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의 영원함
인생에서 우리는 순간이라는 수없이 많은 찰나의 점을 찍으며 살아간다.
그러한 점들이 모여 하나의 인생이라는 선이 된다.
그 선은 태어남으로부터 시작해 이쪽저쪽 헤매기도 하고 때론 갔던 곳을 또 가고 되돌아오고 또 때론 누구보다 월등한 속도로 특정 방향을 향해 나아간다.
그러나 그 선은 시간을 기준으로 정렬을 했을 땐 속도와 방향의 차이만 있을 뿐 앞으로만 나아간다 절대 뒤로 돌아갈 순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과거의 찰나의 점들을 다시 찍을 수 없기에 그 순간에서 행복을 찾고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하고 그 순간을 온전히 누리고 그 순간을 즐기려고 해야만 한다.
나의 삶에서 매 순간이 순간의 찰나이듯
우주에서 나라는 사람의 인생은 그저 순간의 찰나에 불과하다.
나는 이 광활한 우주에서 한낯 먼지 같은 어쩌면 먼지보다 더 작은 세포나 원소 같은 별거 아닌 존재일 것이다.
심지어 지구에서 조차 자연에 도움을 주는 유익충에 비해 지구에 도움을 주지 못하며, 우리라는 집단으로서의 힘이 강할 뿐 그저 한 사람으로서는 다른 동물에게 이기지도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네 삶에 자기만의 의미를 부여하고 그 누구보다 스스로를 사랑하며 살아가야 한다.
한낯 먼지일지라도 그 자체로서 '나'이기에
1억 개의 먼지가 있다면, 다 같은 먼지가 아닐 것이기에
그 자체로서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는 존재이기에
되려 한낯 먼지에 불과한 존재이기에 무엇이든 자유로이 시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찍힌 수많은 한 사람의 인생에서의 찰나는 대게는 휘발되어 버리곤 하지만, 영원히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경우가 있다.
아주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순간들.
대표적으로,
무엇인가를 깨닫게 되는 순간이나 기쁨이든 슬픔이든 성취감이든 감정적인 격동이 일어나는 순간 등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렸을 때에는
그런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순간들이 되려 사소했다.
떨어지는 꽃잎 하나에도 꺄르르거리던 시절에는
매번 학교에 나와서 친구들과 만나 웃고 떠들고 놀러 다니는 순간순간이 인상적이었다.
늘 항상 그렇지는 않았지만 나이가 상대적으로 어렸을 때에는 상대적으로 많은 순간의 깨달음과 순간의 감정적인 격동이 있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나이가 먹어감에 따라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라고 하는 말의 이유를 잊혀져 가는 찰나에서 찾았다.
내가 기억해 낼 수 있는 순간의 찰나가 많으면 많을수록 찍혀있는 수많은 점들 중에 기억해 낼 수 있는 점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필름이 길고 선명할수록 시간이 길었구나라고 기억하고 느낄 것이다.
그렇다고 현재 여기서 매 순간 머리에 돌이 깨지는 깨달음을 얻으려 매번 여행을 다니거나 멘토를 찾아다니거나 혹은 감정적인 격동을 위해 일부러 굳이 사건을 일으킬 순 없으니
매 순간 삶에서 온전히 느끼고 깨달을 수 있는 능력과 힘이 필요한 것이다.
똑같은 꽃 한 송이를 보고도 남들과는 다른 시선으로 보고 감탄할 줄 아는 그런 힘.
그리고 그저 물질적인 풍요로운 삶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 있는 것들을 보며 감탄하고 깨달을 줄 아는 힘을 가진 그런 풍족한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