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영원히 사랑하고 싶은 것들
얼마 전 중국판 AI 서비스 딥시크가 전 세계를 뒤흔들었다. 챗지피티보다 훨씬 적은 자금으로 더 뛰어난 결과를 도출해 내기도 한다는 충격적인 발명품, 딥시크. 챗지피티의 핵심 기술을 제공하는 엔비디아의 주가를 잠깐일 수 있으나 나락으로 보냈다. 물론 딥시크도 엔비디아의 기술을 사용한다고는 하나 엔비디아가 타격을 피할 순 없었다.
AI 서비스가 주가를 쥐락펴락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평범한 일본어 번역가인 나에게 챗지피티를 포함한 AI 서비스는 든든한 비서가 된 지 오래다. 번역할 때는 기밀문서이기에 당연히 쓰지 않으나, 그 외 지식을 손수 찾는 데 드는 시간을 대폭 아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자연어를 처리해 최적의 결과를 도출해 주는 AI 서비스야말로 빠른 결과를 원하는 현대 사회의 빛과 소금 같은 존재가 아닐까.
한편 나는 여기서 착각에 빠졌다. 첫 번째 착각은 챗지피티가 우리에게 순식간에 결과물을 내놓듯 나도 인생에서 바라던 결과를 쉽게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 마치 금메달리스트에게만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언론사들처럼 결과만을 최우선 가치로 두는 현상이 아직 세상에는 만연하다. 실제로는 지리멸렬한 과정을 거치지 않고 미리 꿈꾸었던 결과는 만들어 낼 수 없음에도 말이다. 그리고 두 번째 착각. 나는 두 번째 착각을 깨달았을 때 상당히 놀랐다. 바로 인생에서 목표로 한 결과를 얻었을 때 사실 가장 행복하지는 않았다는 것. 이조차 몰랐던 나는 지금까지 너무나 많은 결과에 목을 매었다.
나는 결과에 목을 매는 프리랜서다. 일감이 없어 불안한 프리랜서에게 실적서를 업데이트해서 메일을 돌리라고 하는 조언을 수없이 들어왔다. 그러니까 프리랜서는 필연적으로 자유와 불안을 맞바꾼 직종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불안하면 생각이든 행동이든 균형을 이루기 어렵다. 이제는 그림의 떡처럼 느끼는 단어 워라밸을 지키기는커녕 새벽부터 저녁까지 일에 매달리기 일쑤였다. 이때 목표는 하나였다. 최대한 많은 결과를 이루어 내는 것.
나는 결과에 목을 매고 있을지도 모르는 예비 신부다. 고개를 돌려 탁상 달력을 보니 2월부터 할 일로 신혼여행 예약, 스냅사진 준비, 예복, 반지 구매가 적혀 있다. 이 하나하나의 일 안에는 질릴 정도로 많은 과정이 숨 쉬고 있을 테다. 그러나 나에게 목표는 하나였다. 그저 최대한 물질적으로 불만족스럽지 않은 결과를 내는 것. 물질적이지 않은 것, 즉 서로의 가치관이 무엇인지, 가치관이 달라도 서로 수용할 수 있는지와 같은 부분이 더 중요함을 이제야 어렴풋이 알기 시작했다.
결과만 보았을 때 그리고 과정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겼을 때는 무엇을 잃을까? 나는 '재미'였다. 재미가 없었다. 결과를 이루어도 생각보다 허무했다. 자유로운 프리랜서 생활과 나의 짝이 될 사람과의 결혼은 생각만 해도 재미있는 일인데 말이다! 나를 감성적이게도 이성적이게도 해주는 일, 내가 좋아하는 조용한 것과 단조로운 것, 안전지대라고 느끼는 감각은 안타깝게도 목표만 보아서는 느끼기 어려웠다.
물론 챗지피티처럼 빠른 결과를 도출하길 바라는 세상에서는 결과라는 주박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힘들다. 그리하여 나는 목표를 버리지 않으면서 과정도 등한시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다음과 같은 방법을 쓴다.
1.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긴 것이 나를 살린다.
목표만을 향해 달렸다. 너무나 중요하게 느껴지는 무언가가 손에서 빠져나갈까 봐 신경 쓰느라 지쳤다. 만약 이렇다면 지금까지 소홀히 하던 부분, 놓치던 부분,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기는 부분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나의 경우 일, 결혼, 인간관계에서 결과가 안 좋을까 봐 고민하다가 스트레스를 받아서, 어이없게도 정작 중요한 매일의 루틴, 업무, 가치, 순간을 기꺼이 즐기는 마음을 무시할 때가 많았다. 지금 진정으로 필요하고 나를 살리는 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겼던 일들이었음에도.
2. 과정에 목숨을 걸고 집중한다.
얼른 끝내야지, 나중에 있을 일을 잘할 수 있을까, 난 잘될 수 있을까. 복잡한 생각이 들수록 억지로 과정에 집중해 보자. 책을 한 권 완독하겠다는 생각도 중요하지만 그 안에 있는 문장 하나하나를 집중해서 느낄 때 희열을 느낀다. 글 하나를 완성해야겠다는 계획도 좋지만 문장 하나하나를 쓰는 과정에 집중한다. 조급한 마음이 들수록 그것이 주는 감각, 이를테면 빛깔, 울림에 집중한다. 그곳에 행복이 깃들어 있을 때가 많았기에.
가끔 어떠한 일은 나에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일은 나를 살린다.
쉼 없이 달리다가도, 어두운 심연에 빠져 있다가도 위의 문장을 생각해 본다. 오만하게도 지금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기는 일은 무엇인가? 다른 사람만을 신경 쓰다가 정작 가장 중요한 나를 홀대한 적이 있다. 반대로 나만 생각하느라 가까운 사람을 홀대한 적도 있다. 결과는 얻더라도 과정에서 즐기지 못했다. 앞으로는 홀대했을지도 모르는 것들에 더 주목하리라. 그 안에 빛이 숨어 있을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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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 번역가: https://linktr.ee/linakim_8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