이 모든 이야기는한 번에 쓰지 않기로 했다아주 천천히띄엄띄엄오랜 시간이 흐르면서기억과 기억이 겹치고실제 상황이 어땠었는지 헷갈려질 때까지그렇게 길게 돌아서 쓰기로 했다그 특별한 시간들을 그리워하며더 애틋한 이야기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그리고 어찌 됐든, 나는 지금도 제주에 있으니까지금도새로운 이야기들이 쌓여가고 있으니까앞으로도 나는계속은 아니더라도 이전보다 더 자주제주에서 시간을 보낼 테니까. 앞으로 내가 써 내려가는 모든 이야기 속에제주의 흔적이 여기저기 자리 잡고 있지 않을까마치 제주가 나의 오랜 연인이라도 된 것처럼.


- #제주살이 #제주체류 #제주다움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



아무튼, 나는, 여전히,
앞으로도, 제주가 좋다.
내 사랑과 참, 닮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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