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혁신살롱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산공원 Jan 20. 2023

앎을 원하는 이의 안내자

공주에 자리잡은 길담서원, 뽀스띠노&여름나무

“춤추는 별을 낳기 위해서는 자기 안에 혼돈을 가져야 한다.” 독일어 원문과 한국어로 담장에 적어놓은 말에 눈길이 갔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나오는 말이다. 공주시청과 봉황초등학교 사이 봉황동 골목길에 자리한 인문학 공간 ‘길담서원’의 예사롭지 않은 풍경에 마음을 빼앗겼다. 길담서원은 책방, 그림전시, 공부모임, 원서강독, 글쓰기모임, 책읽기모임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복합공간이다. 경복궁 옆 서울 서촌에서 2008년부터 2020년까지 12년간 강연, 독서모임, 청소년인문학교실, 음악회, 한뼘미술관 전시 등의 다양한 활동을 펼친 길담서원이 이제 공주에서 시즌2를 열고 있다.

초록색 대문을 넘어 담쟁이 넝쿨이 골목을 향해 뻗어 있다. 아담한 크기의 마당은 여러 가지 화분과 풀과 나무들로 가득하다. 이 초록들과 니체의 말이 대구를 이룬다. 혼돈이란 끝없는 자기질문이 아닐까. 그 질문을 품고 사람들이 찾아오는 곳, 그곳이 길담서원이다. 지금 공주 길담서원을 운영하는 건 뽀스띠노와 여름나무다. 2020년, 1대 대표였던 박성준 선생이 물러나고 뒤를 이어 여름나무가 대표를 맡았다. 뽀스띠노는 이전처럼 학예실장을 맡고 있다. 둘은 서울 대신 공주를 택했고 그렇게 길담서원의 공주 시대가 시작되었다.



담장에 적힌 니체의 문구가 인상적인데 누가 고르신 건가요?

뽀스띠노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독일어 원서로 3년 가까이 읽었어요. 그 책의 서문에 정말 좋은 문장이 많은데, 그 좋은 문장들을 하나하나 골라서 살폈어요. 그중에서 저 문장이 짧으면서도 가장 임팩트가 강했어요.


뽀스띠노 님은 학예실장이라고 하셨는데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 건가요?

뽀스띠노   요즘 ‘북 큐레이션’이라는 말이 유행하잖아요. 제 명함의 직책도 영어로 ‘치프 큐레이터Chief Curator’로 되어 있어요. 책을 선택하고 진열하는 방식을 전시의 개념으로 받아들인 거죠. 큐레이터, 즉 ‘학예’라는 단어를 쓴 건 우리가 결국 책을 매개로 만나서 배우는데, 그 배움의 길을 어떻게 보여주고 또 그것을 어떠한 방식으로 소통하는가에 대해 질문들을 계속 해왔기 때문이에요. 물론, 한뼘미술관이라는 전시공간을 운영해서 이기도 하지만요.


지금 우리 주변의 ‘혁신가’를 소개하는 기획의 일환으로 인터뷰를 하고 있어요. 스스로 혁신가라고 생각하시나요?

뽀스띠노   혁신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일단 저는 혁신가는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가 사회구조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살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내 삶을 이 사회구조에 편입시켜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니체는 ‘예술가는 사슬에 매어 춤추는 자이다’라고 했는데요. 이는 불공정한 사회구조라는 사슬, 여성이라는 사슬, 가난하다는 사슬 등 이런 다양한 제약들에도 불구하고 조금 다르게 창작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살려고 하구요.


저희가 길담서원이 궁금했던 이유와 같네요. 세상의 틀에서 한 발자국 벗어나 자기의 삶을 고민하는 사람들을 혁신가로 보고 인터뷰를 하고 싶었어요.

뽀스띠노   먼저 언급한 니체의 문구를 인용하면, 춤추는 별이 되려면 자기 안의 혼란을 가져야 된다, 라고 했잖아요. 그 혼돈이라는 건 자기 안에 질문이 있어야 무언가를 모색하게 된다는 거고, 그 도모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하나의 창작물이 자신의 삶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그런 질문을 가진 한 사람 한 사람들이 우리 책방에 모여서 그 비슷한 지향점을 가지고 같이 갔으면 하는 바램이 있어요. 함께 책을 읽고 공부하면서 어떤 때는 치열하게 토론하고, 어떤 때는 함께 산책하고 또 어떤 때는 그저 즐기기도 하고. 그러면서 각자 스스로가 그 성찰하는 과정 속에서 생산된 생산물, 그러니까 춤추는 별을 낳는 거죠. 저에게는 그 별이, 글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글이라는 형태를 책이라는 보자기에 싸서 두고, 또 다른 질문을 갖고 그것에 대해 탐구하고 발견해 나가려고 해요. 그렇게 같이 별을 낳으려고 하는 분들과 공명하고 소통하며 배우고 그 배운 것을 토대로 또다시 자기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을 조금씩 키워나가면서 자기다움을 찾는 게 아닐까요.




