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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힘찬 Aug 10. 2018

연둣빛 산책,  제주 거문오름

제주에서 제주를 여행하는 시간

지난 6일,  너굴양과 함께 제주 거문 오름에 다녀왔다. 1년에 한 번, 거문 오름에서는 트래킹 행사가 열려 기간 내에 수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오간다. 평일인 데다 아침 일찍 출발했음에도 주차장에 자리가 별로 남아있지 않았다.  트래킹 행사 기간에 제주도민 혹은 관광객이 더 몰리는 이유는, 평소에 개방되지 않았던 '용암길'과 '진물길'이 개방되어 새로운 풍경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기간 동안에는 예약을 하지 않아도 되며, 인원수도 제한하지 않는다.


- 거문 오름 : 천연기념물 제444호. 거문 오름이라는 이름은, 유난히 검은빛을 띠는 돌과 흙에서 유래되었다. 어원적으로는 신령스러운 산이란 뜻도 있다고 한다.

작년 7월 초, 이제 막 제주에 온 지 한 달쯤 되었을 때 캘리작가 해인이의 추천으로 거문 오름에 갔었다. 아무 정보도 없이 그냥 가볍게 갔다가 쭈욱 걸어간 그 길이 용암길이었다. 걸은 시간으로만 따지자면 아마도 약 3시간..? 카메라를 가져갔으나, 땀을 뻘뻘 흘리느라 사진도 많이 찍지 못했던 것 같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 연둣빛으로 가득한 산책길이 너무도 좋았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그 풍경 속을 걷고 싶었고, 너굴양에게도 그 풍경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렇게 1년 만에 다시 마주한 것이다.


- 이번 거문 오름 국제 트래킹 행사 기간은 7월 26일부터 8월 6일까지였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작년과 한 달 정도 차이가 있다.

드디어 출발! 너굴양의 체력이 언제 바닥날지 모르기 때문에, 나는 출발 전부터 아주 '강력한' 경고를 했다. 한라산에 오른다는 생각을 하라고..ㅎ


- 거문 오름을 올라갔다 내려오는 동안에는 크게 무리가 없지만, 트래킹 기간에 개방되는 용암길 구간에 들어서면 울퉁불퉁하고 위험한 지형이 많다 보니, 편안한 복장과 등산화(혹은 운동화)는 필수다. 제대로 신발을 갖춰 신지 않으면 입구에서 들어가지 못하게 막는다. 실제로 작년에 함께 왔던 일행 중 한 명은 결국 거문 오름에 들어가 보지 못하고, 3시간 넘게 입구에서 우리를 기다려야만 했다.

거문 오름 입구에서 이름과 연락처를 기입하고 '출입증'을 받아 몸에 걸어야만 입장이 가능하다.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은 B-1, B-2, B-3...으로 표기되어 있었다.
이때부터 조금씩 땀이 흐르기 시작..

작년에 처음 거문 오름 트래킹을 했을 때, 한 세 번 정도 풍경에 속았던 기억이 있다. 숲으로 우거진 그늘 길이 계속되다가 마치 트래킹이 끝난 것 같은 밝은 풍경과 평지가 나타나곤 했다. 너굴양도 벌써 끝인가-하고 만세를 불렀지만 웬걸, 사실은 아직 트래킹이 시작도 되지 않았다.


- 거문 오름을 올라갔다 내려간 후, 천막이 쳐져 있는 평지에서 지도를 보고 코스를 선택하면, 그때부터가

짜 거문 오름 트래킹이다.

"아, 얼음 물 없었으면 난 정말..."
새로 출발하기 전, 한 번 더 힘을 내며

트래킹 내내 참 좋았던 것은, 계속되는 폭염으로 세상이 온통 달궈진 상태였는데, 거문 오름 안쪽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것. 연둣빛으로 가득한 숲은 시원한 그늘 길로 주욱 이어져있었다. 그 나무들 사이로 흘러들어오는 선선한 바람에, 조금 힘든가 싶다가도 웃음이 나왔다.

용암길을 걷는 중간중간 보면 사람들이 모여서 멈춰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숲 깊은 곳에 누군가 에어컨이라도 틀어놓은 듯한 찬 공기, 풍혈 때문이었다.


