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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럼에도 불구하고 Nov 04. 2015

엄마가 되어 돌아왔다

오랜 친구가 받은 두 가지 과제


볼 꼴 못 볼 꼴 다 본 친구가 엄마가 되어 돌아왔다. 우리 중 가장 늦게 결혼할 거라 단언했던 그녀인데 작년, 결혼식을 올리더니 얼마 전 그녀를 쏙 빼닮은 딸까지 낳았다. 동창들 모두 '세상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입 맞춰 얘기했다.


신혼집을 용인에 차린 터라 아무리 많이 봐야 한 달에 한 번 겨우 얼굴을 보는 정도였는데, 임신을 하고 나니 더욱더 보기가 힘들어졌다. 용인으로 가겠다 마음 먹어도 평일엔 도저히 시간이 나질 않았고, 주말엔 왠지 민폐인 것 같아 그저 문자로만 안부를 주고받았다. 그리하여 자그마치 6개월 만에 보게 된 얼굴. '딩동'소리와 함께 나타난 그녀는 예전과는 사뭇 달라보였다. 만삭이었던 배는 언제 그랬냐는 듯 홀쭉해져 있었고, 아이를 안은 폼도 제법 능숙해 보였다. 그 모습이 왠지 감격스러워 하마터면 문고리를 잡고 왈칵- 눈물을 쏟을  뻔했다. 


저녁 8시. 아이가 잠든 후에야 여유롭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인생의 두 가지 과제를 한꺼번에 해결한(?) 소감이 어떠냐 물었더니, 그저 시험지만 받아놓은 상태 같다고 했다. 결혼과 육아에 대한 확신은 있었지만, 그 순간순간의 과정은 아직까지도 실감이 나질 않는다고 했다. 정신 차려보니 결혼식장이었고, 또 정신 차려보니 자신과 똑 닮은 아이가 품에 안겨있었다고. 유부녀들이 그런 말을 할 때마다 그냥 하는 소린가보다 했는데, 막상 내 일로 닥치고 보니 정말 그랬다고. 그녀는 여전히 얼떨떨해 보였다.


"아이 낳아보면 엄마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게 된다고 하잖아. 엄마가 2주일 정도 집안일을 도와줬는데 서울로 돌아가는 날, 나 정말 펑펑 울었잖아. 엄마도 깜짝 놀란 거 있지. 엄마 나 어떻게 키웠어, 언니랑 나 어떻게 키웠어, 하면서 막 울었어. 상상이 가니."


우리 중 가장 눈물이 없기로 소문난 그녀가 펑펑 울었다니 도저히 그림이 그려지질 않았지만, 그 마음이 어떤 것인지는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그녀와 어머님은 둘 다 불 같은 성격이라 부딪히는 일이 유독 잦았는데, 잠 자리에 누울 때면 그때 생각이 나 또 눈물이 쏟아질 것 같다고 했다.  첫아이를 가진 나이, 어머님은 고작 스물셋이었다. 서른을 바라보고 있는 지금도 이렇게 막막한데 그때의 엄마는 어땠을지, 요즘은 그 생각으로 하루가 꽉 차 있다고 했다.


만약 '이 정도 철이 들었으니 아이를 키워도 괜찮겠지'란 생각이 들 때, 아이를 가져야만 잘 키워나갈 수 있다면 나는 평생 딩크족으로 살아갈지도 모른다. 지금보다 내년, 더 많은 걸 느끼고 더 많은 걸 얻는다 해도 그게 단연코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는 요소로 작용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인지 결혼에 대한 생각도 조금씩 바뀌어 가고 있다. '조금 더 안정적인 상태가 된 후에 결혼해야지' 고집스러운 생각을 늘 갖고 있었는데- 결혼하기에 가장 좋은 나이, 아이를 낳기에 가장 좋은 나이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지나치게 빠르다면 조금 더 힘든 부분들은 분명 있겠지만.) 아이가 조금만 움직여도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다는 그녀도 어느새 아이의 눈물을 뚝 그치게 만드는 능숙한 엄마가 되어 있었다.


인생에 있어 큰 의미가 있는 두 가지 일을 '과제'라고 표현하는 게 조심스럽긴 하지만, 그만큼 내겐 막막한 일이었다. 그 전에 만반의 준비가 되어있어야만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젠 이게 어렵게 느껴지든 아니든 시험 공부를 완전히 다 끝마치지 못했다는 이유로 미루지는 말아야겠다. 그것보다 덮어져 있는 시험지를 펼쳐 문제를 하나하나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이 있는지를 스스로에게 확인해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다행히 이 과제는 객관식이 아닌 주관식이라서 그 누구와도 같을 수 없는 나만의 답을 내게 될 테니 조금 더 용기를 내봐도 괜찮을 것 같다. 그 안에서 새로운 답, 재미 난 답을 찾아나갈 수 있으리란 생각도 든다.


용인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 안, 오랜만에 엄마와 긴 통화를 했다. 나와 동갑이었던 시절의 엄마를 전화기 너머로 만날 수 있었다. 나이가 한 살 한 살 먹어갈수록 한 남자의 아내이자 세 아이의 엄마인, 우리 엄마의 이야기를 더 세세하게 듣고 싶어 진다. 엄마는 이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엄마는 이때 어떤 길을 택했을까. 한 가지 확실한 건 나는 아마 엄마만큼 좋은 엄마는 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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