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글쓰기

by anego emi

험한 바다를 건너, 삶의 파도를 넘어

그 길을 함께 가는 철이 있습니다


낯선 세상 끝, 낡은 철선 하나로

인생을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때로는 만선의 기쁨을

때로는 거친 파도에 낯선 인생을

그 세월 속에서 철선은 단지 배가 아니라

인생을 함께 해온 배입니다


때로는 작은 철조각이 친구가 됩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때로는 평탄하고

때로는 어려운 길을 만나게 됩니다

당신이 어떤 길을 가신다 해도 철로 만든

나침판의 작은 바늘이 길을 안내하듯 언제까지나

철은 당신 곁에 함께 할 것입니다




헤드라인은 물론이고 본문카피가 수려한 위의 카피는 철로 유명한 포스코의 기업 이미지 신문 광고입니다. 지금이야 인터넷, SNS와 다양한 영상 매체에 밀려 그 역할이 점점 사라져 가는 신문 광고이지만, 제가 한창 카피를 배우고 쓸 시절에는 제법 굵직한 캠페인은 물론이고 커뮤니케이션의 한축을 담당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답니다. 15초 영상에서 다 담지 못한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들이 차고 넘쳤으니까요. 소위 지면 광고( Print AD)라고 불리는 신문과 잡지 광고의 카피는, 헤드라인과 리드 카피, 본문카피 세 가지 파트로 구성됩니다. 헤드라인에서 카피라이터의 인싸이트와 아이디어가 돋보인다면, 리드카피에서는 콘셉트의 명확성이, 본문카피에서는 필력이 돋보이기 마련이지요. 그래서 카피라이터들 중에서도 본문카피 쓰는 것을 몹시 싫어하거나 두려워하는 부류가 종종 있습니다. 아마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헤드라인만 똑 부러지게 잘 뽑으면 그만이지, 읽지도 않는 본문 카피를 잘 쓰려 애쓸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본문카피를 제대로 쓸 수 없다는 것은 제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반증합니다. 즉슨, 요목조목 팩트들을 파고 들어서 그것을 타깃들에게 전달할 충분한 이해와 준비가 덜 되었으며, 어쩌다 톡톡 튀는 헤드라인은 썼을지언정 여전히 그 헤드라인과 메인 콘셉트 혹은 메시지와의 연결성을 명확하게 찾아내지 못했다는 것이지요. 이런 헤드라인들은 첫눈에 그럴싸해보지만 캠페인으로써 메시지를 끌어가는 힘이 약하고 결국은 순간 반짝 호기심을 끌다가 금방 잊히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베테랑 카피라이터들은 부사수들에게 본문카피 쓰기의 중요성을 매번 잊지 않고 강조합니다. 저의 사수 또한 그러했는데요, 언제나 저에게 각 시안마다 2가지 버전의 본문카피를 쓰게 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몹시 곤욕스러웠지만 그 덕분에 저는 본문카피 쓰는 재미를 알게 되었고, 이른 새벽에 내가 치는 컴퓨터 자판 소리를 음악처럼 들으며 카피를 쓰곤 했답니다. 자 그러면, 한 줄도 어려운 카피를 어떻게 하면 길게 써내려 갈 수 있을까요. 제가 터득한 비법을 알려드리면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는 것처럼 써내려 가는 것입니다. 구체적인 대상을 떠올리고 그 사람이 편지를 읽으면서 끄덕일 만한 소재를 고르고, 가능한 그 사람에게 이야기하듯 쓰는 것입니다. 인간의 두뇌는 이야기에 반응을 하고, 그 이야기는 이미지로 연상이 될 때 호기심을 자극하고 끝까지 집중하게 되니까요. 상황이나 기분, 배경 등이 글을 통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보이는 글을 쓰는 것입니다. 위의 카피들처럼요. 카피를 읽어 내려가다 보면 늘 우리와 함께 하지만 인지하지 못했던 철 조각들이 새삼스럽게 눈앞에 떠오릅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이것의 바로 바디 카피의 힘이며 카피라이터만이 느낄 수 있는 짜릿한 유희입니다. 요즘 SNS의 인기글들도 이야기하듯, 비주얼이 없지만 눈에 보이듯 쓴 글이 대부분입니다. 어설픈 비주얼을 활용하여 혼돈을 주는 것보다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보이는 글쓰기가 주목을 끌기에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요? 잘 쓰려고 하기보다는 쉽게 쓰고 사실이나 상황의 나열보다는 그때의 분위기나 기분을 보여주는 글을 쓰는 겁니다. 시작이 어렵지 쓰다 보면 글도 카피도 반듯이 늘기 마련입니다. 중요한 것은 쓰는 것, 계속 쓰는 것입니다.


<아네고 에미>

# 매주 화요일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