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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ortbus Aug 17. 2022

"허들을 넘는 여자들"

: 성폭력을 딛고 일어선 생존자들의 위대한 노하우:)

올해 초에 '책 발간'에 참여해 볼 생각이 없냐는 제안을 받았다.

반가웠고 신기했고 고마웠다. 그렇지만 솔직히 결과물에 대해서 아주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나도 이곳 브런치에서 10살 때의 성폭력부터 최근의 성폭력과 2차 피해까지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는 피해 생존자이고, 여태껏 많은 피해 생존자들의 이야기들을 접해 왔기에, 그렇게까지 신선한 내용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에 실린 작가들의 생생하고, 독특하고, 진중하고, 우렁차고, 따뜻한 이야기들을 하나씩 하나씩 접하게 되었을 때, 나의 오만함에 고개가 절로 숙여졌고 그들의 아름다운 강인함에 감동받았다.


나는 요즘도 o교수님의 2차 가해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여전히 가해자와 o교수님, 그 외의 다수가 함께 꾸려나가는 연구회에서 배제되어 있다. 며칠 전에도 무엇이 2차 가해이며, 그것이 나를 어떻게 고통스럽게 하는지 잔뜩 쏟아부은 이메일을 보냈다. 쏟아부었다고 해서 결코 속이 시원해진 것이 아니라, '이제 나와 이분 사이의 관계의 다리는 완전히 불살라졌구나...' 하며 비통해졌다. 그리고 나는 '마치 당연한 듯이' 며칠 째 답장을 못 받고 있다.


이렇게 성폭력을 경험했고, 또 경험했으며, 현재도 경험하고 있고 나에게도, 이 책 '허들을 넘는 여자들'은 밑줄 그어가며 읽어나갈 내용으로 가득 차 있는 책이다.


1부에서는 나를 포함한 성폭력 피해 생존자들의 실제 경험을 나누고 있다. 성폭력의 피해가 발생했을 때 아주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딛고 일어나서 끝내 생존할 수 있는지 등이 겁 없이, 자유분방하게, 그리고 마치 바로 옆에서 조곤조곤 이야기해 주듯이 공유되고 있다.


2부는 성범죄 대응 매뉴얼인데, 매우 섬세하고 현실적이어서 독특하다.

    -가해자 매뉴얼: 제가 가해자일 때/제 가족, 친구가 가해자일 때 등

    -신고하고 싶은 당신에게

    -신고를 머뭇거리는 당신에게: 신고를 하고 싶은지 안 하고 싶은지 모르겠어요/ 신고를 못해요/신고를 안 하고 싶어요

    -별첨: 가해자를 위한 프로그램, 가해자 사과문 작성법 등


3부는 추천사 등 함께 해 주신 분들의 단단한 말씀들이 있다.

 

오늘은 이 책의 내용을 추려서 적어보고자 한다. 이렇게 옮겨 적는 것만으로도 요 며칠 내 심장에 새로 생긴 상처에 꾸덕꾸덕한 연고를 펴 바르는 것 같고 뽀얀 새 살이 돋아나는 기분이다. 내 상처에 딱지가 앉아 힘 없이 저절로 떨어져 나갈 때까지 이 연고 골고루 발라야지. 좀 더 많은 사람들과 이 연고를 나누면 좋겠다. 자기 자신에게 직접 발라도 좋고 사랑하는 사람의 상처에 발라주는 것도 좋고:)


성폭력 피해자에게 지독하게 비정한 현실을 담아내면서도,

이를 당당히 직시하고 허리를 꼿꼿이 세우며 승리자의 찬란한 미소를 날리고 있는 생존자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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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당신을 국민 청원 페이지에서 만나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을 불행한 뉴스에서도, 시사 프로그램에서도 보고 싶지 않습니다. 싸우거나 도망쳐 주세요. 펑펑 울거나 벽을 부숴주세요. 끼니를 잘 챙겨 먹고, 가끔 미친 사람처럼 굴어주세요. 오래오래 곁에 남아주세요."

from 여는 말


"너는 겨우 용기를 내어 학교에 신고했지만, 사건을 무마하려는 담당 직원과 교수의 온갖 방해 공작과 맞서 싸워야 할 거야....(중략)... 전문적인 도움을 받는 과정에서는 조금은 이기적으로 굴 필요도 있어. 선생님과의 합이 잘 맞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어....(중략)... 제일 중요한 것 중 하나는 '기록의 중요성'이야."