요즘 혁신이라는 말이 오염되어서 본래 의미와 다르게 쓰이는 경향도 있는 것 같아요.

뽀스띠노   그런 게 많죠. 가령 저희는 치유, 힐링이라는 말을 쓰지 않으려고 해요. 치유라는 말은, 말 그대로 병을 치료해서 근원적으로 낫게 한다는 뜻이거든요. 그런데 최근에는 그 단어가 상품화 되어서, 잠시 잊어버리게 하는 용도로, 마치 상품처럼 판매되고 있는 것 같아요. 요즘 음악치료. 미술치료나 문학치료 같은 프로그램이 많아졌잖아요. 그런데 과연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프로그램에 잠시잠깐 참가한다고 해서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이 되었는가, 라고 질문을 던졌을 때 그건 아니라는 거죠. 당의정을 잠시 입에 물려주는 게 아니라, 사회구조라든지 기저의 변화를 만들어냈을 때에야 사람들이 말하는 그 치유나 힐링 같은 말이 의미 있어진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근본적인 문제점들은 그냥 두고 잠시 체험하는 프로그램을 통해서 치유한다거나 하루 여행 갔다와서 ‘힐링하고 왔어’ 이렇게 얘기하죠. 잠깐 숨 돌린 것뿐이고, 돌아와 보면 그다음은 똑같잖아요. 과연 그게 치유가 된 걸까요? 그런 차원에서 어떤 언어들은 너무 변색되어 버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서촌에서 12년 동안 잘 운영되었는데, 어떤 이유로 서울을 떠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뽀스띠노   처음에는 우연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었어요. 서울에서 저희가 그동안 많은 스터디 모임을 하면서 인문학 책도 읽고 공부하고 토론도 했는데 뭔가 좀 붕 떠 있는 느낌이 들었어요. 계속 머리는 채우고 있지만 발을 이 대지에 단단하게 딛지 못하고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불안했어요. 왜, 불안하지? 그런 질문을 계속해서 던졌거든요. 그때, 전국귀농운동본부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길담서원에서 회의를 하는데 그 분들의 목소리와 행동양식에서 세상이 아무리 어지럽고 힘들어도 자기 삶을 스스로 책임질 수 있다는 자신감이 느껴졌어요. 크로포트킨 자서전에서도 관리자들은 주인에게 비굴하지만 농민들은 자기 일에 대하여 겸손하지만 당당했다고 기술하고 있었어요. 아마도 생산수단을 가지고 있어서 그랬을 거예요. 도시 노농자들에게는 노동력 밖에는 없잖아요. 고용되어 노동을 팔아서 먹고 사는 사람들은 늘 불안하지요. 서울이라는 도시에서는 뿌리 내리고 살기 어렵겠다는 그 불안이 계속 허기와 갈증을 불러일으켰던 것 같아요. 이러한 갈증이 공부를 통하여 자신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바꾸는 변화를 가져오기를 바랐는데, 오히려 인문학이 액세서리나 장식품과 같이 소비되고 있다는 기분도 들었구요.


구체적으로 공주로 정해진 어떤 직접적인 계기가 있었나요?

