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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짧지식 Feb 19. 2021

정의란 무엇인가

절대적인 정의는 존재할까?

동영상으로도 보러오세요 ^0^

https://youtu.be/5m6EufDP-DA


1. 정의란 무엇인가

정의란 무엇일까? 정의의 뜻을 살펴보면 바를 정에 옳을 의로써, 바르고 옳은 것을 정의라고 한다. 그렇다면 바르고 옳은 것이란 무엇일까? 절대적으로 바르고 옳은 것이 존재할까? 많은 사람들은 정의와 도덕, 그리고 윤리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그렇다면 이 정의와 도덕, 윤리는 대체 무엇일까? 내가 생각하는 옳은 일이 과연 정말로 옳은 일일까? 오늘은 이 정의에 대해 한 번 알아보고자 한다.


- 한 줄 요약 : 바르고 옳은 것이라는 뜻의 정의는 무엇일까?



2. 정의에 관한 철학적인 질문

(1) 첫 번째 이야기

당신이 기차 기관사라고 가정해보자. 당신은 시속 100킬로미터로 기차를 운전하고 있다. 그러던 와중 저 앞에 인부 다섯 명이 작업 도구를 들고 철로에 서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인부를 발견하고 황급히 기차를 멈추려고 브레이크를 밟았는데, 그제야 브레이크가 고장 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속도로 들이받는다면 다섯 명의 인부들은 모두 죽고 말 것이다.


이때 오른쪽에 있는 비상 철로가 눈에 들어왔다. 그곳에도 인부가 있지만 한 명밖에 없다. 기차를 비상 철로로 돌리면 인부 한 명이 죽는 대신 다섯 명이 살 수 있다. 이 상황에서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비상 철로로 기차를 돌려 한 명을 죽이고 다섯 명을 살릴 것인가? 혹은 그냥 직진해서 다섯 명을 죽일 것인가?


아마 대부분은 방향을 돌려 한 사람을 죽이는 선택을 할 것이다. 이 경우에는 죄 없는 사람 하나가 죽겠지만, 다섯 명이 죽는 것보다는 낫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한 사람을 희생해 다섯 명의 목숨을 구하는 행위는 정당해 보인다. 즉 해당 상황에서는 비상 철로로 기차를 돌리는 것이 정의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해당 상황에서는 비상 철로로 기차를 돌리는 것이 정의라고 볼 수 있다.


(2) 두 번째 이야기

그럼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한 번 해보자. 아까 그 상황에서 당신은 이제 기관사가 아니라, 철로를 바라보며 다리 위에 서있는 구경꾼이다. 저 아래 철로로 기차가 들어오고 있고 철로 끝에 다섯 명의 인부들이 있다. 이번에도 똑같이 기차의 브레이크는 말을 듣지 않는다. 기차가 인부 다섯 명을 들이받기 직전이다.


어떻게 하지 고민하다 문득 당신 옆에 있는 거구의 남자을 발견하게 되었다. 당신은 그 사람을 밀어서 기차가 들어오는 철로로 떨어뜨릴 수 있다. 그러면 옆에서 구경하고 있던 남자는 죽겠지만, 인부 다섯 명은 목숨을 건질 것이다. 그렇다면 이때 덩치 큰 남자를 철로로 미는 행위는 과연 옳은 일일까?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


아마 이 상황에서는 거구의 사람을 철로로 미는 행위가 옳지 않다고 대부분 말할 것이다. 누군가를 다리 아래로 밀어 죽게 하는 행위는 비록 죄 없는 다섯 명의 목숨을 구한다 해도 굉장히 끔찍해 보인다.


해당 상황에서는 거구의 사람을 미는 행위는 정의라고 보기 힘들다.



(3) 도덕적 딜레마

여기서 애매한 도덕적 문제가 생기게 된다. 한 사람을 희생해 다섯 사람을 구한다는 명제는 첫 번째 이야기나 두 번째 이야기나 결과만 놓고 보면 같다. 그런데 첫 번째 이야기에서는 옳은 것 같던 원칙이 왜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느껴졌을까? 첫 번째 이야기처럼 숫자가 중요하다면, 그러니까 한 사람을 구하는 것보다 다섯 사람을 구하는 게 낫다면, 왜 이 원칙을 두 번째 이야기에는 적용할 수 없을까? 똑같이 거구의 남자를 밀면 한 명을 죽이고 다섯 명을 살리는 게 아닌가?


