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부탁해> 리얼리즘 난임극복소설
집엔 이미 은설의 휴식을 위한 이부자리가 깔려 있었다.
“허리 아프려나? 바닥 힘들면 엄마 아빠랑 방 바꿔. 안방 침대서 자.”
“나 원래 바닥에 이불 깔고 자는 거 더 좋아하잖아요. 그리고 내방이 더 편해. 하루 세 번 약도 넣어야 한단 말이에요. 안방 쓰면 더 불편할 거 같아요.”
“그래 그럼.”
어머니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은설에게 두 번 권하지 않았다.
담백한 어조의 ‘그래 그럼.’을 들으니 은설은 그제야 비로소 마음을 편안히 내려놓고 쉴 수 있는 엄마의 집에 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것도 걸리적거리는 것 없는 편안한 차림으로 옷을 갈아입고, 은설이 집에서 가지고 온 짐들을 대충 한쪽 구석에 밀어 둔 채 포근한 이불 안을 파고들었다.
“졸려.”
“추어탕 먹고 자”
은설의 혼잣말 위로 부엌에서부터 울려 나온 어머니의 목소리가 겹쳤다.
“아, 귀찮아. 네에에~”
[거기 몇 시랬지?]
추어탕 반그릇으로 점심 식사를 가볍게 마친 은설이 이불 안에 누운 채로 준수와 영상통화를 했다.
[9시 약간 안 됐어. 일 시작 전에 전화 건 거야.]
[맞다. 여기랑 7시간 차이랬지.]
은설은 그제야 준수가 책상 위에 살짝 엎드린 자세로 영상통화를 하고 있는 중임을 알아봤다.
[사무실에 아무도 없어?]
[내가 항상 1등이야. 더운 나라라 그런가 확실히 분위기가 좀 다르네.]
[분위기 더 좋은데 준수 씨가 적응 못하고 자꾸 일찍 가 있는 거지?]
[응. 헤헤.]
[한국인 마인드는 한국 밖에선 버리도록 해요.]
실없는 대화를 한참이나 나눈 후, 준수는 은설에게 시술이 할 만했는지를 다시 물었다.
[진짜 안 힘들었어?]
[이식은 생각보다 훨씬 더 할만했다니까. 아까 다 물어봐놓고 뭘 또다시 묻고 그래요.]
[진짜 고생스럽지 않았다니 다행이네요. 그럼 신랑은 보고 싶지 않았어?]
[엄마랑 같이 있어서 괜찮았어.]
[쳇. 신랑은 무조건 보고 싶어야지.]
준수가 짐짓 섭섭한 체를 했다.
[옆에 있어주지도 못하는 신랑 보고 싶어 해 뭐해요. 나미비아에서 여기까지 달려와 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미안해.]
준수가 찔리는 것이 많은 사람처럼 꼬리를 잔뜩 내리고 사과를 했다.
이미 여러 번 들었던 준수의 사과였지만, 준수는 여전히 은설에게 미안한 듯했다.
[미안하라고 한 말은 아녜요.]
멀리서 홀로 고생 중인 준수가 아직도 한국의 일로 미안해하는 것이 또 마음에 걸렸던 은설이 목소리를 누그러뜨려 준수를 다독였다.
[에이, 미안하라고 자꾸 그러는 거 같은데?]
[아니라니까! 암튼 잘해주면 안 돼. 바로 또 장난 거는 것 좀 봐.]
[전화로 할 수 있는 게 너무 한정적이라 그래요. 대충 웃고 넘어가요, 마누라.]
9시가 조금 넘으니 사람들이 하나둘씩 사무실에 들어서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 출근 하나보다. 이제 끊어야겠네.]
[응. 내가 이따 점심시간에 또 할게.]
[아니야, 그때쯤엔 나도 저녁 먹을 거 같아. 나 신경 쓰지 말고 밥 맛있게 먹어요. 퇴근 때쯤 걸어요. 전화기 손에 꼭 붙잡고 기다리고 있을 게.]
[어머니께 감사하다고 좀 전해줘요. 어머니가 내가 했어야 할 일을 대신해주시느라 고생하셨네. 그거 되게 힘들고 지루한데. 기다리는 거.]
[마침 요즘 휴대전화 사용법 배우러 다니셔서, 배운 거 복습하느라 바빠서 하나도 안 지루하셨대.]
[은설 씨 마음 쓸까 봐 그렇게 말씀하진 거지. 내가 해봐서 알아요, 이 사람아. 어머니께 진짜 감사드려야 해.]
[치, 그렇게 감사하고 미안하면 도루 한국 들어오시든가요. 붸에~~. 얼른 끊어. 일해요.]
마치 방문 밖에서 엿들으며 통화가 끝나기를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은설이 영상통화를 끊자마자 어머니가 예쁘게 깎은 사과접시를 들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사과 먹어.]
[밥 먹은 지 얼마 안 됐는데 또?]
[이건 후식이잖아.]