뽀스띠노   그런 생각을 하던 즈음이었는데, 2016년도에 공주시에 사는 화가의 전시를 길담서원 한뼘미술관에서 하게 되었어요. 그 분의 초대로 공주에 오게 되었어요. 여름나무님과 같이 진눈깨비가 내리는 날 공주에 처음 방문을 했지요. 그 선생님께서 원도심을 돌면서 하나하나 설명을 해주는데 이 도시가 너무 마음에 드는 거예요. 당시만 해도 공주는 좀 낡고 때가 탄 모습이었는데, 그게 정감 있게 느껴져서 좋았거든요. 그래서 ‘당장은 아니더라도 여기 와서 뭔가 하고 싶다’라고 얘기를 했더니 작가님이 ‘빈집이 너무 많다, 많은 사람들이 세종시로 이사 가면서 슬럼화 되고 있다, 집을 한 번 볼래요?’ 그러시는 거예요. 그길로 바로 집을 보러 갔어요. 그러고는 그냥 그 자리에서 집을 사고, 리노베이션도 그해 안으로 끝냈어요. 서울에서는 공부모임을 하면 대체로 2~3시간 정도 모임이 가능하거든요. 좀 더 깊이 있게 만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한데 직장에서 퇴근 후의 모임이 대부분이다 보니, 그런 모임은 불가능했어요. 그래서 퀘이커들처럼 합숙하면서 한 권의 책을 함께 읽고 산책하고 함께 식사하고 토론하고 글을 쓰고 발표하면서 마무리 하는 깊이 있는 모임을 할 공간이 없으니까 서둘렀던 것 같아요. 주중에는 서울에서 일하고 주말에는 공주에서 합숙하는 모임을 가졌는데, 생각보다 바빴어요. 20~30개의 모임이 매주 돌아가니까 거의 쉴 수가 없던 거죠. 결국은 몇몇 모임들만 가끔 와서 하거나 친구들과 함께 쉬다가고 그런 정도였어요. 그러다가 2020년에 초에 박성준 선생님이 물러나시면서 뽀스띠노가 길담서원을 맡아 이어갔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렇다면 ‘이제 공주에 집이 있으니까 거기에서 한번 해보겠습니다’ 하고 공주시로 왔어요.



 "계속 머리는 채우고 있지만 발을 이 대지에 단단하게 딛지 못하고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불안했어요. "



그렇다면 2020년에 길담서원을 이어받고 그때부터 준비하신 건가요?

뽀스띠노   서울에서 길담서원을 마무리하고 이사를 왔을 때가 2020년 2월이었는데 코로나가 딱 터진 달이었어요. 1년 동안 안식년을 갖기로 하고 공주시 곳곳을 걸어 다니면서 지형지물을 익히고 논과 밭을 산책했어요. 백제시대 역사유적지부터 근대건축물이 작은 원도심에 논밭과 어울려 있었어요, 그 과정에서 좋은 곳을 많이 알게 되었어요. 가령, 계룡산도예촌에 갔다가 도자기 만드는 법도 배우고 곡두가게에서 곡두 인형도 깎고 공주시평생교육원에서 공주학 강의도 들으면서 안식년을 가졌어요. 그리고 2021년부터 길담서원을 어떻게 열어갈지 고민하면서 1년에 걸쳐 전기와 배관을 제외하고는 저희가 직접 수리를 했어요. 해체하고 청소하고 페인트를 칠하고 벽돌을 쌓아 올려 부엌과 화장실 사이에 벽을 세우고 미장을 한 후 문을 달았어요. 수도를 연결하고 싱크대를 설치하고 화장실 바닥에 타일을 붙이고 변기도 설치하고 온수기도 달았어요. 이렇게 한 문장으로 몇 초만에 말했지만 몇 개월의 시간과 노동이 들었어요, 앞 문장 사이에 헤맴과 땀과 멍과 고통과 기쁨은 한 문장의 언어 속에 담을 수가 없어요. (웃음) 그렇게 2년의 공백기를 거쳐 2022년 2월 25일부터 다시 길담서원을 열어가고 있어요.


공간을 만들기 위해 많은 정성을 쏟았던 거군요. 처음 공주에 왔던 2016년과 지금을 비교하면 어떤 점이 다른가요?

뽀스띠노   그때는 빈집도 엄청 많았고 저녁이 되면 정말 깜깜해서 밖에 나가기가 조금 겁날 정도였어요. 지금은 많이 달라지긴 했는데, 아직도 여름나무는 혼자 밤에 걸으러 나갔다가 바로 다시 들어와요. 공주도 도시긴 하지만 대도시의 불빛 속에서 살던 사람들이라 적응하는 데 시간이 좀 더 걸릴 것 같아요. 그리고 지금은 도시에 관광객들도 제법 보이지만, 처음엔 밖에 나가면 아무도 없어서 사람 만나기가 되게 힘들었어요. 한 도시가 죽어간다는 게 이런 모습이구나라는 걸 느낄 정도로요. 그런데 저는 워낙 사람에 치이고 네온사인이 번쩍번쩍한 곳에서 살다와서 그런지 한편으로는 이런 모습도 좋았던 것 같아요.


죽어가는 도시였는데 공주의 어떤 모습을 보고 여기에 살아야겠다, 공간을 만들어야겠다, 그런 생각을 하셨어요?