이런 도덕적 딜레마는 서로 다른 도덕 원칙이 충돌하며 생기게 된다. 이전 예시에서 하나의 원칙은 가능하면 많은 생명을 구해야 한다는 원칙이고, 다른 하나의 원칙은 아무리 명분이 옳다 해도 죄 없는 사람을 죽이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원칙이다. 많은 생명을 구하자니 죄 없는 사람 한 명을 죽여야 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도덕적으로 난처한 입장에 놓이게 된다.


두 가지 다른 정의가 충돌하며 도덕적 딜레마에 놓이게 된다.


사실 이런 도덕적 딜레마는 우리 삶 속에서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낙태를 옹호하고, 반대로 어떤 사람은 낙태를 살인이라고 말한다. 어떤 사람은 부자에게 세금을 거두어 가난한 사람을 도와야 공정하다고 생각하지만, 반대로 어떤 사람은 노력으로 번 돈을 세금으로 빼앗는 행위는 공정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동성애가 옳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반대로 어떤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을 차별주의자라고 생각한다. 이런 식으로 사실 우리 삶과 밀접한 부분에서 각자가 가지고 있는 수많은 정의가 서로 충돌하고 있다.


- 한 줄 요약 : 우리 삶과 밀접한 부분에서도 도덕적 딜레마가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



3. 철학자들이 바라본 정의와 윤리

(1) 칸트의 정언명법

그렇다면 유명한 철학가들은 정의를 어떻게 생각할까? 먼저 칸트의 정언명법을 통해 정의를 알아보고자 한다. 칸트는 18세기 사람으로, 지금으로부터 대략 250년 전에 활동했던 철학가다. 칸트는 절대적인 도덕 법칙을 찾아 만드려고 노력했다. 즉 절대적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정의를 찾아내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칸트가 제시한 방법은 바로 '정언명법'이다. 정언명법은 누구나 반드시 따라야 하는 도덕 법칙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방법으로써 칸트가 제안한 법칙이다. 이 정언명법을 쉽게 설명하자면 "네가 개인적으로 하려는 일이 동시에 모든 사람이 해도 괜찮은 일인지 생각하고 행동하라" 정도로 설명할 수 있다. 즉 내가 하려는 특정 행위를 모든 사람들이 동시에 한다고 가정해보는 것이다. 만약 그래도 사회가 붕괴하지 않는다면 그 행위는 도덕적 행위가 되는 것이다.


내가 하려는 행위를 모든 사람들이 했을 때 괜찮다면 그건 정의다.


예를 들어, 모든 사람들이 거짓말을 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그 사회는 어떻게 될까? 아마 서로 간의 신뢰와 연대가 무너져 더 이상 사회가 유지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거짓말하는 행위는 정언명법에 의하면 도덕적인 행위가 아니다. 따라서 나는 그 행위를 하면 안 된다.


그럼 반대로 다른 예시를 들어보자. 예를 들어, 모두가 쓰레기를 줍는다고 해보자. 그럼 그 사회는 어떻게 될까? 특별한 문제없이 청결한 사회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쓰레기를 줍는 행위는 모두가 따라야 할 보편적인 도덕 법칙이 될 수 있다.


정언명법으로 생각해보면 절대적인 정의를 찾을 수 있다고 칸트는 생각했다.