[네]
은설은 잠자코 사과를 받아 들었다.
“엄마, 저 여기서 지낸 지 5일 됐는데 몸무게 3킬로그램 늘었어요.”
“너 그렇게 찌면 안 돼. 체중 관리 해야 해. 애 낳을 때 힘들어 그럼.”
라고 말하면서도 어머니의 손은 여전히 수박을 잔뜩 자르고 있었다.
“엄마가 자꾸 먹을 걸 주시니까 그렇죠.”
“먹지 마, 지지배야. 기껏 거둬 멕여 놨더니.”
섭섭함이 잔뜩 실린 목소리로 ‘먹지 말라’는 말을 하면서 어머니는 은설 앞에 커다란 설렁탕 깍두기 같은 모양으로 자른 수박이 예쁘게 담겨 있는 그릇을 밀어주었다.
“이건 혼자 있을 때는 못 사 먹는 거니까 그냥 먹을 게요.”
은설이 어머니를 놀리듯 실실 웃으며 수박 한쪽을 짚어 입 속으로 밀어 넣었다.
“달아?”
“응. 맛있어요.”
은설은 자른 수박이 잔뜩 담긴 그릇을 들고 거실 TV 앞으로 갔다.
수박 자른 식탁 위를 대강 정리한 어머니도 곧이어 주방을 벗어나서 은설 옆으로 다가와 앉았다.
은설은 느긋한 자세로 앉아 평소에는 보지 않던 아침드라마를 찾아 채널을 돌렸다.
“9번이야.”
“아하!”
TV 화면에서 한 번도 눈을 떼지 않으며 어머니는 수박 두 점을 연속해서 입 속에 밀어 넣었다.
“쟤네는 무슨 사이길래 저래요?”
“그냥 봐. 한 10분만 보면 다 알게 돼.”
어머니가 처음으로 은설의 존재가 꽤나 귀찮다는 듯한 내색을 했다.
닷새만이었다.
은설은 첫 시험관 시술을 마친 막내딸을 살뜰히 돌보아주어야 한다는 부담감에 사로잡혀 있던 어머니의 긴장이 조금씩 누그러지는 것을 보며 왠지 모를 안도감을 느꼈다.
“엄마 우리 이따 시장 갈까요?”
은설이 무심결에 하는 이야기처럼 어머니에게 외출을 제안했다.
“어딜 나가. 집에서 쉬어, 그냥. 시장은 엄마 혼자 보러 가도 돼.”
“닷새동안 집에만 있었더니 좀이 쑤셔서 그래요. 어차피 뱃속에서 결판은 이미 났어요. 붙을 애기면 진작에 붙었을 거고. 아님 그냥······, 아닌 거고. 아얏!”
은설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어머니의 스매싱이 은설의 허벅지로 날아왔다.
“기지배, 말 가려서 해. 그런 말을 왜 하니?!”
“엄마랑 나가고 싶으니까 그러죠. 보니까 집에 청소기 상태가 영 아니올시다던데. 엄마한테 청소기 하나 선물하고 싶어 그러지.”
은설의 말에 3초쯤 틈을 두었던 어머니까 이내 머리를 세차게 흔들고 손사래를 쳤다.
“아유, 됐어. 고쳐 쓰면 되는 걸 귀찮아서 아직 에이에스센타에 안 가져간 거야.”
“에이, 그러지 말고 이참에 하나 사요. 그거 산지 십 년 넘었잖아. 엄마가 먹여준 한우 값은 하고 가고 싶어서 그래요.”
“아유, 됐다니까 그래.”
청소기 이야기에 보던 드라마도 마다하고 자리를 떴던 어머니는 저녁 식사를 마칠 무렵 은설에게 슬쩍 정말로 외출을 하려는 지를 물었다.
“이따 설거지 마치고 엄마랑 동네 한 바퀴 돌래? 답답하다며.”
“좋죠!”
집을 나선 은설이 전자제품샵이 있는 사거리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공원 쪽으로 가지, 왜······.”
“나온 김에 구경 좀 하려고요. 인터넷으로 찾아봐둔 게 있는데 정말 괜찮은 지 눈으로 한번 봐야 직성이 풀리겠어서요.”
어머니가 마지못하다는 듯 은설의 뒤를 따랐다.
생각보다 비싼 청소기 가격에 어머니는 새삼 놀란 눈치였다.
“인터넷으로 사면 이거보다 훨씬 싸요. 여기선 구경만 할 거니까 걱정 마세요.”
더 구경하기를 망설여하는 어머니의 귓전에 은설이 슬쩍 속삭였다.
그제야 마음을 놓은 어머니가 은설보다 더 적극적으로 여러 가지 청소기 모델들을 이것저것 둘러보기 시작했다.
집진기 통이 더 큰 것은 없는지, 먼지통을 물로 닦아 내도 괜찮은 지를 꼼꼼히 따져가며 구경하는 어머니를 흐뭇하게 바라보던 은설이 짧은 비명을 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