뽀스띠노    아까 제가 정말 우연하게 집을 샀다고 말했지만, 실은 마음 한쪽에 늘 목마름이 있었던 것 같아요. 땅에 발을 디디고 내 삶을 책임지면서 살아가는 그런 형태의 삶을 꿈꾸고 있었던 것 같아요. 흙과 가까이 사는 삶. 그리고 흙 속에서 내가 먹을 것을 키우고, 그걸 재료 삼아 요리하고, 또 그 음식을 이웃과 나누면서 사는 그런 자급자족에 가까운 삶을요. 서울에서는 그게 불가능하니까 계속 갈증 난 채로 있다가 이곳에서 우리가 꿈꾸던 삶을 채울 수 있는 여백을 본 거 같아요. 지금은 저희가 텃밭도 가꾸면서 땅에서 농사를 짓는 생산자가 되기도 하고, 또 글을 쓰는 창작자로 있을 수도 있잖아요. 원하는 삶으로 다가가기 위한 주춧돌이 공주였던 거죠. 아직은 어둡고 깜깜하지만 이제 불을 하나하나 밝혀가면 여기가 다시 살아날 테니까. 결국 우리가 공주에서 본 건 삶의 근원으로 다가가는 가능성이었던 것 같아요.


공주에서 비로소 발을 땅에 디디고 사는 감각에 가까워진 것 같네요. 혹시 공주에서 좋아하는 장소가 있나요?

뽀스띠노   둘 다 산책하는 걸 좋아해요. 가끔 산책을 가서 맥주를 마시고 오기도 하는데요. 무더운 여름 날, 보냉백에 맥주를 3개 넣으면 딱 맞거든요. 그거 들고 저녁에 공산성에 가서 슬슬 걸어 다니면서 저는 한 캔에 절반 정도 먹고 이 친구가 나머지를 마셔요. 금강을 바라보면서 그 날 있었던 이야기를 나누며 맥주를 마시고 낄낄 대면서 내려와 제민천의 산책로를 따라 집으로 와요. 기까이에 편안한 산책로가 있어서 좋아요. 주로 밤에 가는데 요즈음엔 추우니까 뱅쇼를 만들어서 가요.


공주와 같은 지역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서울과는 다를 것 같은데, 공주에서 특별히 하고 싶은 일이 있나요?

뽀스띠노   저희가 그동안 청소년 프로그램을 많이 했었는데, 지역 청소년들과 인문학교실을 열어보고 싶어요. 저는 청소년들에게 꼭 회사에 들어가지 않아도 다른 삶의 방식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요. 가령, 입시나 취업과 상관없이 인생을 올곧게 만들어갈 수 있는 책들을 같이 읽고 토론하고… 또 여기는 자연적 조건이 좋으니까 야외에서 활동할 수 있는 것을 같이 교감하고 싶어요. 전에 청소년 인문학교실을 운영할 때 길, 일, 돈, 밥, 집, 몸, 품 등 10가지의 주제로 해서 역사적, 사회적, 예술적, 문학적, 철학적인 관점들로 나눠서 강의를 하고 토론을 해서 책을 출판했어요. 그 때는 1박 2일로 청소년들과 주로 문화유산과 관련된 곳으로 현장 답사를 갔지만 보다 삶과 밀접한 경험을 많이 하려고 노력했어요. 예를 들면 제기를 찰 때 문방구에서 사는 게 아니라, 풀 중에 제기가 될 만한 것을 직접 찾아서 차보는 거예요. 소비가 아니라 일상에서 필요를 해결할 수 있는 자세를 습득하는 거지요. 그러한 발견이 지속되면 삶의 방식이 바뀌거든요. 제기를 많이 차다보면 어떤 풀이 제기의 속성과 잘 맞는지 발견할 수 있으니까요. 이런 공부를 통해 잃어버린 오감들, 놓쳐버린 삶의 감각들을 깨우고 싶은 거죠. 삶에는 한 길만 있는 게 아니고 실패한 삶이라는 것은 없고 다른 삶들이 있다는 걸 마음속에 갖고 있었으면 좋겠어요.



길담서원 청소년인문학교실 시리즈



어디에도 흔들릴 것 같지 않은 단단한 이야기들이네요. 혹시 뭔가 소박한 꿈을 품고 있는 게 있다면요?

