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 첫 이식

<기적을 부탁해> 리얼리즘 난임극복소설

by 이소정

“괜찮아. 충분히 이식할 수 있는 컨디션이야.”

현준이 은설보다 더 기쁜 목소리를 하며 진료를 했다.

“정말?”

“회복하느라 애썼어. 남편이 많이 도와줬나 보네.”

“아······. 남편은 출장을 갔어.”

“응? 어디 멀리? 길게?”

“응.”

“얼마나?”

“6개월. 이제 간 지 3주쯤 되었어.”

현준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왜? 이식할 때 남편 없으면 안 돼?”

“아니. 그런 건 아니고.”

“그럼 왜······.”

“곁에서 지지해 줄 사람이 없으면 많이 우울할 텐데.”

“아아. 이식하고 나면 친정 가서 지낼 거야.”

은설이 걱정 말라는 듯 현준에게 활짝 웃어 보였다.

“남편이 부재중이지만 이식은 진행할 생각인 거지? 그럼 스케줄을 너무 타이트하게 가지는 말자."

"응?"

"이번에 잘 되는 게 가장 좋긴 하지만, 혹시 안 되면 지금처럼 커디션을 최상으로 끌어올린 후에 다음 이식을 진행하잔 이야기야.”

“좋아 그건. 굳이 서두르고 싶진 않아, 나도. 어쨌거나 내년 2월까진 시간이 있으니까.”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병원에 온 것에 비해 냉동배아 이식의 과정은 생각보다 단출했다.

현준은 은설에게 아스피린과 함께 2주 치의 프로기놉을 처방했다.

호르몬제였지만 질정이 아닌 먹는 약이라는 사실만으로도 한결 마음이 가뿐해졌다.

“12일째 되는 날 배란 체크를 할 거야. 이식일은 3일 배양 배아인지, 5일 배양 배아인지에 따라 다르게 정해질 거고. 선택은 니가 하면 돼.”

“무얼 기준으로 선택해야 할지 모르겠어.”

은설이 털어놓는 고민이 꽤나 익숙한 듯 현준이 확실한 판단의 기준을 제시했다.

“만 35세 미만이니까 넌 5일 배양은 1개의 배아를, 3일 배양은 2개의 배아를 이식할 수 있어. “

“그럼 5일 배양 동결배아를 이식하는 걸로.”

현준이 의외의 선택이라는 듯 되물었다.

“너 쌍둥이 원하지 않았었어?”

“우연찮게 생기면 좋겠단 거였지. 일부러까지는 아니야. 겁나. 쌍둥이 키우는 거.”

“좋아. 그럼 5일 배양 동결배아 먼저 진행하는 걸로 하고, 3일 배양 배아들은 맨 나중으로 미뤄둡시다."

"고마워."

"마음 바뀌면 언제든지 이야기해. 녹이기 직전까진 네 의사를 반영해 줄 수 있으니까.”

현준이 본인의 뜻과 일치하는 선택을 한 은설의 결단이 흡족했는지 목소리의 톤을 명쾌하고 발랄하게 높였다.




“약상자에 복용방법 써 놨으니까 헷갈리진 않으실 거예요. 꼭꼭 잘 챙겨드시고 좋은 결과 보시길 바라요.”

1년 가까이 보고 있는 약사는 이제 은설을 보면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가워했다.

약사의 안내 말고도 은설의 가방 안에는 간호사가 정성껏 정리해 준 약물복용일정이 적힌 종이가 들어 있었다.

매일 1알씩 먹는 아스파린과 달리 프로기놉은 2알에서 시작한 복용량을 시술직전 4알까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증량을 해야 했다.

호르몬의 농도를 일정하게 유지시켜줘야 해서인지 첫 4일은 아침저녁으로 각 1알씩, 그다음 사일은 아침, 점심, 저녁 각 1알씩.

나머지 날들은 다시 아침저녁으로 각각 2알을 먹는 일정이었다.

“표시를 해가면서 먹어야겠는데.”

복잡한 복용법이 신경 쓰인 은설이 집으로 돌아가는 버슨 안에서 다시 한번 뚫어져라 복용법이 정리된 종이를 읽었다.

눈이 어지러웠고, 짜증이 솟구쳤다.

그러다가 문득 또 준수가 생각이 났고, 울컥 눈물이 나려 했다.

준수의 푹신한 등도, 비빌 맛이 나는 두툼한 다리도 아닌 그의 위로가 그리웠다.




채취에 비한다면 이식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시술실에 현준이 들어오고 이식을 위한 준비가 끝나고 나니 정작 시술을 하는 데에는 1~2분 남짓한 시간만이 필요할 뿐이었다.

