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초 만에 대답

일본 부업 강사의 시간

by 리나

[7월]


백색소음을 들으며 일하던 평소와는 달리 새벽 6시부터 밝은 아이돌 노래를 시끄럽게 틀었다. 음악 소리에 밀려오던 잠을 겨우 쫓아내고 다시 일본어를 한국어로 번역하기 시작했다. 방대한 양의 번역에 속을 태울 시간조차 없었다. 얼른 마무리하고 나중에는 일본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야 했다.




본업이 프리랜서 번역가이기에, 프리랜서 특성상 매달 어느 정도의 업무 의뢰가 들어올지 정확하게 가늠할 수 없다. 어느 날 갑자기 바빠질 수도, 한가해질 수도 있다. 많은 회사에서 의뢰하는 일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 회사에서 많은 양을 맡기는 일도 잘 처리해야 한다. 그달은 게임 번역 업무를 맡기던 회사에서 평소보다 더 많은 일을 의뢰했다. 본업이고 당연히 똑 부러지게 해내고 싶은 욕심이 있었기에 평소처럼 의뢰를 수락하고 번역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부업이 점점 인기를 얻고 있었다는 점이다. 수업 횟수가 1,000명에 가까워지자 나의 프로필을 보고 신청하는 학생 수가 갈수록 늘었다. 처음에는 한 달에 5만 원만 벌어보자는 목표로 시작한 부업이었지만 점차 비대해져서 수입이 5만 원의 몇십 배가 되었다. 수입이 증가한 건 좋았지만 쏟아야 하는 시간이 늘었다. 본업과 부업이 모두 바쁘다 보니 결국 전날 자정까지 부업인 수업을 진행한 후, 다음 날 새벽에 일어나서 번역할 때가 많았다. 몰려드는 잠을 깨기 위해 평소와 달리 밝은 노래까지 틀면서 작업을 할 정도였다. 피곤했다. 그렇지만 당연하게도 높은 결과물을 내기 위해서는 집중해야 했다.

프리랜서는 '1인 기업'이기에 일을 많이 수주하고 수입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길고 오래 일하기 위해 적당한 휴식과 힐링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끊어낼 때는 일을 확 자르고 쉬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건강이 안 좋아져서 오래 일하지 못한다. 앞만 보고 빠르게 달리다가 체력이 소진되어 고꾸라지는 단거리 경주마처럼 말이다.


학생들이 신청할 수 있는 시간도 적어졌다. 수업의 인기가 높아져 학생들의 신청은 많아지는데, 나는 한 명인지라 1:1 수업을 신청할 수 있는 횟수에 한계가 있었다. 거기에 본업을 하고 남는 시간에 수업하려니 학생들의 선택할 수 있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겠다는 걱정이 앞섰다. 다른 강사를 슬쩍 보니 이 정도 궤도에 올랐을 때 전업으로 전환해 강사에 집중하거나, 아니면 아쉽지만 본업에 집중하기 위해 휴식 기간을 가지는 듯했다.


며칠 후 치열하게 게임 번역과 그날 수업을 마무리하고 소파에 누워 생각해 봤다. 이 정도 양의 번역을 마무리하면 건강을 위해 며칠간 휴식을 취하고 다른 일을 해야 하는데, 당장 내일 아침부터 수업이 예정되어 있었다. 잠깐 쉬니 피로가 풀리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문득 얼마 전 남자친구와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내가 번역과 강의가 많아서 힘들다고 하자

남자친구: (장난으로) 그럼 번역 그만둬.

나: (0.1초 만에 대답) 싫은데?


이렇게 대답하자 남자친구는 0.1초 만에 싫다고 대답하냐며 웃었다. 미국 드라마 '프렌즈'에서 망설임 없이 생각나는 대로 말하는 게임을 했을 때 친구들의 솔직한 감정이 드러났던 것처럼, 나 또한 이 대답에 모든 마음이 드러나 있었다. 아쉽지만, 너무나 사랑했지만 강사 업무는 무기한 휴식에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본업인 번역에 집중하기로 하고 강사 업무는 서서히 정리해 나갔다. 운영진에게 9월 이후 수업 신청을 받지 않겠다는 의사를 전달하자 9월 시간표부터 학생들이 신청하지 못하도록 블록 처리되었고, 아무런 이변 없이 속전속결로 진행되었다. 학생들에게 공지 사항으로 9월부터 무기한 휴가에 들어간다는 글을 남기고, 수업 기간이 긴 25X5 등 패키지 수업을 닫았다. 그만두겠다는 다짐을 하기까지 시간이 걸렸을 뿐 결정한 뒤로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무기한 휴가를 결정한 후 나의 생각을 네이버 블로그에 써서 올리니 '보통 번역이 부업이고 강사가 주업이라고 생각하는 인식이 많은 것 같은데 신기했어요!'라고 댓글을 쓴 사람도 있었다. 번역을 향한 인식에 조금은 슬퍼졌지만, 이러한 의견은 생각한 적이 없었기에 한편으로 신선하게도 느껴졌다. 부업은 그만두어도 아무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도록 본업을 열심히, 맹렬하게 해야죠, 뭐.


공지 사항을 확인한 학생들이 아쉬움에 찬 목소리로 언제 돌아올 예정인지 물었다. 수고하셨다는 말도 웃으며 덧붙여주었다. 인생에서 행복한 기분으로 마무리 적이 그다지 없었는데 한국어 강사라는 부업은 그것까지 이루어준 듯하다. 학생의 질문에 단호하고 차갑게 말하지 못하고 바쁜 상황이 정리되면 돌아온다는 기약 없는 말을 남겼다.


"선생님. 지금까지 정말 감사했습니다. 언젠가 또 만나요."


마지막 수업, 남학생의 마지막 말로 나의 강사 생활은 마무리되었다. 일본인이 대부분인 플랫폼에서 한국어를 가르친다는 신기함, 첫 학생을 노트북으로 보았을 때의 묘한 설렘, 아이디어를 수업으로 실현해내서 뿌듯했던 마음, 일이 고돼서 느꼈던 슬픔, 학생들의 따스한 말, 점점 높아지던 매출, 웃으며 끝낼 수 있었던 마지막.


나태주 시인의 시처럼, 꽃을 보듯 이 모든 것을 작게 미소지으며 바라보았다.

삶의 비탈진 길을 걷다가 우연히 마주한 진한 분홍빛의 아름다운 꽃을 오래도록 본 것 같은 기분.

마지막까지 참 감사했다.


-프리랜서 김연경


#일본어 #한국어강사 #부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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