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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럼에도 불구하고 Oct 22. 2015

공짜 짜장면

삼성동에서 만난 노부부 


참았던 눈물이 터져나왔다. 앞자리에 앉길 잘했다 생각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9년 전, 참 쉽지 않은 아홉수를 보내고 있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모의고사 점수가 나오지 않았고, 담임선생님은 그런 나를 다독이기보단 나무라기 바빴다. 오후가 되자 머리가 아파 앉아있을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가까스로 조퇴를 한 나는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참아왔던 눈물이 쏟아져나왔다. 그러는 사이 내려야 할 정류장을 지나쳐버리고 말았다. 


버스는 어느새 삼성역에 다다랐다.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배가 고파왔다. 아, 정말 못났다 생각하면서도 밥까지 먹지 않으면 스스로가 너무 처량할 것 같아 눈에 보이는 가게로 발길을 옮겼다. 오후 3시, 노부부 한쌍 만이 늦은 식사를 하고 있었다. 햇볕이 잘 드는 창가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펼쳤다. 다시 서러움이 밀려왔다. 가장 위에 있는 짜장면조차 주문할 수 없을 정도로 고급스러운 중식당이었던 것이다. 안 좋은 일은 몰려온다더니, 한숨을 푹 내쉬곤 서둘러 가게를 빠져나왔다.


터벅터벅 5분쯤 걸었을까. 누군가가 '학생~ 학생~' 큰 소리로 나를 불렀다. 아까 그 고급 중식당의 종업원이었다. 갑자기 다른 음식이 먹고 싶어 나온 거라 설명했지만, 그는 무작정 가게로 같이 가줘야겠단 말만 반복했다. 막무가내로 끌려간 그곳엔 아까 눈이 마주쳤던 노부부가 있었다. 미소를 지으며 옆자리에 앉으라 손짓했다.


할아버지는 조근조근 이야기를 시작했다.

"학생, 내가 딱 학생 나이 때 배가 고파 식당에 들어간 적이 있었어. 메뉴판을 쓱 살펴봤는데, 글쎄 딱 2천 원이 모자라는 거야. 어쩌겠어. 그냥 나와야지. 그렇게 터덜터덜 가게를 나서려는데 옆에 앉아있던 아저씨가 나를 부르더라고. 그리곤 먹고 싶은 거 다 먹으라면서 메뉴판을 건네주는 게야. 아저씨도 어렸을 때 이런 경험이 있었다면서, 아까 먹으려던 거 다 주문하라면서. 학생, 학생이 아까 그냥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아, 드디어 내게 갚을 기회를 주시는구나 생각했어. 자, 어서 주문해. 불편하지 않다면 같이 맛있게 먹어줬으면 좋겠네."


간신히 멈췄던 눈물이 다시 쏟아지려 했다. 그런 내 어깨를 가만히 토닥여주었다. 낯선 이에게 이토록 뜨거운 위로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날 먹은 짜장면 맛은 아직까지도 잊을 수가 없다. 지금은 그 자리에 다른 가게가 생겨버렸지만, 삼성동을 지나칠 때마다 그때 생각이 나 가슴이 뭉클해진다. 그날 내가 그대로 무너져버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세상은 아직 살만하다, 다시 기운내보자 생각지 못했다면 어땠을까.


이후, 나는 가게에 들어설 때마다 주변을 둘러보는 버릇이 생겼다. 힘겨운 하루를 보낸 당신을 꼭 어디선가 마주치길 바란다. 그날 그 누구에게도 받을 수 없었던 뜨거운 위로를 생면부지의 두 사람에게 받았듯, 나도 당신에게 '괜찮다 괜찮다' 이야기해주며 세상 가장 맛있는 짜장면을 대접하고 싶다. 언젠가 꼭 그럴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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