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 말하면 독서논술 수업이다.
혼자서는 글쓰기 실력이 잘 늘지 않는 것 같아 선생님을 구하다가, 성인도 지도해 준다는 학원을 발견했다. 나는 전에 피아노 레슨을 통해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경험한 바 있었다. 글쓰기도 피아노처럼 기술이라면 도제식 수업이 먹힐 거라고 생각했다.
선생님은 초중고 전문이다. 그래도 나는 성인이니 아이들 것과는 다른 커리큘럼을 갖고 오시겠거니 기대했지만, 내 앞에 놓인 건 학생용 교재였다.
당황한 것도 잠시, 나는 이 수업이 내게 효용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매주 선생님이 제시하는 책을 읽고 수업에 참석하면, 교재를 이용해 복습을 하고 영상자료를 보며 심화 학습을 한다. 마지막 20분 동안에는 20줄짜리 논술을 써서 내야 한다.
우선 제공받는 책이 내가 혼자라면 거들떠도 보지 않을 분야의 도서들이라는 데 큰 의미가 있었다. 다음은 책을 읽기 전과 후의 내 감상을 정리한 것이다.
1. 《타고 갈래? 메타버스》
전 : 메타버스? 용어도 어렵고 뭔가 있어 보이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지.
후 : 우리 아이도 제페토(네이버의 메타버스 서비스)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하면 어쩌지?
2. 《어쩌다, 난민》
전 : 내 인생도 충분히 힘들고 피곤한데 남의 힘든 얘기를 굳이 찾아서 읽어야 해?
후 : 생각보다 우울하지 않고 재미있네. 결말이 아주 현실적이어서 마음에 든다.
3. 《군대 없는 나라, 전쟁 없는 세상》
전 : 이 사람은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후 : 재미가 없긴 하다.. 현실성도 없어 보인다. 그래도 이 분야의 책을 읽은 일 자체가 뿌듯하다.
이렇듯 편독이 심한 나의 독서를 수업이 적절히 보완해 주고 있다.
읽기 외에 쓰기 측면의 효과는 이러하다.
나는 생각이 강점이면서 약점이다. 관심 있는 주제에 대해서는 생각이 흘러넘치고, 잘 모르는 주제에 관해서는 아예 아무 생각이 없다.
그런데 수업시간에 쓰는 논술은 무조건 20줄짜리이다. 생각이 너무 많으면 압축해서, 너무 없으면 머리를 짜내서 20줄을 채워야 한다.
둘 다 만만한 과제가 아니다. 아무것도 없는 백지에 줄만 좍좍 그어진 걸 보면 아무리 취미로 하는 일이라도 얼마간 스트레스를 받는다. 어떤 주제로도 일정한 분량의 글을 써낼 수 있도록 훈련한다고 생각하고 감내하고 있다.
글쓰기와는 상관없는 장점도 하나 있다. 다시 학생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선생님은 읽을 책과 교재와 필기구를 다 알아서 골라주고 준비해 준다. 나는 그저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시키는 대로 설명을 듣고 교재를 보다가 마지막에만 조금 머리를 쓰면 된다. 그게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나는 매일 직장에서나 가정에서나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린다. 한 사람의 어른 몫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과 피로감이 크다. 그런데 학원에 몸만 가서 앉아있는 순간, 그 모든 의무에서 해방되어 좋아하는 공부만 할 수 있는 학생이 된다. 나에겐 대단한 힐링이다.
오늘도 학원에 간다. 지난번 논술은 내가 너무 피곤해해서 선생님이 숙제로 미뤄줬다. 학창 시절처럼 벼락치기로 후다닥 휘갈겨서 들고 간다.
이번 주 책은 역사동화 《막손이 두부》다. 어제 퇴근 후 한달음에 읽었다. 무척 재미났다. 오늘은 하품을 좀 덜 해야 할 텐데. 일 끝나고 수업을 들으려니 체력의 한계를 느낀다. 그래도 졸지만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