(2) 벤담과 밀의 공리주의

다음으로 벤담과 밀이 주장했던 공리주의를 통해 정의를 알아보고자 한다. 공리주의는 19세기에 영국을 중심으로 전개된 생각이었다. 공리주의의 모토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다. 한 마디로 정의란 가장 많은 사람에게 가장 행복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벤담은 "모든 행위는 그것이 사람의 행복을 증진하는지의 여부에 의해서 평가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걸 쉽게 설명하기 위해 기차 예시를 다시 가져와보자. 예시와 같이 비상 철로로 방향을 틀어 1명을 희생시키게 되면, 5명을 살릴 수 있는 상황이다. 이때 사람이 살면 전체적인 행복지수에서 +1이 되고, 사람이 죽으면 -1이 된다고 가정한다면, 여기서의 정의는 1명을 희생시키고 5명을 살리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선택을 했을 때 최종적으로 +4라는 결과가 나오기 때문이다. 최대한 많은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으니 이게 정의가 되는 것이다.


벤담은 최대한 많은 사람이 행복할 수 있어야 그것이 정의라고 주장했다.


반면 밀 같은 경우에는 벤담과 같이 공리주의를 주장하긴 했지만 생각이 살짝 달랐다. 밀도 최대 다수의 행복이 정의라고 생각했는데, 단순히 모든 사람이 공평하게 +1과 -1로 행복도의 값이 매겨지는 게 아니라, 각각의 행복도와 불행도가 다르다고 생각했다. 즉 벤담은 행복을 양적으로 측정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밀은 행복의 질적인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기차 예시를 다시 한번 가져와보자. 이 상황에서 밀의 주장을 대입하자면, 4명을 살리고 1명을 희생시키는 행위는 정의가 아닐 수도 있다. 4명이 생존하게 되면 각각의 행복도가 +8과 +9만큼 올라갈지는 몰라도, 희생된 한 명의 행복도가 -2,000이라면 결국 전체적인 행복도를 따졌을 때 희생된 사람의 불행도가 독보적으로 크기 때문이다.


밀은 벤담과는 다르게 행복의 질적인 측면도 따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3) 하이에크와 롤즈

그럼 이제 조금 더 사회적인 관점에서의 정의를 한 번 알아보자. 하이에크와 롤즈의 주장을 토대로 어떤 사회가 윤리적인 사회인지 알아보자. 여러분은 우리 사회의 빈부격차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걸 꼭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혹은 국가가 나서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가?


어떤 사람은 지금과 같은 빈부격차는 부당하기 때문에 세금을 적극적으로 걷어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이 윤리적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이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반대하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자유 시장에서 자신의 노력과 능력 그리고 자유로운 선택으로 인해 부를 얻었다면, 이런 부의 축적은 부당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반대로 정부가 세금을 더 걷는 것이 부당하다고 말한다. 이런 상반되는 주장을 했던 하이에크와 롤즈의 주장에 대해 알아보자.


하이에크와 롤즈의 주장을 통해 빈부격차에 대한 정의를 알아보자.


(3-1) 하이에크

우선 하이에크는 20세기에 활동했으며, 신자유주의의 사상적 아버지로 평가되는 인물이다. 하이에크는 시장에서의 경쟁을 하나의 게임으로 생각했다. 지식이나 기술이 각기 다른 게임의 참가자들이 정당한 규칙 아래서 경쟁하고, 거기서 승자와 패자가 생겼다면 그 결과는 정당하다는 것이 하이에크의 생각이었다.


따라서 그 게임이 공정했는지, 혹시나 게임 참가자 중 누군가를 속인 사람은 없었는지를 감시하는 것만으로 우리의 역할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게임의 결과가 평등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하이에크의 입장에서는 정의가 아니다.


정당한 규칙 아래서 경쟁한다면 그 결과는 정당하다는 것이 하이에크의 생각이다.


이걸 조금 더 쉽게 알아보자. 예를 들어, 우리 반에 A, B, C, D라는 학생이 있다. 여기서 A는 나다. 시험을 앞두고 나를 제외한 B, C, D는 맨날 놀러 다니기 바빴다. 반면 나는 정말 코피 나게 밤새 공부해서 결국 100점을 맞았다. 놀기만 했던 B, C, D는 각각 20점, 30점, 40점을 받았다. 그런데 담임선생님이 들어와서 나한테 이렇게 말했다.


