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창작동요 예찬

저와 딸아이가 즐겨 부르는 동요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by 세온


소설 <작은 아씨들>에 등장하는 마치 가는 음악을 사랑하는 가족이다. 피아노를 잘 치는 셋째 베스가 반주를 맡고 꾀꼬리처럼 아름다운 목소리의 소유자인 어머니가 주도하여 노래를 부르며 하루를 마치는 것이 그들의 습관이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이상적인 가정 그 자체인 그들을 동경했고, 그 중에서도 이렇게 가족 모두가 음악과 함께하는 시간을 갖는다는 점이 가장 부러웠다. 그래서 언젠가 나도 어른이 되고 엄마가 된다면 꼭 저런 시간을 마련하겠노라 다짐했었다.


그렇다면 가족과 함께 부르기에 가장 좋은 노래는 어떤 종류일까. 답은 클래식도 대중가요도 성인가요도 아닌, 바로 동요다. 동요 중에서도 지나치게 단순한 것이 아닌, 자녀에게는 동심을 심어주고 부모의 지친 마음에는 치유가 되어줄 수 있는 아름답고 수준이 높은 곡들 말이다. MBC 창작동요제에서 발표된 곡들이 바로 그런 작품들이다.


MBC 창작동요제는 80~90년대에 존재했던 수많은 동요제 중 가장 높은 권위를 자랑했던 동요제다. 이 대회가 배출한 곡들은 대중적으로도 너무나 유명해져서,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제목은 몰라도 멜로디는 다 아는 작품이 많다. 대표적으로 <새싹들이다>(83년 제1회 대상), <노을>(84년 제2회 대상), 종이접기(86년 제4회 대상), 이슬(88년 제6회 대상), 하늘나라 동화(91년 제9회 대상) 등등이 있다. <새싹들이다>는 '마음을 열어, 하늘을 보라, 넓고 높고 푸른 하늘', <노을>은 '바람이 머물다 간 들판에 모락모락 피어나는 저녁 연기', <종이접기>는 '색종이를 곱게 접어서, 물감으로 예쁘게 색칠하고', <이슬>은 '호롱호롱호롱 산새소리에 잠깨어 들로 나가니', <하늘나라 동화>는 '동산 위에 올라서서 파란 하늘 바라보며' 로 시작하는 노래들이다. 첫 소절만 들어도 무슨 노래인지 떠오르지 않는가?


이렇게 국민 동요 수준으로 등극한 작품들 뿐 아니라 많은 곡들이 아름답기 그지없는 가사와 서정적인 선율로 유명했다. 또 작곡가는 현직 음악교사여야 하고, 가창자는 실제 초등학생 정도 나이의 어린이어야 한다는 참가자격도 잘 알려져 있었다. 이때 입상작들의 수준을 보면 음악 교사들의 작사, 작곡 능력이 프로들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을 정도로 훌륭하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전업 작곡가들이 아닌 현직 음악 교사들이 직접 만들고 가르친 곡이라는 점에서 노래가 더욱 순수해보였다.


앞서 소개한 대표곡 외에도 너무나 많은 명곡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몇 가지 노래가 있어, 틈날 때마다 딸아이에게 불러주고는 했다. 돌도 안 된 어린 아기였을 때부터 다섯 살이 된 지금까지 기분을 달래주거나 주위를 환기시킬 때, 잠을 재울 때 등 음악의 도움을 받아야 할 때 가장 많이 골랐던 노래가 MBC 창작동요 입상작들이었다.


그런 노력이 효과가 있었는지, 최근 딸아이가 그 노래들을 갑자기 따라불러서 나를 놀라게 했다. 그냥 마음이 안정되라고 불러준 것이었지 제대로 가르친 것도 아닌데 어느새 가사와 선율을 꽤 많이 외우고 있었다. 여기에 그 노래들을 간단히 소개해보고자 한다. (네잎클로버에서 괄호 안은 딸아이가 부른 대로 적은 것이다. 내 발음이 들리는 대로 따라하다보니 저렇게 부르고는 한다.)


