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작가 이힘찬
오랜만에 양평을 다녀왔다. 그전에 언젠가 가보았던 지역이지만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던 곳. 그래서인지 더 설렘이 있었다. 양평을 가기로 한 이유는 새로운 만남 그리고 호기심 때문이었다. 우연한 기회로 알게 된 윤 씨에게 들은 흥미로운 창고 이야기. 아무것도 없이 차갑기만 했던 텅텅 빈 창고를 변형시켜 '무엇인가 만들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부터, 나는 그곳의 모습이 궁금했다.
나는 유독 흔적에 반응하는 사람인지라, 어떤 흔적들이 남아있을지 몹시 궁금했다. 그 생각을 하고 나서 몇 주가 금방 지나갔다. 떠나야 하는데, 가야 하는데, 이런저런 생각들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가 행동파 준영의 내일 가보자는 한 마디 덕분에, 급하게 하루 일정을 변경했다.
열차를 타고 이동하다가, 마중을 나와준 윤 씨의 차로 양평을 달렸다. 창밖으로 보이는 산과 강의 풍경을 말없이 웃으며 바라보았다. 아, 언제 양평에 왔었나 했더니 오래전 처음 사진에 푹 빠졌을 때였다. 그 당시 사진 모임을 통해 왔었던 두물머리의 모습이 보였다. 1분이 아까워서 부랴부랴 칼국수로 배를 채우고, 머릿속에 그림으로만 그렸던 그곳에 도착했다.
입구에는 네모난 쇠판에 손으로 직접 그려 넣은 그곳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무슨 뜻인가 물었더니 이곳을 함께 꾸렸던 사람들과의 이야기 속에서 만들어진 이름이라고 했다. 농어촌을 활성화시키는 기획자가 되어보자며, 재밌는 일을 하고 싶었던 세 사람이 모여서 만든 곳. 농번기 예술마당.
끼익-하고 소리가 날 것만 같은 낡은 철문. 정말로 오래전 집 한쪽 구석에 있었을 것만 같은 창고로 들어가는 문이었다. 그 안에 어떤 이야기들이 담겨 있을지, 그만큼 호기심을 자극하는 문이기도 했다.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자그마한 강아지가 춤을 추듯 딸랑이며 달려왔다. 친근하게 다가와 얌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는 강아지의 목줄에는 이름표가 달려있었다. 귀여워서 사진에 담으려는데, 마치 카메라를 의식이라도 하는 듯이 똑바로 바라보는 모습이 참 사랑스러웠다.
드디어 문이 열렸다. 등 뒤로 쏟아지고 있던 햇살이 열린 문틈 사이로 흘러 들어가 조금씩 창고 안을 비춰주었다. 아니, 창고라는 표현을 쓰기에는 거리감이 좀 있었다. 그런데 그 공간만의 이야기, 매력을 담자니 또 창고라는 표현이 제법 멋들어지겠다는 생각도 든다. 여기가 그냥 창고였다고요? 나는 들어가지도 않고 두리번거리며 그렇게 물었다. 설명해주지 않아도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한 사람이 아닌 몇 사람의 손이 거쳤다는 것. 그리고 어렵게, 복잡하게 계획해서 만든 것이 아닌 웃으며 이야기하며 즐겁게 꾸린 공간이겠다는 것.
어떠한 인테리어를 구축하기보다는, 어떠한 공간을 이루고 싶다는 꿈을 표현한 공간. 창문부터 의자며 작은 소품 하나까지도, 구입한 것이 아닌 주변에 버려진 것들을 가져다 재탄생 시킨 것들이라는 말에 또 한 번 놀랐다. 내가 잠시 기대어 앉아있던 의자도 직접 나무를 자르고 다듬고 칠해서 만든 것이라고 했다.
