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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짧지식 Nov 08. 2020

동남아시아의 맹주 태국

자유를 잃어버린 적이 없는 나라

1. 동남아시아의 맹주 태국

대략 300년 전만 해도 인도차이나 반도 대부분이 태국 땅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태국이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였다면 믿을 수 있을까? 태국은 역사상 한 번도 식민지배를 당해본 역사가 없다는 게 진짜일까? 알고 보면 배울 점도 많고 흥미로운 태국 역사를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자 한다.


- 한 줄 요약 : 태국 역사에 대해 아주 쉽고 재미있게 알아보자.



2. 태국의 역사

우선 태국이라는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태국의 공식적인 국호는 타이 왕국이고, 이는 자유의 나라라는 뜻이다. 태국의 영토는 남한의 약 5배 정도 되며 그 크기가 프랑스와 비슷하다. 인구는 약 6,980만명인데, 이는 대한민국의 인구에 비해 조금 더 많은 수준이다. 종교는 불교 95%, 이슬람 4%, 기독교 1%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태국 왕조가 시작된지는 사실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태국인들이 정확히 언제 어디서 왔는지는 아직 자세히 알려진 바가 없지만, 아마 중국 운남성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 내려와 국가를 만든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13세기 무렵 금나라가 송나라를 침략하면서, 원래 그곳에 살고 있던 타이족들이 밑으로 내려왔다는 게 현재의 추측이다. 이전 태국 영토는 미얀마의 몬족과 캄보디아의 크메르족, 그리고 말레이의 말레이족이 각각 나눠 지배하고 있었다.


현재 태국인들은 중국 운남성에서 내려온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지금의 태국 왕조는 1782년부터 시작되었다. 태국의 탄생에 기여한 일등공신은 딱신 대왕이라는 사람인데, 그는 태국의 광개토대왕이라고도 불린다. 딱신 대왕 시절 인도차이나 반도의 영토 대부분을 태국이 차지했기 때문이다. 베트남과 미얀마 영토 조금을 제외하고는 그 당시 태국이 인도차이나 반도를 거의 다 점령했다. 이게 불과 300년 전 일이다.


불과 300년 전만 해도 인도차이나 반도의 대부분이 태국 영토였다.


이후 딱신 대왕의 오른팔이었단 짜끄리 장군이 반란을 일으키고 국가를 세우는데, 그렇게 시작된 태국의 짜끄리 왕조가 1782년부터 지금까지 쭉 이어오고 있다. 이 짜끄리 장군을 라마 1세라고 불렀고 이게 현재 라마 10세까지 계속되어 왔다.


- 한 줄 요약 : 인도차이나의 맹주였던 태국은 1782년부터 시작되었다.



3. 자유의 나라 태국

태국은 다른 나라에게 점령당해 식민지가 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태국 국민들은 이 사실을 굉장히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국가의 이름도 '자유의 나라'라는 뜻인 '타이'다. 나라가 세워지고 시간이 조금 흘러 영국과 프랑스가 인도차이나 반도에 오게 된다. 이때 태국의 왕은 라마 5세인 쭐랄롱꼰 대왕이었다. 이 당시 태국이 외교를 정말 잘했다고 한다.


이때 태국은 국가의 문을 엄청 빨리 열었다. 1855년에 영국과 빠른 통상 우호조약을 체결했는데, 조선이 1879년에 강화도 조약을 맺었고, 일본이 1868년에 메이지유신을 했던 것과 비교한다면 매우 빨리 국가의 문을 연 것이다. 이후 태국이 끝까지 중립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프랑스와 영국의 요구를 순순히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프랑스가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 땅을 요구했을 때 줬고, 마찬가지로 영국이 미얀마와 말레이시아 땅을 요구했을 때도 바로 줬다.


태국은 영국과 프랑스의 요구를 순순히 들어줬기에 중립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렇게 줄 거 다 주면서 말도 잘 듣고 하니 결국 중립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태국을 쳐들어가자니 딱히 명분도 없고, 만약 영국이나 프랑스 중 한쪽이 쳐들어가면 반대쪽에서 반발할 수도 있으니, 결국 태국은 완충지대가 되어 식민지화를 피할 수 있던 것이다. 이후 1932년 6월 24일, 태국에서 시암혁명이 일어났고 태국은 절대왕정에서 입헌군주제로 바뀌게 된다. 즉 이때부터 왕이 아닌 총리가 나라를 다스리게 된 것이다.


- 한 줄 요약 : 태국은 영국과 프랑스 중간에서 외교를 잘해 식민지화를 피할 수 있었다.



4. 2차 세계대전 당시 태국

1939년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게 된다. 이때 태국은 영미와 일본 사이에서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그 당시 일본은 대동아공영권을 외치며 한국과 중국, 그리고 동남아를 중심으로 식민지를 늘려가고 있었다.


이때 태국이 중립을 외치자 일본이 태국에 쳐들어오게 된다. 일본은 미얀마나 말레이시아와 같은 영국 식민지를 공격할테니 길을 열어달라는 명분으로 태국을 침략했다. 마치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를 침공할 길을 빌려달라며 조선을 공격했던 것과 같은 방식이었다. 그러자 태국은 재빨리 일본의 편을 들게 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태국은 어쩔 수 없이 일본의 편을 들게 된다.


하지만 전쟁의 승리가 연합군쪽으로 기울자 태국은 재빨리 일본과의 협정을 파기하게 된다. 1944년 1월 피리디 파노명이 정권을 무너뜨리고 일본과의 전시협정을 파기했다. 그다음 태세를 전환해 일본을 공격하며 항일 투쟁을 벌이게 된다. 따라서 태국은 2차 세계대전 패전국에서 승전국으로 그 지위가 바뀌게 되었다. 이후 영국과 프랑스가 자진해서 태국에게 손해배상을 해줬고, 1946년 12월 유엔에 가입하기도 했다. 우리나라가 1991년에 유엔에 가입했으니, 비교적 굉장히 빨리 가입했다고 볼 수 있다.


승리가 연합군쪽으로 기울자 태국은 재빨리 일본과의 관계를 파기하고 영미편을 들게 된다.


그렇게 태국은 근대로 넘어오게 되는데, 이때부터 태국의 쿠데타와 투쟁의 역사가 시작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태국은 우리나라처럼 쿠데타가 지속적으로 반복되었지만 아직도 민주정부가 수립되지 못했다. 여전히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군사독재 정부가 정권을 잡고 있다.


- 한 줄 요약 : 2차 세계대전 당시, 태국은 상황판단을 매우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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