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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럼에도 불구하고 Nov 06. 2015

당신이 진짜 듣고 싶은 말은

가장 가까이에 있다   


친구가 2년 만에 사직서를 냈다. 이유는 하나, 오랜 꿈인 다큐멘터리 PD 준비를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였다. 결정을 내리기까지 3달의 시간이 걸렸다. 그녀의 얼굴엔 생기가 돌았다.


"있잖아, 나 다시 해보려고 해."


무더웠던 여름, 그녀가 처음 내게 이 말을 했을 때 잠깐의 망설임 없이 '나도 그랬으면 좋겠어. 잘  생각했어!'라고 대답했다. 길게 생각할 게 없었다. 매번 아쉽게 기회를 놓쳤던 것도 이유라면 이유지만, 그 일만큼 그녀에게 잘 어울리고, 잘할 수 있는 일은 없을 거란 확신이 있었다. 13년 간 그녀를 쭉 지켜봐 온 나는 늘 입버릇처럼 이야기했다. 네게 꼭 맞는 옷이야. 될 거야. 되고 말고.


힘겨운 나날이었을 것이다.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은데 그 누구도 앞날을 확신할 수 없고, 한 번 더 도전하고 싶은데 시간은 자꾸 흘러갔으니. 최종 면접에서 떨어진 날, 그녀는 한참 생각에 잠겨 있다 어렵게 입을 열었다. 그만 하고 싶다고. 이 조마조마한 상황이 이제 지긋지긋하다고. 안타깝고 아쉬웠지만, 입을 다물었다. 그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나여서 그냥 아무  말없이 그녀를 다독였다.


한 달 후, 그녀는 바리스타가 되었다. PD가 아니라면 뭘 하는 게 좋을까, 그 해답을 평소 즐겨 마시던 커피에서 찾았다. 종종 작업할 게 있으면 카페에 들러 반나절을 보냈다. 작업하는 중간중간 그녀의 평온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잘 지내고 있구나' 안도했다. 하지만 2년이 흐른 지금, 그녀는 다시 꿈을 꾸기로 했다. 과거를 돌아보느라 시간을 낭비하고 있단 생각이 어느 순간부터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서였다.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잘했다 잘했다, 어깨를 토닥이는 내게 그녀는 넌지시 물었다.


"너는 어떻게 하기로 했어?"


하루에도 수십 번 고민하고 있는 터라 질문을 듣자마자 어떤 걸 묻는지 단번에 알아차렸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만족스럽진 않지만, 그리 나쁘지도 않았다. 안정적이고 평온했다. 한땐 가까운 지인을 붙잡고 묻기도 했다. 어떻게 행동해야 옳을지, 어떻게 해야 후회가 적을지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지금 누리고 있는 것들이 새로운 일에 뛰어들었을 때도 과연 유지가 될까, 만약  돌아온 결과에 만족하지 못할 경우 그 후회의 시간들을 과연 견뎌낼 수 있을까- 아마 친구도 이 고민의 시간을 똑같이 보냈을 것이다. 내가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친구는 다시 말을 이었다.


"생각 중일 것 같았어. 내가 해줄 수 있는 얘긴 이거 같아. 이게 나한테 필요한 일이라는 걸 조금 더 일찍 깨달았다면 조금 덜 괴로워하고 조금 덜 망설였을 거야. 여기저기 조언도 많이 들어봤는데, 결국 선택은 내가 하는 거잖아. 그 선택에 후회가 없으려면 다른 사람들의 응원만큼 나 자신이 주는 응원도 필요하더라고. 너, 내 선택에 있어선 매번 응원해주면서! 어떤 선택을 내리든 잘할 거야. 내가 알아. 그럴 거라는 거."


내 선택에 확신을 갖는 덴 제법 오랜 시간이 걸리면서 상대방 선택에 대한 확신은 금세 내릴 수 있는 건 그들의 고민이 내 고민보다 결코 가볍거나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내가 바라 본 그들은 그 선택을 '최고의 선택'으로 만들어갈 사람들이었다. 비록 후회가 있더라도 잘 견뎌낼, 더 나은 방향으로 끌고 갈 사람들이었다. 그녀의 말이 옳았다. 친구의 결정에 망설임 없이 '잘했어' 대답한 것처럼 내게도 '괜찮아. 그 길이 맞아.' 확신의 대답을 들려 줄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친구에게 건넨 그 말이 필요했을 사람은 나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때 내가 가장 듣고 싶은 말이었으니까. (사실 지금도 그럴지 몰라.) 소중한 누군가를 다독여주는 그 모습 그대로, 나 자신도 잘 다독일 줄 안다면 좋겠다. 넌 생각보다 강하니까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자고, 그래도 괜찮다고. 누군가에게 주었던 응원의 말을 내 속에도 깊이 새겨둘 수 있다면 좋겠다. 


그날, 나를 조금 더 믿어보기로 했다. 그래, 우리는 우리 자신을 조금 더 믿어봐도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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