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부탁해> 리얼리즘 난임극복소
“네? 또요?”
“저, 저는 처음인데요.”
은설의 반응에 놀란 의사가 주춤거리며 말을 더듬었다.
“아니, 선생님 말고요.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어서······.”
“그분도 연수 가셨었나요?”
“아뇨. 갑자기 병원을 그만두셨어요.”
“저는 그만두는 건 아니고, 1년 후에 돌아옵니다.”
무책임하지 않은 사람임을 강조하고 싶었는지 의사가 ‘1년 후’라는 복귀 시점에 힘을 주며 말했다.
“그치만 그때쯤 저는 돌잔치를 하고 있을 텐데요.”
“아, 네. 그건 그렇지요.”
“출산 앞두고 선생님이 바뀌신다니 마음이 좀 불안하네요.”
임신 초기부터 자궁경부의 길이가 길게 유지되지 않았던 은설은 응급상황에 대한 대처가 완비되어 있는 이산병원을 출산병원으로 택한 상태였다.
“현준이한테 말하면 괜찮은 의사를 소개해주지 않겠어?”
“아냐. 현준이 아는 사람이면 뭔가 창피해.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병원인데 아무렴 웬만하면 다 괜찮은 의사겠지. 그냥 갈래.”
이산병원에서 아기들을 낳을 생각이라면 현준에게 말해보자는 준수의 의견을 무시하고 택한 의사였다.
호들갑스럽게 겁을 주지는 않아서 좋지만 지나치리만치 걱정도 없어 보이는 의사에게 슬슬 믿음을 잃어가던 차이긴 했다.
그렇지만 출산을 두 달 앞두고 의사가 바뀔 것을 생각하니 ‘구관이 명관’이라는 속담만 머릿속에서 맴을 돌며 안 그래도 심란한 은설의 마음을 더욱 어지럽혔다.
“걱정하지 마세요. 후임으로 정말 믿을 만한 분이 오세요. 의료사고가 나도 끄떡 없······. 아니, 보상은 걱정 안 해도······. 암튼, 진짜 끗발 날리게 유명하신 선생님이에요."
"얼마나 유명한데요? TV에도 나오고 그런 분이에요?"
은설이 기대 반 걱정 반의 목소리로 물었다.
"네 그럼요. 뉴스에도 나오시고. 유명했던 분야가 좀 다르긴 하지만. 근데 의료사고나 범죄 뭐 그런 걸로 나온 건 아니니까 걱정 마세요."
점점 울상이 되어가는 은설의 표정을 본 의사가 급하게 말을 마무리 지었다.
"아무튼 이번엔 고위험산모전문으로 병원에서 다시 모신 아주 유명하신 선생님이 맡아주실 겁니다.”
“그래서 이번에 가면 바뀐 의사가 진료를 봐줄 거란 말이지?”
병원으로 가는 차 안에서 준수가 은설에게 새로운 의사에 대해 물었다.
“응. 고위험산모전문이래요. 나한텐 더 잘 된 걸 수도 있어.”
“은설 씨도 고위험산모지?”
“노산에, 쌍둥이에, 자궁경부길이 짧고, 단백뇨도 나오는 중이니까 그렇긴 하죠.”
“여태 입원 한 번 안 하고 잘 버텼는데 고위험산모라고 하니 왠지 억울하네.”
“그런 소리 말아요. 아직 한 달 반은 더 버텨야 한단 말이야. 자신만만한 소리 하다가 괜히 덧나.”
“예민하시긴. 새로 바뀐 의사한테도 자연분만 하고 싶다고 얘기를 해요.”
“요즘 신념이 흔들리고 있어요. 그건 좀 생각을 해봐야겠어.”
엄밀히 말하자면 신념이랄 것까지는 아니었다.
인생에 두 번은 없을 출산이니 ‘산고의 고통’이라는 것에 대한 호기심이 제일 컸다.
“미쳤어. 그걸 왜 부러 겪으려고 그러냐?”
친정어머니는 은설의 결심에 욕을 한마디 해주었다.
“그래. 그리 결심해 줘서 고맙데이. 그래도 의사가 수술하자카모 수술한닥케라.”
시어머니는 고맙다는 말과 함께 수술의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음을 밝히며 은설을 안심시키려 했다.
