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역사 유적지 탐방
8월 중순에 가족여행을 종용할 때 입에 담아서는 안 될 금기어가 몇 가지 있다. 그늘을 찾기 힘든 야외 유적지라든가, 산인지 무덤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고분이라든가, 햇빛이 가차없이 내리쬐는 골목길이라든가.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박물관 내부에서 보낼 것이며, 고분에 가서도 국가유산 투어 여권에 도장만 받고 올 것이고, 맛집을 미리 찾아두었으니 봉리단길을 오래 걸을 필요는 전혀 없다고 설명함으로써 남편과 아이를 안심시키는 데 성공했다.
김해에 도착하자마자 주린 배를 채울 식당부터 찾았다. 봉리단길 맛집으로 소문난 곳의 돈까스는 끝내줬다. 바삭하고 고소한 등심만 선호했던 나도 해가 갈수록 식성이 바뀌는지, 퍽퍽하다고 눈길도 주지 않았던 안심의 담백함이 오묘한 매력으로 다가왔다.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깨끗한데다 심플하고 단정하게 꾸며진 실내에서 기름진 음식을 먹으니 양심적으로 널널하다고는 할 수 없는 하루 여정을 시작할 힘이 솟아나는 듯했다.
식사 후 들른 소품샵에서는 아이가 마음에 들어 하는 물건 두 개 중 한 개만 사주겠다는 파와, 둘 다 갖고 싶다는 파로 나뉘어 다툼을 벌였다. 중도파 남편이 후자의 손을 들어준 덕분에 내 숄더백 안에는 내 것도 아닌 사과와 체리 모양 열쇠고리가 예쁘게 포장된 채로 자리 잡게 되었다. 다음번 여행 때는 너도 네 가방을 꼭 들어. 나는 분풀이하듯 말했다.
여행의 첫 번째 코스로 방문한 국립김해박물관, 그중에서도 하이라이트는 어린이박물관의 ‘밥상 차리기’ 코너였다. 선사시대 사람들의 식재료 모형이 칸칸이 구획된 수납장에 쌓여있고, 아이들이 그중 몇 가지를 골라 그릇에 담아 화덕 모양 토기에 넣으면, 정면 스크린에 밥그릇 사진이 찍히는 방식이었다. 이 간단한 놀이가 무척이나 재미있는지 아이는 제한된 재료로 스무 번이 넘게 밥상을 차렸다. 나와 남편이 신석기 시대 사람이 되어 도토리, 생선, 견과류, 잡곡, 고기 중 먹고 싶은 것을 고르고 아이는 그것을 이리저리 조합하는 방식이었는데, 스크린에 자기가 차린 밥상이 뜰 때마다 신이 나서 손뼉을 치고 폴짝폴짝 뛰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가짜 먹을거리조차 맛깔나게 보일 지경이었다.
두 번째 행선지인 대성동 고분군 앞에 서자, 완만한 경사를 이룬 언덕이 우리 가족을 반겼다. 즉시 내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여기를 올라가기는 힘들겠다는 판단이었다. 오후 네 시의 햇살은 여전한 뜨거움을 자랑했고 천오백 년 전의 무덤은 남편과 아이의 주된 관심 분야가 아니었다. 미련 없이 바로 옆의 고분박물관으로 향하려는 순간, 아이가 먼저 나서서 언덕을 올라가겠다고 선언했다. 내심 반가웠던 나는 여덟 살의 마음이 변하기 전에 얼른 양산을 펴주었고, 어른들보다 체력이 좋다는 사실을 뽐내고 싶어 안달이 난 아이가 냉큼 계단에 발을 디뎠다. 얼굴이 벌게진 채로 양산도 없이 터덜터덜 따라오는 남편이 조금 안쓰럽긴 했지만 아이가 가고싶다는 데 어쩌겠나. 부모는 따르는 수밖에.
그건 생각보다 꽤 괜찮은 일이었다. 주위의 낮은 아파트 단지보다 더 낮은 구릉을 셋이서 느긋이 오르는 일 말이다. 언덕을 덮은 잔디는 푸르렀고 네모난 둘레를 따라 심어진 관목은 옛 무덤이 있던 자리를 말없이 가리키고 있었다. 사방에 시야를 가리는 방해물도, 우리 외의 다른 방문객도 없었다. 문득 전에 비슷한 기분을 느꼈던 것 같아 기억을 되살려보니 7년 전 제주도에서 오름에 올랐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도 꼭 가슴 속에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았었다. 차이가 있다면 내 뱃속에서 함께 오름을 올랐던 아이가 이제는 나보다 훨씬 앞서서 걸어간다는 것이었다.