“안방 제일 따뜻한 아랫목에 잘 모셔 뒀으니까 이제 잘 먹고 푹 쉬는 일만 하면 됩니다. 자 여기 보이죠? 여기에 이쁘고 잘생긴 녀석이 편안히 들어가 있어요.”

옛날이야기를 해주는 할아버지 같은 말투로 현준이 격려의 멘트를 했다.

“선생님, 갑자기 평소랑 너무 다른 말투로 격려를 하시니까. 웃음이 나잖아요. 시술받을 때 환자가 움직이면 안 되는 거 아녜요?”

나름의 격려였는데도 피식 새어 나오는 웃음을 감추지 못한 은설이 괜스레 현준의 탓을 했다.

“피식 웃는 정도는 괜찮아요. 웃겼어요? 이거 내 주문이에요. 존경하는 스승님께 배운."

"진짜요?"

"이 주문 덕분에 내 시험관시술 성공률이 높은 걸 수도 있으니, 웃겨도 참고 잘 새겨 들어요.”

현준의 목소리가 금세 다시 본래의 중후하고 멋스러운 음성으로 돌아왔다.

“오늘 어머니하고 같이 왔댔죠?”

“네.”

“일상적인 활동은 굳이 피하려고 하지 말고 다 하세요. 무리하지만 않으면 되니까. 간혹 너무 누워만 있다 오는 경우가 있어요. 친정에서 조리하는 경우에 특히 더."

"앗, 나 친정으로 가는데."

"환자처럼 쉬기만 하면 우울한 기분으로 2주를 보내게 될 수도 있으니, 가볍게 외출도 하면서 어머니하고 즐겁게 지내다 와요.”

시술 후엔 추가적인 진료가 없어서인지 현준이 시술이 진행되는 동안 은설에게 이런저런 당부를 늘어놓았다.

“네.”

현준의 당부가 진료의 한 과정이라기보다 자신에 대한 걱정 때문임을 느낀 은설이 현준과 마찬가지로 ‘꼭 당신의 말대로 하겠노라’며 진지하게 대답을 했다.




“미안해요, 엄마. 기다리느라 지루하셨죠?”

시술과정을 포함해 2시간 가까이 홀로 병원 로비에서 은설을 기다렸던 친정어머니에게 은설은 사과부터 했다.

“이 상황에서 ‘미안’은 안 어울리지. 엄마가 딸내미 시술받는 거 기다리는 게 뭐가 미안한 일이야.”

“그럼 고마워요, 엄마.”

“그게 훨씬 듣기 좋다. 나도 고마워. 힘든 거 하고 있는데도 한번 징징거리지도 않고 잘 견뎌줘서. 에그, 내 새끼. 안쓰러워. 얼른 가자, 집에.”

“밥 먹고 가요.”

“힘들게 무슨.”

“일상생활은 해도 된대요. 의사가 그랬어. 밥은 먹어야죠. 그래야 힘내서 잘 쉬지. 그리고 나 지금 엄청 배고파요.”

은설이 어머니의 팔짱을 꿰어 병원 밖으로 이끌었다.

이제는 시술의 성공을 기원하는 하나의 의식처럼 되어버린 추어탕을 먹으러 갔지만, 손님이 너무 많았다.

좀 기다렸다 먹자는 은설을 친정어머니가 만류했고, 결국 어머니의 뜻대로 은설은 추어탕 6인분을 포장했다.

“뭘 그렇게 많이 샀어? 무거워, 엄마 줘.”

어머니가 은설의 손에서 포장된 추어탕을 뺏어 들었다.

“아빠랑 엄마도 드시라고. 여기 맛있어요. 그리고 나도 두고두고 먹으려고.”

“택시 불렀다.”

“정말요? 어떻게? 콜택시 번호 알고 있었어요?”

“아니, 앱으로 불렀어.”

“엄마 그런 것도 할 줄 알아요?”

“요새 휴대전화 활용법 배우러 다녀. 다음주에는 인터넷뱅킹도 가르쳐준대.”

“오, 우리 엄마 세련됐네.”

은설의 칭찬에 쑥스런 웃음을 지으며 어머니가 자신의 한쪽 골반을 치켜들어 턱으로 바지 주머니 쪽을 가리켰다.

“여기서 전화 좀 꺼내 봐. 양손에 추어탕을 들었더니 손이 하나 모자라네.”

은설이 재빨리 어머니의 바짓주머니에 손을 넣어 휴대전화를 꺼내었고 마침 택시의 도착을 알리는 알람이 울렸다.

“어?! 저 택시인가 봐요. 가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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