여름나무    2020년에 처음 공주에 정착하려고 했을 때는 마땅한 베이커리가 없었어요. 처음에는 서울에 갈 일이 있을 때 사다 먹었는데 안식년을 갖다보니 시간적인 여유가 생겼잖아요. 그래서 맛있는 빵을 직접 구워 먹어야겠구나 생각했어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만들고 있어요. 사실은 한발짝 더 나가서 이제는 회원제로 매달 제가 구운 빵을 보내드리고 있어요. 지금 책방 안채가 비어 있는데 내부만 뜯어놓은 상태라서 공사를 마치면 큰 식탁을 들이고, 북&디너 컨셉으로 공간을 마련할 계획이에요. 제빵은 발효 시간이 필요하잖아요. 게다가 우리는 우리밀통밀로 하니까 그 시간이 긴 편이에요. 반죽을 해놓고 발효가 되는 동안 빵과 관련된 책이라던가, 좋은 책을 선정해서 같이 읽고 토론 하고 산책을 한 후 돌아와서 빵을 구워 함께 먹으면서 이야기도 나누는 프로그램을 하면 좋을 것 같더라고요. 저 안채를 고쳐서 그렇게 노는 게 저의 소박한 꿈이에요.


그렇다면 원대한 꿈도 있나요?

뽀스띠노   최근에 제가 그동안 안 해봤던 일을 하는데, 뭐냐면 그림책 작업을 하고 있어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북한강 강변에서 자전거포 하면서 시 쓰며 살고 싶다고 막 떠들고 다녔거든요. 대학 다닐 때는 동인지도 내고 시화전도 열고 문학 활동을 했었는데 졸업하고 서른이 넘고부터는 인문학이나 사회과학 책만 보는 거예요. 그렇다보니 글도 그쪽으로만 쓰게 되면서 순수 창작을 못하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이제 공주에 와서 살면서 다시 문학이 하고 싶어졌어요. 버트란드 러셀이 《게으름에 대한 찬양》에서 말한, 한가함이 주는 효과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바쁘고 힘들다고 뒤에 밀쳐뒀던 것을 시간적인 여유가 생기니까 이제 마음 밑에까지 꾹꾹 눌러왔던 것을 길어 올리는 거죠. 그래, 내가 하고 싶은 게 이거였어, 이걸 해야지 그런 마음 같아요. 지난번에 네루다의 ‘시’라는 시 한 편을 청년들한테 읽어줬더니 그 분들도 그게 피부에 와 닿았나봐요. 좋은 문학 작품이 주는 울림이 있잖아요. 그런 작품을 하나 쓰면 좋겠어요. 제 이 위대한 꿈이 너무 좋아요. 그런데 나 이런 질문 처음 들어. 아니, 무슨 질문을 하나 했는데 답하다 보니 꿈이 길어져 올라왔네요. (웃음)






시를 쓰고 싶다던 원대한 꿈을 말하면서 소녀처럼 수줍게 웃던 뽀스띠노와 빵 굽는 얘기를 할 때 가장 행복해 보이던 미소를 지은 여름나무, 둘은 꼭 윤동주의 <서시> 같은 사람들이었다. 길을 잃었을 때 그 어떤 외부적인 것에 흔들리지 않고 내면의 시원始原으로 다가가는 사람들. 자신의 삶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생각을 거듭해 해답을 찾는 사람들. 둘은 이제 공주라는 도시에 안착하여 그들의 삶을 더욱더 견고하게 해줄 공간을 마련하고 구축하였다. 둘은 그 공간에서 앎을 원하는 자들의 안내자가 되어 언제나 반겨주리라.

철학자 사르트르는 자신의 인생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가는 각자의 책임이라고 말했다. 결국 우리가 태어난 이유는 자신을 알기 위함이고 존재의 가치를 찾고 그 책임을 다하는 일, 그러면서 내적 성장을 하는 것일 테다. 그 끝에 생의 경이가 있겠지. 마지막에 우리를 배웅하던 뽀스띠노와 여름나무는 나중에 식탁이 놓이고 공간이 채워지면 놀러 오라고 미리 초대를 해주었다. 그때 같이 빵을 먹으면서 ‘우리 옛날에 소박한 꿈 얘기했는데…’ 하면서 다시 얘기하자고 하였다. 꿈에 대해 그들이 해준 마지막 말은 “소박한 꿈이 자꾸자꾸 쌓이면 원대한 꿈이 되지 않을까요.”였다. 소박함과 원대함이 겹쳐 있는 새로운 공간에 다녀왔다.



<혁신살롱 프로젝트>
충남지역에서 자신만의 일과 활동을 이어나가며, 조금이라도 세상을 좋은 곳으로 만들어가는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했습니다.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그들이 어떤 일상을 보내는지, 어떤 일들을 하며,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 그들과 나눈 이야기들을 연재합니다.


제작 | 충남사회혁신센터x사과나무

글·정리 | 이주영


매거진의 이전글 사회를 바꾸려는 마음, 그 움직이는 마음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