정교하게 짜인, 수평이며 수직, 균형이라는 정확하지만 차가운 단어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조금 삐뚤어지더라도, 일치하지 않더라도. 함께 모여 이야기하고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리던 세 사람의 모습이 떠오르는 내부 풍경에, 난로 하나 없는 그 공간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윤 씨가 창고 한쪽에서 준비해준 커피를 마실 때쯤에는 결국 외투를 벗어버렸다. 사진 속에서는 혹 차갑게 보일지 몰라도, 그곳은 충분히 따뜻함으로 채워진 공간이었다.
"들어왔을 때 딱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찾던 곳이 아닐까, 이곳에 있으면 하루에도 몇 편씩 글이 써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윤 씨가 물었다. 많은 예술가들이, 흔히 '영감'이 필요하다며 어디론가 떠난다. 어떠한 생각, 감정을 떠올리기에 적합한 나만의 장소를 찾아서. 내게 편안하거나 혹은 새롭고 낯설거나. 감정이 물들어 있거나, 그 감정을 그려보기 좋은 풍경을 찾아 거리에 상관없이 돌아다닌다. 나 역시도 자주 그러는 편이었고, 그래서 이곳에 들어왔을 때 처음 든 생각은, 예술가들에게 참 좋은 영감을 주는 풍경이 아닐까하는 작은 설렘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들이 많았다. 이건 뭔가요, 이건 혹시, 이것도 그런건가요?라며 내 시선이 머무는 곳과 머무는 것을 사진 속에 담으며 이야기를 들었다. 함께 만들었다는 세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하며 웃었을지, 한숨을 쉬었을지까지 궁금해지는 '사람의 흔적들'이 좋았다.
사실 그냥 한 번 걸어 놓았다가 '괜찮네, 그대로 두자'는 식으로 된 것들이 많다며 웃는 윤씨의 모습에서 사람 냄새가 가득히 풍겼다. 혹시 이것도, 그 때 쓰셨던 것 아닌가요?라고, 내가 창고 안을 한 바퀴 돌면서 찍은 사진들 중에서 하나를 내밀며 윤씨에게 물었다. 아마 내가 아닌 누구라도 같은 질문을 했을 것이다. 조금 낯설지만 상상을 자극하는 풍경. 틀만 남아있는 액자 속에, 목장갑 두개가 걸려 있었다.
"아, 맞아요. 그것도 그때 일 끝나고 잠깐 걸어놨었는데"
그 과정들이 참 재밌었다. 그냥 잠시 그렇게 두었는데, 괜찮아서 그대로 계속 두게 된 것들. 내게도 그런 풍경이 많아서 공감이 가면서도 참 따뜻했다. 글을 쓸 때도 몇 번이나 그랬었다. 글을 쓰다가 막혀서 일단은 이렇게 마무리해 놓고 멈추었다가, 나중에 다시 보니 좋아서 그냥 둔 글들, 그리고 어느새 그 글을 책 속에 똑같이 옮기고 그대로 마무리 되었던 이야기들. 더 자세하게 길게 듣지 않아도, 그때의 모습을 잠깐 떠오르는 것 만으로도 머리 속이 즐겁게 바빴다.
안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바깥 풍경을 보기로 했다. 들어올 때 잠시 창고의 옥상에 올라서서 주변을 둘러보니, 넓게 뻗어진 풍경이며 불어오는 바람이 참 맑고 시원했다. 밖으로 나오려는데 별이가 문 앞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늘 이곳을 지켜주고 있겠다는 생각, 그리고 늘 이곳에서 누군가를 반겨주고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문 옆에 있는 소쿠리에 담긴 감자들에도 시선을 빼앗겼다. 당신은 나의 소중한 인연이라는 말에.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아 바깥 풍경은 많이 둘러보지 못 했다. 그저 그곳 주변의 산책로를 따라 잠시 걸었다. 세 남자의 목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을만큼 조용한 동네. 아니 굳이 말하자면 자연의 소리만이 있었다. 차분히 흘러오는 바람 소리, 바스락 거리는 낙엽 소리, 갈대와 억새의 잔잔한 대화 소리. 조금 뒤에 떨어져서 걷고 있던 탓인지, 두 남자의 대화와 갈대와 억새의 소리를 구분하지 못 했다-고 표현하고 싶을 그런 숲 속같은 분위기였다.