“이영혜 따라 하려고?”
수지는 쌍둥이를 자연분만 하겠다는 결심의 뒷배경을 좀 더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마흔 넘었는데도 자연분만을 했대잖아. 질 수 없지.”
“얼굴부터 이미 졌어, 우린. 쓸데없이 그런 걸로 이기려고 하지 말고 그냥 수술해, 기즈배야.”
“수술 후유증도 힘들다며. 일주일 내내 죽을 똥을 쌌다고 겁준 게 누군데.”
“나야 진통할 거 다 하고, 막판에 수술을 했으니까 그랬지. 나처럼 괜히 산통만 콤보로 겪지 말고 넌 그냥 초장부터 수술하겠다고 하라고.”
출산의 고통을 아직 기억하고 있는 수지는 은설을 극구 만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분만을 고집하던 은설의 결심이 출산이 임박하자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의사가 알아서 판단하겠죠. 자연분만 할 수 있을 거 같으면 하라 그러고, 안 될 거 같으면 수술하자 그러겠지. 고위험산모 전문이래잖아.”
확고한 결심이 서지 않은 상태여서인지 은설이 모든 결정의 키를 슬쩍 새로 만날 의사에게로 넘겼다.
“이은설이요. 8···”
은설 대신 접수를 한 준수가 신기한 걸 봤다는 듯 살짝 흥분된 목소리로 은설에게 말했다.
“새로 온 의사 이름이 뭔 줄 알아?”
“뭔데요?”
“류현준. 이 사람도 류현준이래. 우끼지? 우리는 류현준하고 인연이 깊나 봐.”
“뭐지? 약간 쎄한 기분이 드는데······.”
기가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도 '쎄한 기분'이 어긋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너! 니, 니가 여기 왜 앉아 있어?”
은설의 느낌이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어서 와. 내가 니 새로운 담당의야.”
현준은 이미 상황을 예상하고 있었던 듯했다.
“뭐야, 이렇게 될 줄 다 알고 있었으면 미리 연락이라도 좀 해주던가.”
은설이 씩씩거리며 진료실 이자에 털썩하고 주저앉았다.
“오랜만이에요, 형.”
“현준 씨도 좋아 보이네. 근데 진짜 어떻게 여기에 와 있는 거예요?”
“은설이 졸업하고 얼마 안 있다가 저도 이직을 했어요.”
미주와 다시 재결합 한 현준은 미주의 신사업팀에도 합류를 했다.
난임 끝에 임신을 한 산모 중 많은 이들이 고위험군에 속했고, 그들에 대한 케어까지도 해외 메디케어센터의 난임클리닉에서 담당하기로 한 모양이었다.
난임클리닉의 중추로서 역할을 하려면 운영의 전반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필요하다는 판단하에 결정한 일인 듯했다.
현준은 이산병원으로 복귀한 후 곧바로 고위험산모 분만과 관련한 해외 연수를 다녀왔다고 했다.
“태동도 그렇고, 초음파 결과도 그렇고 다 괜찮아. 체중 너무 늘지 않게만 신경 쓰면서 잘 먹고 잘 쉬다가 2주 뒤에 와.”
난임센터의 의사가 아닌 현준은 또 새로운 모습이었다.
조금 더 온화하고 다감해진 표정과 말투에 시종 당황한 기색이었던 은설의 얼굴도 누그러졌다.
“경부 길이는 어때?”
“2cm 약간 넘어.”
“그 정도면 너무 짧은 거 아냐? 나 그냥 쭉 누워 지낼까?”
“쌍태아 임신에서 경부 길이는 의미가 없어. 짧은 듯 보여도 끝까지 잘 버티는 경우도 많고, 길게 유지되고 있어서 안심하고 있었는데 하룻밤 사이에 입구까지 열리는 경우도 있어. 스트레스받지 말고 그냥 편히 지내.”
“운명이란 말이네.”
“응. 예측하기 힘든.”
은설이 ‘알겠다’며 짧게 대답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준수가 진료실의 미닫이 문을 여는 와중에, 은설은 한번 더 뒤를 돌아 현준에게 물었다.
“우리 애기들 니가 받아주는 거지?”
“응. 당직 아닌 날이라도 밤이든 새벽이든 나와서 받아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
“아······.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