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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ortbus May 24. 2023

일상이 성폭력의 기억보다 빨라지기 시작했다

: 성폭력과 2차 가해 이후, 다시 일상을 향한 시작점

브런치에 글을 써야지... 하면서 미루고 미룬 것이 한 달 반이 다 되어 간다. 미룬 이유는... 두둥!!


"절실하지 않았다."


이곳에 풀어낼 이야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전에는 이곳에 털어내지 않으면 가슴이 모래바람이 부는 사막처럼 황폐해질 것만 같았었는데, 이젠 그렇지 않게 되었다.

일부러 뒤돌아 보고 저~~ 리로 마구 달려가는 기억의 끄트머리를 나 스스로 붙잡지 않는 이상,

저절로 앞으로 돌아가는 고개를 뒤로 돌려 억지로 뒤돌아 보지 않는 이상,

현재 나의 일상의 속도가 과거의 기억보다 빠르게 앞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나 보다.

마치 ktx를 탄 채 바깥 풍경을 바라보면 산도들도 강도 내 시선의 뒤편으로 마구마구 지나쳐가는 것처럼 말이다. 아픔의 기억과 그 기억에 덕지덕지 붙은 생각들이 나의 일상의 뒤편으로 지나쳐간다.


이렇게 나는 일상을 '거의' 회복해 가고 있다.


이러한 나의 '오늘'은 작년 12월에 수백 번의 망설임 끝에 내린 결단(학회 운영위원회에 성추행 2차 가해에 대한 문제제기)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망설이고 망설이고 또 망설인 끝에, 내게 돌아올 모든 손해를 감수하고 문제를 제기한 것이, 아마도 지금 내가 나의 일상을 '거의' 회복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문제 제기를 하는 당시에 나는 사실 알고 있었다. 나의 문제제기는 곧, 다시, 해가 바뀌어 새로운 학회장이 새로운 운영위원회를 구성하면, 흐지부지될 것이라고.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사람들이고, 반드시 그럴 것이라고. 그리고 그 일이 곧 일어났다.


올해 새로운 학회장과 운영진이 구성되었고, 올봄에 춘계학술대회가 열리고 그 학술대회에서 임시총회가 열린다는 이메일 공지를 받았다. 그리고 그 임시총회의 첫 번째 안건은 '연구회 승인건'이었다.


'아... 임시총회. 임시총회에서 OOOO특별위원회를 정식 연구회로 승인하려고 하는구나..."

'그렇지. 그럴 거라 예상했잖아. 나의 최선의 주먹질은 사실 그 사람들을 간지럽히는 정도밖에 되지 않겠지..."


그랬다. 그 뒤로 확인해 보지 않았지만 아무런 문제 없이 OOOO특별위원회는 정식 연구회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인상적인 것은 위의 사실이 내게 큰 타격을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뭐 기분이 나쁘고, 화가 나고, 억울하고, 속상하고, '또 다른 무언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을까...'라는 생각에 한동안 사로잡히고... 그랬던 것은 사실이다.

동시에, '춘계학술대회에서 임시총회를 열어 '연구회 승인'건을 다루는 걸 보니... 작년에 내가 문제제기 한 것이 조금은 아팠다는 거네?' 하는 생각도 들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에 대해, OOOO특별위원회가 정식 연구회가 되는 사실에 대해 내가 크게 신경쓰지 않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알아챌 수 있었다.


'잠깐, 나 뭐 하는 거야? 정식 연구회가 된다잖아! 화나는 일이잖아!'라고 생각을 붙잡았지만, 금방 나는 유튜브의 내가 좋아하는 채널에 집중하있었고, '잠깐잠깐! 나 뭐라도 다시 해야 하는 거 아냐? 나 뭐 하는 거야?'라고 또 나의 생각을 뒤로 끌어당겨 놓고서는, 또다시 나는 노트북으로 뭔가 다른 일에 집중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 이렇게 나의 일상이 그들로 인해 너덜너덜해진 과거의 기억보다 빠르게 앞으로 달려 나가고 있었다. 성폭력과 2차 가해로 뒤엉킨 시간들이 나의 '오늘'이 아니라 나의 '역사'의 한 부분이 되어 가는 임계점에 거의 다다른 것 같다.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앞서 말했지만, 지렁이도 밟히면 꿈틀 하는 것처럼, 내가 무엇이라도 action을 취했기 때문이다. 비록 그들에게는 파리 한 마리가 앵~하는 정도였을지라도, 내가 모두의 반대와 우려를 무릅쓰고 최선을 다해 뭐라도 행동에 옮겼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성추행과 2차 가해를 '당한' 기억이 아니라, 성추행과 2차 가해에 맞서 '싸운' 기억이 될 수 있었다.

박사로서, 비정규직 연구자로서 막대한 피해를 본 기억이 아니라, 여성으로서, 피해생존자로서 나의 목소리를 낸 기억이 될 수 있었다.



그렇지만, 한번 팔목이나 발목을 삐끗하게 되면, 비가 올 때마다 쑤시고, 또 우연히 그 부위에 충격을 받게 되면 더 큰 고통을 느끼게 되듯이, 나는 앞으로도 학계라는 이 손바닥만한 곳 근처를 누비면서 이런저런 일들을 겪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며칠 전에도 나는 전혀 모르는 분이었는데, 나도 잊고 사는 나의 신상정보에 대해 들은바 있는 분을 만나기도 했다;;;;


타임머신을 타지 않는 이상 "완전"한 회복은 없기 때문에 항상 "거의" 회복한 수준에서 만족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어려움이 닥치면 그때는 또... 그때의 최선을 다하 살 것이다. 나의 동사는 수동태가 아니라 항상 능동태여야 하며, 그것이 나 스스로를 살리는 길임을 배웠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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