대성동 고분군과 박물관을 방문하기 전 나름대로 아이에게 사전 지식을 가르쳤다. 도서관에서 도움이 될 만한 책을 찾아보았더니 주니어 김영사에서 나온 어린이 삼국유사가 적당해 보였다. 거기에 <별난역사톡톡 장소편:무덤>을 곁들이니 만족스러운 조합이 나왔다. 김수로왕의 탄생기와, 석탈해와의 결투 이야기를 들려주자 아이가 꽤 재미있어하면서 열심히 들었고, 고분과 관련해 알아야 할 기본 용어들 – 널, 덧널, 돌방무덤, 돌무지무덤 등 –을 퀴즈 형식으로 알려주니 아주 좋아했다. 덕분에 나도 덩달아 공부가 되었다.
이렇게 예습 후에 김해를 방문하니 매우 유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특히, 남편과 아이는 이미 한 차례 고분을 올랐다 내려와 매우 지친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흔쾌히 야외전시관까지 들러주었다. 사실 그 야외전시관은 가장 중요한 무덤 두 기를 발견 당시와 똑같이 전시해 놓았다는 점 외에는 화려하지도, 시원하지도 않은 곳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나를 탓하지 않는 관대함을 보였다.
땀이 전신을 적시는 중에는 절대 가깝다고 할 수 없는 거리의 길을 걸어 관람 종료 시각 20분 전에야 겨우 대성동고분박물관에 입성하자, 수고했다는 듯이 에어컨 바람이 우리를 반겼다. 잊어버리기 전에 국가유산청 여권 도장부터 쾅쾅쾅 찍고, 아이와 남편이 로비에서 노는 동안 천천히 전시실을 둘러보며 얼마 남지 않은 관람 시간을 충분히 즐겼다.
하나 남은 목적지인 수로왕릉은 관람시간이 8시까지였으므로 제일 마지막 코스로 일정을 짜두었었다. 이미 저녁 6시가 넘은 시각이라 지칠 대로 지친 부녀는 차에서 쉬게 하고 나 혼자 왕릉 정문으로 향했다. 한 무리의 가족이 파란색 수첩을 들고 나와 같은 방향으로 향하기에 잠시 지켜보았더니, 대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가장 어린 아이도 자기의 여권을 고사리 손에 쥐고 열심히 엄마를 따라가고 있었다. 국가유산투어 여권 사업은 정부가 기획하고 추진한 정책 중 가장 훌륭한 것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고려시대부터 죽 수로왕의 무덤으로 알려져 왔다고 하지만, 능의 어떤 면모도 고대에 축조된 것으로 보여지지 않았다. 홍살문과 각종 전각, 석물들까지, 모르고 보면 그냥 조선시대 무덤 같았다. 솔직히 진짜 수로왕이 묻혀있을 리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일 년에 두 번씩 지내는 제례가 경상남도 무형문화재로까지 지정되었다고 하니 고고학적인 의미보다 전통 보존 차원에서 이 유적의 중요성을 실감할 수 있었다.
저녁을 먹기 위해 다시 봉리단길로 돌아간 우리는 운좋게도 핫플만이 모인 그곳에서도 최고 핫플이라는 규카츠 집에 그리 길지 않은 기다림 뒤에 자리잡을 수 있었다. 맛있는 음식, 아늑한 공간, 오순도순 모여앉아 도란도란 정담을 나누는 손님들, 깨끗한 화장실, 친절한 서비스 등이 한데 어우러진 식사 시간은 지극히 평화로웠다. 무엇보다 당일치기 김해 여행을 매우 알차게, 무사히, 재미있게 마쳤다는 사실이 마음을 푸근하게 해주었다. 더운 여름날 쉽지 않은 여정이었을 텐데도 잘 따라와준 딸아이와 남편에게 고맙기만 했다. 그날의 여행에서 느낀 고양감이 어찌나 컸는지 다음 한 주일을 내내 그 힘으로 살아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자 꼬리가 긴 한여름의 태양조차 완전히 종적을 감춘 모습이었다. 낮에는 그렇게나 붐빈다는 거리에도 어느새 인적이 드물어지고 작고 예쁜 가게들의 외관과 안쪽에서 흘러나오는 은은한 불빛만이 밤이 내려앉은 거리에 다정함을 더하고 있었다. 뱃속이 든든한 것은 방금 먹어치운 다량의 튀긴 고기 때문만은 아닌 듯했다. 그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무언가가 선사하는 포만감을 만끽하며 발걸음도 가벼웁게 주차장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