길 중간 중간에 놓인 벤치들은 누가 놓은 것일지 문득 궁금해졌다. 이곳에 놓자고 어느 예술가가 슬쩍 거들지는 않았을까. 빛이 비치는 강과, 뒤로 갈수록 희미해지는 산줄기, 마음 껏 뻗어나간 나뭇가지들. 이곳에 앉아서라면 하루종일 글을 써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에, 고등학교 시절 한강 벤치에 앉아 글 쓰던 내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다. 새로운 곳이었음에도, 내게는 포근한 느낌.
잠시 걸었을 뿐인데 시간은 금방 흘러갔다. 그만큼 매력적인 풍경인 탓이다. 아마 더 넓게 걸어보기 위해서 조만간 이곳을 다시 찾지 않을까. 돌아오는 길에 다시 보니 산책로 앞에 세워놓은 작은 간판에는 CAFE 라고 표현해 놓았다. 누군가에게 따뜻한 장소, 의미 있는 장소가 되었으면 해서 차와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공간도 생각했었다는 말에 나는 반가움을 느꼈다.
지금은 더 나중을 기약하며 잠시 내려놓았지만, 나 역시도 그런 만남과 공간을 위해 카페를 운영했었다. 아마도 윤씨는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과는 조금 다르게, 여유롭게 누릴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을 만들고 싶었던 것 같다. 특별한 의미가 담긴 특별한 흔적들이 하나 하나 쌓일 수 있는, 따뜻한 공간.
돌아오는 길에 윤씨를 통해 지금의 풍경을 꾸리기 이전, 처음 창고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받았다. 세 사람이 얼마나 열심히 대화하며 움직였을지. 얼마나 즐거운 상상을 했을지. 어떤 꿈을 꾸었을지. 지금의 모습을 전혀 상상 할 수 없는 첫 모습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사람을 써서 인테리어를 하는 과정은 분명 정교하고 조화롭겠지만, 그건 도심 속 풍경으로 충분하다. 세상 모든 것이 다 일정하게 짜여질 필요는 없다. 똑같은 풍경 속에서는 생각 역시 똑같을수 밖에 없다. 재밌는 이야기, 즐거운 상상을 펼치기 위해서는 이런 독특한 공간, 그리고 독특한 생각을 가진 사람도 필요하지 않을까.
내가 그곳에 머무른 시간은 한 3시간 혹은 4시간이었을까. 그런데 하루내내 그곳을 여행한 기분이었다. 너무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귀로만 들은 이야기는 많지 않았지만, 눈으로 감정으로 들은 이야기가 너무도 많았다. 한 번쯤 벽에다 손을 대고 이전의 시간들을 떠올려보게 되는 공간. 그래서 나 역시도 이런 저런 이야기에 말이 많았었다. 이 공간이 더 의미 있는 공간이 될 수 있도록. 나처럼 이런 곳을 찾고 있을 사람에게, 어느 예술가에게. 다음 이야기를 펼쳐나갈 곳으로, 더 많은 흔적들로 채워나갈 곳으로. 내 글이며 사진이 그 그림에 있어 조금의 보탬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이곳을 다녀오면서, 그리고 이 글을 쓰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내게는 이런 시간이 가장 귀하다는 생각. 앞으로도 더 많이 걷고, 만나고, 대화하며 혹시 사람들이 보지 못하고 있을 공간의 풍경을 전해줄 수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 지금까지도 '감성'이라는 주제로 에세이를 쓰며, 혹시라도 놓치고 있을 마음의 풍경을 전하고자 했듯이.
감성기행 - 양평을 담다
작성 : 감성작가 이힘찬
동행 : PD 준영
장소제공 : 농번기 윤영하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