풍혈은 지층의 변화로 생긴 구멍이다. 이 구멍은 거미줄처럼 얽혀 있어 분화구 밖으로까지 이어져 신선한 바람을 숲 안으로 가져온다. 풍수학적으로 용의 입김이 뿜어져 나오는 곳이라 숨골이라고도 부른다. 거문 오름의 강렬한 화산 분출은 멈췄지만 용암이 흐르던 자리에 바람이 흐르고 있다.

- 출처 : 문경수의 제주 과학 탐험

이번에 갔을 때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작년에는 그 차가운 공기가 눈에 보였다. 숲길 한가운데 하얗게 김이 서려있어서 저게 뭘까, 싶어 근처에 가보니 맑고 찬 바람이 세차게 불어와 온몸을 시원하게 달래주었다.

확실히 트래킹 중반 이후에는 조금 불편한 길이 많았다. 모험(?)을 좋아하는 나는 그 자체가 여행이라 즐겁고 참 좋았지만...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모르고 런닝화를 신고 갔던 작년에는 발이 몇 번이나 미끄러져 발목이 나갈 뻔했었다. 너굴양이 걱정되어 계속 뒤를 돌아보았지만, 다행히도 등산화를 잘 챙겨 신고 와서인지 무리 없이 잘 걷고 있었다.

와, 이제 끝인가 보다~ 브이!

축 늘어져서 쉬느냐고 사진을 찍지 못했는데, 용암길을 벗어나기 전 마지막 쉼터에는 '벵뒤굴'이라는 풍혈의 결정체가 있다. 동굴 앞에 쇠창살이 쳐있고, 그 앞에 나무 의지가 놓여있었다. 그곳에 앉아 있으면 에어컨 바람과는 전혀 다른, 기분 좋은 찬바람이 불어와 온몸을 차갑게 식혀준다. 너무도 기분이 좋아서 눈을 감고 멍하니 앉아 있느냐고... 사진 찍을 생각을 못 했다.

드디어 트래킹 구간이 끝나고 도착한 다희연
다희연 녹차밭에서 인증샷 찰칵
사진상으로는 행복해 보이지만, 이때는 정말 체력이 바닥난 상태였다.

다희연에 도착하면, 처음 출발지점인 거문 오름 입구로 갈 수 있는 셔틀버스(30분 간격)를 탈 수 있다. 우리는 열도 식힐 겸 다희연 동굴 카페에 들어가 시원한 음료를 한 잔 마셨다. 다희연 동굴 카페는 업체가 바뀌었는지 작년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작년에는 녹차 관련 음료들 포함 다양한 메뉴들이 있었는데 이번에 갔을 때는 4~5개의 메뉴밖에 없었고, 아메리카노나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제외하고는 그냥 페트병 음료였다. 그래도 동굴 자체는 시원했다.


잠시 기다려서 버스를 타고 입구로 돌아오니, 감사하게도 수박과 얼음물을 나눠주고 있었다! 한 조각만 집어서 먹었는데, 트래킹 때문이었는지 수박이 아주 꿀맛이었다..ㅎ


- 유의해야 할 점은... 트래킹 코스를 벗어나는 구간이 생각보다 길다는 것. 와 끝났다!라고 함께 웃은 후에, 두 번 더 다리가 후들거릴 때까지 걸어야 했다. 트래킹 끝나는 지점에서 버스 타는 곳까지, 그늘 없는 땡볕을 한참 걸어야 하고, 거문 오름 입구로 향하는 버스에서 내린 후에도, 역시 땡볕 아래를 또 한참 걸어야 한다.

원래는 거문 오름 트래킹을 마치고 나서 어디론가 또 움직일 예정이었으나, 몸이 너무도 뜨거웠고 땀에 젖은 옷도 많이 불편했다. 그래서 다른 계획은 접고, 자연스럽게 삼양 용천수로 향했다. 용천수의 물은 너무도 맑고 투명한 민물! 무엇보다 냉동실에 들어가는 듯한 차가운 온도가 하루 종일 지속된다. 아무리 뜨거운 열기 속에 있다 하더라도, 이 속에 들어가면 기침부터 나온다. 온몸이 냉기에 사로잡히는 너무도 특별한 곳. 한 번 머리까지 푹~ 담갔다 나오면, 온몸에 퍼진 열기가 한순간에 식는다. 요즘 틈만 나면 용천수에 찾아가 몸을 담그는 것을 보면, 아마도 너굴양과 나는 여름 내내 용천수만 찾아다닐 것 같다.


제주살이 1년 2개월차 제주 초보의 거문 오름 국제 트래킹 후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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