<네잎클로버> (96년 제14회 대상)


깊고 작은 산골짜기 사이로(산 위로)

맑은 물 흐르는 작은 샘터에

예쁜 꽃들 사이에 살짝 숨겨진

이슬 먹고 피어난 네잎클로버


랄랄라 한 잎 랄랄라 두 잎 랄랄라 세 잎 랄랄라 네 잎

행운을 가져다 준다는 수줍은 얼굴의 미소

한 줄기의 따스한 햇살 받으며

희망으로(피망으로) 가득찬 나의 친구야

빛처럼 밝은 마음으로 너를 닮고 싶어


노랫말이 정말 예쁘지 않은가?? 한 폭의 풍경화 같은 가사도 그렇지만 선율도 너무 아름답다. 나는 전주만 들어도 기분이 설렌다. 특히 저 마지막 구절, '빛처럼 밝은 마음으로, 너를 닮고 싶어' 부분의 멜로디와 화음에서는 벅차오르는 동심과 순수함이 느껴진다. 가사 그대로 화사한 빛이 가득 비추는 느낌이다. 나는 이 곡을 몹시 좋아해서 정말 자주 부르곤 했는데, 그 덕분인지 딸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도 이 곡이다. 저 '피망으로 가득찬' 이라는 자의적인 가사 해석이 귀여워서 많이 웃기도 했다.


<들판으로 달려가자> (97년 제15회 금상)


들판으로 달려가자

정답게 손을 잡고

두 팔 벌려 안아보자

쏟아지는 꽃송이들


나의 꽃은 너에게

너의 꽃은 나에게

우리가 웃으며

서로 주고 받으면


너도 꽃송이 되고

나도 꽃송이 되고

온 세상 모두 다

꽃이 되겠지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

우리는 아름다운

꽃송이 되겠지


이 곡은 네잎클로버에 비교하면 대중적으로 그다지 잘 알려져있는 노래는 아니다. 가사도 단순한 편이다. 하지만 특유의 씩씩하고 웅장한 느낌이 너무 좋다. 풍성한 화음과 신나는 리듬 역시 이 작품의 큰 매력이다. 사실 어린아이들이 부르기에는 어려운 편이라서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는 되어야겠거니 했는데, 의외로 딸아이가 쉽게 따라불러서 놀랐다. 역시 어린아이들의 습득력은 대단한 모양이다.


<바람새> (93년 제11회 장려상, 인기상)


다가올까 사라질까 보이지는 않아도

나는 바람새를 알아요

저 파란 풀밭 위에 나래깃을 부비며

다가오는 바람새를


동동동 동동동동 비누방울을

하늘에 날려보내면

어느샌가 다가와서

방울방울 쪼아먹어요


위의 두 곡이 경쾌한 느낌의 곡이었다면, 바람새는 아주 부드럽고 서정적인 노래다. 노랫말이 한 편의 잘 쓰인 동시와도 같다. 특히 '나래깃'이라는 우리말의 아름다움이 잘 드러나는 시어 선택이 돋보인다. 멜로디라인은 예쁘면서도 잔잔한 감동이 있다. 정말 사랑스러운 동요라고 생각한다.


<별과 꽃> (93년 제11회 은상)


담 밑에 앉아서 쳐다보면

별도 뵈고 꽃도 뵈고

수많은 별들은 하늘의 꽃

꽃들은 이 땅의 별


꽃들은 예뻐서 별들은 안 자요

별들도 예뻐서 꽃들도 안 자요

초승달이 넘어가네

밤새들도 잠들었네


이 곡 역시 차분하고 서정적인 느낌의 노래다. '밤새' 라는 우리말 느낌이 물씬나면서도 실제 대화에서는 잘 쓰이지 않는 합성어가 곡의 분위기에 아주 잘 어울린다. 나는 이 노래의 첫 소절, '담 밑에 앉아서 쳐다보면' 을 가장 좋아한다. 시골 토담에 기대앉아 별빛이 가득한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미소짓는 순수한 아이의 모습, 그 평화로운 정경이 머릿속에 저절로 그려지기 때문이다.


내가 아끼는 이 주옥같은 노래들을 딸아이가 즐겨 불러줌으로써 나는 <작은 아씨들>에 나오던 가족처럼 살고 싶다는 바람을 어느 정도는 이루었다. 게다가 앞으로 알려주어야 할 동요들도 아직 많이 있다. 아이가 조금 더 크면 '엄마와의 음악시간'을 마련해서 그 곡들을 들려주는 것이 나의 다음 소망이다. 그리고 조금 더 크면 그 밖에 내가 사랑하는 가요, 클래식, OST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소개해주는 것이 꿈이다. 그래서 본인이 태어나기 전부터 존재했던 그 명곡들을 촌스럽다는 이유로 멀리하는 일이 없도록, 고전과 최신 트렌드 양쪽을 모두 좋아할 수 있는 귀를 가질 수 있도록 해주고 싶다. 그럼으로써 그 아이의 삶이 음악이 주는 즐거움으로 가득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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