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침이 시작되었다_9.14

by 소산공원

몸에 기운이 떨어지거나, 환절기가 되면 늘 식도에서부터 기침이 목밖으로 스뭇스뭇 쉴 새 없이 삐저나오는데, 기침을 하다보니 기운이 떨어지고, 기운이 없으니 기침을 하게 되는 뭐 그런 굴레의 시작. 몸이란 정말 신기하단말이지.


묘하게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는 시기가 있는 것 같다. 내가 혼자서 해낼 수 있는 일보다는 사람들을 만나야하는 일이 더 많은 날들. 그게 겨우 2~3일만 되어도 에너지가 쬭쬭 빨리는 나는야 내향인.............


아침에 질질 끌고 있는 일의 미팅을 다녀오고, 오랜만에 니노&서정을 만났다. 니노는 서정을 통해 알게 된 친구인데 극외향인인 서정은, 나와 니노의 캐미가 맞을 것을 판단하고 우리를 소개시켜주었다. 니노의 일상 텐션(?)은 서정과 더 가깝진 하겠지만, 일을 하는 영역이나 생각의 장르서 과연 니노는 좋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친구였다. 게다가 대전에서 남자 페미니즘 모임을 꾸려내는 친구! 일의 기록을 잘 해내는 것,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만들어내는 것이 언제나 멋져 자주 만나지 않지만 닮고 싶은 친구다. 뭔가 마음의 기침들을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이번엔 밤을 보내지 못해 아쉬웠다.


저녁엔 오랜만에 호두즈 회의를 했는데, 얘네는 정말 이상한 애들이다. 잠깐(한달?)의 틈이 있으면 서로 부글부글,드글드글, 새로운 일을 꾸리지 못해 안달이 난 걸까? 시내랑 강릉을 다녀오는 길에 차에서 도란도란 기획했던 일을 제안했는데, 단숨에 자기 일이 되어버려 막 상상의 나래를 펼쳐버린다. 참을 수 없는 시작 중독자들. 나는 주로 시작주의자들의 시작을 제안했던 사람인데 이 드릉드릉의 마무리를 짓는 일, 짓지 않는 일들을 수도 없이 반복하면서 일을 배워왔던 것 같다. 정말 다행이다.


이번에도 역시 커다란 포부를 안고(언니 나 부자가 되고싶어!) 시작하되 우리에게 유래없는 장기 프로젝트. 요새 일을 하면서 글 콘텐츠를 만드는 일, 책의 물성에 닿는 일에 대한 욕심이 생겼는데, 재미있게 마음대로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다. 진짜로 부자가 될지도 모르잖아!


여튼 서정이를 함께 만난 김에 환영회&환송회를 동시에 했다. 자주 가는 동네 김밥나라 앞에 '우리동네술집 타잔'이란 공간이 있었는데 꼬질주의자 소산이 그곳에 가자 제안했고... 역시나 동네 술집답게 비싸고 넉넉한 안주를 파는 곳이었다. 또 옛날 노래의 정취에 휩싸이고.............


듬성듬성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는 와중에 인터뷰주의자 서정이 '삶에서 가장 중요한게 뭐에요?'라는 질문을 시전. 전에 한 번 묻길래 거침없이 '나'라고 얘기했는데 과연 다들 비슷한 대답을 했다. 응용주의자인 나는 "그렇담, 인생에 가장 힘을 주는 것이 무엇이야?" 라고 묻고 한참을 고민했다. 그리곤 존나 오글거리는 드라마처럼 '그럼 언니는 뭐에요?'라는 질문에 '너네'라고 말해버렸다. 모두가 할 말을 잃게 만들어 버렸지만 사실었다. 나는 인생의 매 순간에 친구가 중요한 사람이다.


요즘에야 깨닫는데 태어나길 애초에 사랑과 인정이 많은 사람으로 나 버린 것 같다. 어릴 적 동생을 돌보는 일은 항상 기꺼운 나의 일이었다. 사촌들이 새로 태어나면 어린 나는, 더 어린 존재들을 사정없이 예뻐하려 애를 써왔다. 그치만 우리 부모님은 나의 이런 사랑을 감사히, 잘 다루어낼 만한 기술이 없던 사람들이었다. 나는 마구 상처받는 어린 날들에서도 우리 엄마랑 아부지를 안쓰러워하는 아이였으니까.

여튼 사랑을 풀어낼 공간들이 부족해서 항상 친구들에게 조금 더 많은 의미를 나누었던 것 같다. 지나고 본 교환일기, 다모임, 싸이월드에 그들을 말하고 싶은 흔적이 가득했다. 아무도 시키지 않은 백문백답을 해내고, 묻고 답하고. 내가 좋은 사람으로 기능하기 위해 좋은 관계를 만드는 일에 본능적으로 몰두를 해왔던 것 같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때 마다 삶이 조금씩 달라져왔다. 만나는 친구들이 달라지면 나는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되어있다. 대안학교에서 만난 친구들, 호두즈 친구들, 책방의 손님들, 협동조합을 꾸렸던 친구들, 일을 하며 만났던 친구들, 책을 만든 친구들, 몽골을 함께 여행했던 친구들. 나는 언제나 나로 존재하지만, 나에게 변화와 힘을 주는 존재는 언제나 곁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걸 내가 알게 되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기침을 멈추지 못하는 채로 집에 왔는데 짧은 산책을 하고 혼자 일을 하며 일기를 쓰니 기침이 사라져있다. 이렇게 친구들을 좋아하면서 말을 뱉고 표정을 짓는 걸 내 몸이 힘들어한다니! 참으로 불화하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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