from 카티


"내가 원망하는 대상은 디지털 성폭력에 대처하는 방법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은 교육기관과 X를 비롯한 가해자를 키워낸 사회야....(중략)... 퀴어 성폭력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경찰에 신고하지 못했잖아? 그런데 경찰관 직무 규칙을 찾아보니 피해자가 자기 성적 지향/성별 정체성을 공개하길 원하지 않는다면 그 의사를 최대한 존중해야 한다고 나와 있더라고."

from 키위


"특히 가해자가 신뢰하고 사랑했던 사람이었다는 배신감이 컸던 것 같아....(중략)... 무지한 사람들의 2차 가해 때문에 함부로 피해 사실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도 없었어....(중략)... 한 비영리 단체를 위해 어플을 만드는 일을 하게 되었거든. 그 단체는 어린 성매매 피해자들에게 교육과 심리상담 등을 제공해 주었어."

from 아리


"X에게 딱 두 가지만 요구했어. 첫째, 심리상담 및 한국성폭력 상담소에서 실시하는 가해자 교육받기. 둘째, 성폭력 피해자들을 보호하는 시설에 매달 소액의 기부금 내기....(중략)... 내가 미소를 띤 이유는, 내가 승리자임을, 내가 강자임을 보여주고 싶었어."

from 해라 ☞ 나:)


"내가 친족 성폭력 피해자라는 것을 깨달은 것은 그 일이 있고 몇십 년이 지나 내가 딸을 낳고 나서였어....(중략)... 내가 아이를 처음으로 때린 것도 이 성수치심의 상처가 건드려진 날이었어....(중략)... 빛이 되기를 포기하지 마. 지금 너의 고통이 너를 무너뜨릴 것만 같겠지만 너는 그 고통을 넘어 반드시 더 큰 사람으로 성장하게 될 거야."

from 지은


"도립공원 한복판에서 벌어진 불법 촬영, 나와 나의 딸에게 벌어진 일....(중략)... 철수세미로 박박 지워내고 싶은 불쾌감, 찝찝함 그리고 불안에 밤잠 설치고 있을 너에게, 얘기해 주고 싶어. 확신을 주고 싶어. 지금 바로 전화하라고....(중략)... 지금 너의 피해와 고통을 더 예민하게 여겨. 너에겐 그럴 권리와 의무가 있어."

from 인성


"사장에게 말했다. 당신 아들이 여성들 몸을 쳐다보고 다니고 있다고....(중략)... 해고 몇 달 이후에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를 신청했다....(중략)... 그 시간을 어떻게 버텼는지 물어 준다면 망설임 없이 얘기할 수 있다. 단연코 사람이라고."

from 보라


""개개인을 탓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우리 조직 문화가 바뀌지 않는다면 절대로 해결되지 않는다. 기관장님 주최로 간담회를 열어 주겠다고 약속할 수 있느냐." 몇백 명의 동료가 지켜보는 자리에서 기관장은 약속을 했고, 곧 성평등 문화를 위한 간담회가 열렸지....(중략)... 나는 내가 문제아로 생각되는 줄 알고 있었어."

from ____


"내가 선택한 연애 상대인데 그 관계를 끊어내지 못하는 스스로 너무 어리석어 보여서 반짝반짝 빛이 나도 모자랄 그 젊은 시간이 어둡고 우울했어....(중략)... 감히 비유하건대 성폭력은 교통사고와 비슷한 거라고 생각해....(중략)... 나만 겪는 일이 아니란 걸 알고 나니까 벗어날 용기가 생기더라."

from 태정


"'근데 제 X는... 죽었어요.'라고 하면 다들 기겁하지. 그때 '물론 제가 죽인 건 아닙니다'라고 말하는 건 나의 레퍼토리 중 하나야....(중략)... 2학년 2학기가 되자 이유도 없이 공황장애가 심해졌어....(중략)... 그러니까 네가 지금 먹으려고 하는 그 약, 내려놔. 지금 죽기에는 아직 재미있는 일이 많이 남아 있어."

from 유진



마지막으로, 어떻게 알려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배상훈 프로파일러님이 이 책을 '자발적'으로 소개하셨다. 이 글의 저자들도 함께 깜짝 놀랐다는... ;; 어떻게 아셨지? (11:35부터 책 소개 시작)

https://www.youtube.com/watch?v=a216HiBidDk&t=719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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