"A야 네가 1등을 했구나. 참 잘했다. 그런데 네 점수가 너무 높은데, 네 점수에서 30점을 떼서 B, C, D에게 각각 10점씩 나눠주도록 하자. 그럼 B, C, D는 각각 30점, 40점, 50점이 되는데, 그래도 70점인 네가 어차피 우리 반에서 1등이니까 걱정할 필요는 없단다."


당신이 생각하기에 담임선생님의 이런 행동은 정의로운가? A의 입장에서는 이 행동은 불합리하고 부도덕하다. 공정한 기회와 절차가 보장되어 있다면, 결과가 아무리 큰 격차를 발생시켰다 해도 그 성과를 보장해주는 사회가 윤리적이고 정의로운 사회다.


이러한 생각에 따른다면 사회에서 발생한 빈부격차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건 단지 게임에 대한 정당한 대가다. 그리고 윤리적인 사회를 만들겠다며 세금을 늘리는 행위는 정의롭지 않다. 진정으로 윤리적이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를 희망한다면, 사회에서 공정한 경쟁이 이뤄지고 있는지, 절차가 준수되고 있는지, 법을 어기는 행위는 없는지를 국가가 감시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하이에크의 생각에 따르면 결과를 평등하게 만드는 행위는 정의가 아니다.



(3-2) 롤즈

롤즈는 이런 하이에크와 반대되는 주장을 했다. 롤즈는 세금을 높일 것인지 낮출 것인지, 재분배를 할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한 합리적인 대답을 제시하기 위해 특수한 상황을 가정했는데, 이걸 원초적 입장이라고 불렀다.


예를 들어, A, B, C라는 사람이 있는데, 이 세 명은 모두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렸다. 말도 할 수 있고, 합리적으로 판단도 할 수 있는 상태지만, 자기가 누구였는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등 과거에 대한 기억을 잃었다. 다행인 건 이 기억이 정확히 1시간 후에 완벽하게 돌아온다는 것이다.


여기서 이 세 명 중 한 명은 빌 게이츠이고, 다른 한 명은 평범한 중산층이고, 마지막 한 명은 노숙자다. A, B, C는 지금 자기가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자신이 셋 중에 한 명일 것이라는 건 알고 있다. A, B, C의 기억이 돌아오기 전에 롤즈가 A, B, C에게 이렇게 묻는다.


“이제 두 가지 중에 하나의 분배 방식을 선택하려고 합니다. 첫 번째 분배 방식은 세금을 낮추고 복지도 낮춰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세금을 높이고 복지도 높여 빈부격차를 해소하고 최소 수혜자에게 혜택을 주는 것입니다. 어떤 쪽을 선택하시겠습니까?” 당신이라면 이 상황에서 어떤 쪽을 선택할 것인가?


롤즈의 말에 따르면 세 명 모두 세금 인상과 복지 확대 방식에 동의할 것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자신이 노숙자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 걱정되기 때문이다. 자신이 빌 게이츠여서 얻는 이익보다 자신이 노숙자일 때 처할 어려움에 더 마음이 쓰이게 된다는 것이다.


원초적인 상황에 처해있을 때 우리는 모두 복지 확대에 더 마음이 갈 것이다.


롤즈의 원초적 입장에 대한 사고 실험은 우리가 개인의 특수한 상황을 벗어났을 때, 사회 전체가 합리적으로 합의할 수 있는 분배 방식이 무엇인지를 생각할 수 있게 해 준다. 최소 수혜자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는 사회가 사실은 구성원 전체가 동의할 수 있는 사회인 것이다. 롤즈의 생각에 따르면, 정의롭고 윤리적인 사회를 위해서는 개개인들이 납득하고 합의할 수 있는 결과를 고려해서 국가가 적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해 재분배를 추진해야 한다.


롤즈의 생각에 따르면 국가는 시장에 개입해 재분배를 추진해야 한다.


- 한 줄 요약 : 여러 철학자들은 정의에 관한 각자 다른 생각을 주장했다.


* 참고자료

(1) 정의란 무엇인가 - 마이클 샌델

(2)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1 - 채사장


* 유튜브 : https://youtube.com/c/마크의지식서재

* 이메일 : marksknowledg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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