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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연경 Nov 10. 2024

섹스 앤 더 시티 미란다처럼 결혼에 쿨하고 싶지만

30대 INFJ와 ESTP의 결혼

출처: VOGUE

스무 살, 연애 한 번 못 해봤을 때임에도 섹스 앤 더 시티 미란다의 결혼은 쿨하고 멋져 보였습니다. 결혼에 냉소적이던 미란다는 스티브라는 남자를 만나 관계의 굴곡을 몇 번 겪은 후 평생을 함께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결혼에 환상이 없으니 정작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고민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비닐봉지가 찢어져 길거리에 널브러진 물건들을 스티브와 줍다가 우연히 옆의 아름다운 정원을 발견했고, 아담한 정원의 모습에 마음을 뺏긴 미란다는 이곳에서 결혼하겠다고 결정합니다. 이들의 결혼식을 보아준 사람도 스무 명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스무 명도 되지 않았지만 모두 미란다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복해 주었어요. 사람이 많았다면 가려졌을지도 모르는 진심과 진정한 행복이 몇 명의 사람만 남자 조금 더 뚜렷이 보였습니다. 식이 끝난 후에도 평소에 자주 가던 식당에서 단순하게 맛있는 음식을 즐긴 미란다는 소박한 결혼식의 끝을 보여줬습니다.


미란다가 멋있게 보인 이유는 자신만의 색깔이 드러나는, 자신의 생각이 올곧이 담긴 결혼을 치르는 '쿨함'에 있습니다. 나는 결혼식에 전혀 욕심이 없고 로망도 없으며 소중한 몇 사람의 축하를 받으면 된다는 태도. 나는 주류를 따르지 않고 내가 생각하는 길을 가겠다는 마음가짐. 저는 지금 스몰 웨딩을 예찬하는 게 아닙니다. 분수에 맞는 결혼식이든, 친인척만 모인 결혼식이든, 성대한 결혼식이든 상관없습니다. 여기서 방점을 '내가 생각하는 길을 가겠다는 마음가짐'에 찍고 싶습니다. 난생처음 들어 보는 결혼 용어가 난무하고 많은 돈이 오가는 와중에도 진정 어떤 결혼을 원하는지 파악하고 내가 생각하는 길을 간다면, 자신의 뜻대로 했기에 이는 궁극적으로 행복한 결혼으로 이어집니다. 저는 다른 사람의 수많은 이야기 속에서 제가 어떠한 결혼을 바라는지 수없이 되물었습니다.


막상 결혼을 준비하기 시작하고 예식장을 구경하면서

'모든 게 돈 덩어리군...!'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창밖으로 바닷가가 보이는 예식장에 마음을 빼앗기기는 했습니다만... 기본 금액뿐만 아니라 '추가'라는 단어가 무색해지는 추가금의 액수를 보니 웨딩 카페와 유튜브에서 금액을 줄이기 위해 애쓰던, 또는 가격이 비싸지만 로망을 채워 주는 예식장과 그 반대인 예식장 중에서 고민하는 예비 신부들이 이해가 됐습니다. 어떠한 결혼 방식을 원하는지, 어디에 돈을 많이 쓰고 싶은지 자기 뜻을 확립하고 현명하게 돈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저는 아직 대부분 명확하게 확립되지 않았고 결혼 준비에 모든 집중력을 쏟기에는 일이 너무 바쁩니다. 그렇다고 결혼 준비를 대충하기는 싫고요... 하하. 다음 주에 웨딩 플래너를 만나고 조금 수월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한국은 결혼식이 부모님의 행사인 경우가 많습니다. 하객도 친척을 제외하고 부모님의 지인이 많죠. 저는 삼십 대 중반의 막내라서 예전만큼 부모님이 활발하게 활동하지 않으시는지라 그나마 부모님의 비중이 덜하기는 합니다. 그러나 식장 예약부터 상견례, 예단 등 중요한 문제에 부모님이 빠질 순 없기에, 그리고 부모님도 소중하기에 양가 부모님들을 배려하고 맞춰 가면서 결혼식 참석 인원부터 하나씩 결정해 나가고 있습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MBTI뿐만 아니라 집안의 분위기와 생각도 다른 부분이 있어서 곱슬머리 그와 많이 투닥거렸고요. 앞으로도 투닥대고 화나고 삐치고 화해할 미래가 보입니다. 섹스 앤 더 시티의 미란다처럼 오롯이 자신만을 고려한 스몰 웨딩은 할 수 없지만 양가 부모님의 의견을 최대한 수렴하면서 나, 그리고 우리의 바람도 채워 넣는 것이 현재의 목표입니다. 이를 위해선 대전제, '나, 그리고 우리의 바람'이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해야겠죠.


책 <너무나 많은 여름이>의 '고작 한 뼘의 삶'이라는 챕터에서 다음과 같은 문구가 나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하고 말고요. 소설가의 재능이란 꿈꾸는 것이 전부다. 꿈꾸는 능력은 꿈을 현실로 만든다. 하지만 꿈같은 현실이 내 것이라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결코 내 것이 될 수 없는 이 선물에 나는 지금까지도 만족하고 있다.


처음에는 이 문장이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알 수 없어 고개를 갸웃했는데요. 저의 직업인 '번역가'를 넣었더니 이내 마음에 와닿는 문장이 되었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하고 말고요. 번역가의 재능이란 꿈꾸는 것이 전부다. 꿈꾸는 능력은 꿈을 현실로 만든다. 하지만 꿈같은 현실이 내 것이라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결코 내 것이 될 수 없는 이 선물에 나는 지금까지도 만족하고 있다.



어떠한 꿈이 이루어지기를 너무나도 바라면 결국 꿈은 현실이 됩니다. 그러나 이 꿈같은 현실이 정말 내 것인지 믿기지 않을 때가 있죠. 내 것이 됐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계속 노력하지 않으면 꿈이 자신의 손에서 모래처럼 빠져나갈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계속 꿈을 꿔야 합니다. 꿈꾸는 것이 전부입니다. 간절히 바라는 꿈은 우리가 현실에서 그것을 이루도록 만들고,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옳은 방향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리라 믿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꿈꿔야 합니다.


불현듯 저에게 결혼도 이 문장과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온전한 나의 것은 아니지만 이는 꿈같은 현실이자 선물입니다. 제가 결혼해서 이 귀여운 남자와 살며 행복을 느끼리라 믿으며 꿈꾸고 있습니다. 이 꿈은 앞서 말한 번역가와는 결이 다르고 특별합니다. 이 꿈은 저 혼자가 아닌 곱슬머리 그와 함께 이뤄야 하거든요. 


언제나 그렇듯 글을 쓰자 신기하게도 저를 조금 되찾은 기분이 듭니다. 저는 연애하거나 결혼을 준비하는 분에게 글 쓰기를 추천합니다. 완벽한 답을 내리지는 못했지만 머릿속에 제멋대로 엉켜 있던 생각들이 위에 써둔 내용으로 조금 정리되었습니다. 글 쓰기는 제가 놓치고 있던 진짜 생각을 만나게 해 줍니다. 글로 남겨 두면 시간이 흘러 미소가 나오는 추억으로 남는다는 사실도 경험으로 깨달았습니다.


산더미처럼 쌓인 본업의 일과 마주하며 결혼 준비의 햇병아리 단계에도 진입한 저. 갈 길이 멀지만 결혼을 준비하는 글을 계속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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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 번역가: https://linktr.ee/linakim_8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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