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많이 지으세요

2026. 1. 1

by 소산공원

작년 1월 엄마는 무릎 인공관절 수술을 했다. 약한 연골을 물려받은 것인지, 관절을 다 닳아 없앨만큼의 노동을 물려받은 건지 할머니, 큰삼촌도 모두 인공 관절 수술을 했고 이어 엄마 차례가 온거다. 내 친구들의 엄마들 중 아무도 무릎 관절 수술을 받은 사람은 없고 병원에서도 엄마는 가장 젊은 나이였다. 엄마의 무릎 관절의 연골은 이미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이미 뼈와 뼈 사이가 딱 맞닿아 있어 서 있을 때마다, 걸을 때마다 고통을 느끼는 상태였다. 수술말고는 크게 답이 없어 결국 왼쪽 무릎 수술을 했다.

우리 집에서 가까운 병원에서 수술을 한 덕에 검사를 하고 수술을 하고 회복하는 한달남짓 기간동안 매일 엄마 면회를 갔다. 간호간병의 병실이라 저녁에 한시간정도 면회 시간이 정해져있었다. 그 사이에 들러 반찬을 전해주거나, 마른 수건을 적셔 널어두거나, 쌓인 쓰레기를 버리고 자리를 정돈하거나 병실 사람들에게 가져온 간식을 나눠주는 일을 했다. 간병인이 따로 있는 병실이었지만 물을 갈아주는 것 외에 특별히 해주는 것이 없다는 투덜거림을 들으며 병실 다른 할머니들의 잔심부름을 하거나 화장실 수발을 들기도 했다. 매일은 아니지만 엄마의 머리를 감겨주고 수건을 따뜻한 물에 적혀 얼굴과 손발을 닦아주기도 했다.

이와중에 엄마는 걸려온 전화에 항상 "딸이랑 있어~매일 와"라고 말하거나, 누군가 나를 칭찬하면 "딸이 있어서 좋긴 좋아요"라고 했다. 나에게는 직접적으로 표현한 적이 단한번도 없지만 밖에서는 누군가에게 자랑이고 복된 딸인 모양이다. 결국 남는 건 딸이라는 말 속 그 딸의 인생은 어떤가. 나는 좋은 딸이 되고 싶어서 간병을 한 건 아니였다.

내가 고등학교 때 엄마는 봉명동에 작은 골목에서 그 골목만큼 작은 칼국수 가게를 했다. 4인 좌식 테이블이 3개 밖에 되지 않는, 그마저도 한 개의 테이블은 항상 엄마의 짐으로 널부러져있는, 그래서 손님이 오지 않는 것이 너무 당연한 그런 가게였다. 엄마는 작은 가게에서 칼국수를 파는 일에 정성을 다했다. 꽃게와 무와 멸치를 가득넣어 씁쓸할 정도로 진한 국물을 만들고 커다란 다라이에 밀가루와 물을 가득넣어 장화를 신고 퍽퍽 밟고 치대어 반죽 덩어리를 만들어서 제면기로 직접 반죽을 뽑아냈다. 그러다가 제면기에 검지 손가락이 끼어들어갔다. 손톱과 첫마디가 바스러졌다. 부서진 손가락을 휴지로 동여매고 가게 근처에 있던 의료원에 가서 급히 수술을 받았다. 그 때 수술을 하고 며칠 간의 입원을 하는 동안 나는 한번도 엄마 병원에 가보지 않았다. 그때 나는 청소년이었고, 아버지가 한창 술을 마실 때였고, 매일 전쟁이 벌어졌고 그런 날들 속에 엄마의 손가락이 부서진거다. 엄마는 홧김에 말한 것일텐데 정말 병원에 아무도 가지 않았다. 아무도 오지 말라고 했을 때 아무도 오지 않는 일은 정말 쓸쓸한 일이다. 엄마는 나중에 말했다. 정말 아무도 오지 않았다고. 다인실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계속해서 가족과 손님이 찾아왔는데 엄마는 고아처럼 아무도 오지 않았다고. 그 말을 언제 들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데 사는 내내 그 일이 미안했다. 엄마를 썩 좋아하지도 않으면서도 그 일만 생각하면 너무나 쓸쓸하고 안쓰러워져서 잘해주고 싶어졌다. 그 미안한 마음을 갚고 싶어서 매일매일 병원에 갔다. 좋은 딸이 되고 싶다기 보다는 죄책감을 덜고 싶어서. 전보다 더 행복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전보다는 덜 불행했으면 싶어서. 어떤 인생은 행복의 총량을 채우며 살지만 어떤 인생은 불행의 총량을 덜어내는 일이기도 하니까.


올해 마지막 날. 요가를 마치고 나가는 길에 '새해 복 많이 지으세요'라는 인사를 받았다.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내라는 말이 생소했다. 복이라는 게 누군가에겐 그냥 주어진 것 막 굴러들어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했던 복 받으란 인사는 그런 행운을 우연히 받으라는 뜻이었겠지. 언제나 그런 일확천복을 바라지만 불행의 총량을 덜어내는 것만으로도 이 생은 충분한 듯 싶다. 그러므로 복을 받는 것 대신에 '지으세요'라는 인사에 더 기대게 된다. 내가 엄마에게 할 수 있는 일은 내가 지은 복을 내어주는 일이겠지. 나는 받지 못했지만, 기꺼이 돌려줄 수 있는 복. 그러니 야속해말고 새해에는 내가 만들어 낼 수 있는 복, 나누어줄 수 있는 복에 몸과 마음을 더 기울여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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