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 에필로그(3)-지금, 터뜨리시는 건가요?

<기적을 부탁해> 리얼리즘 난임극복소설

by 이소정

곧이어 한 무리의 간호사와 의사가 은설의 옆에 붙었다.

“옆으로 누워 보세요. 무통주사를 맞으려면 척추 쪽으로 처치를 좀 해야 해요.”

“네? 무통주사가 바늘을 등에다가 꼽는 거였어요?”

“네에.”

의사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가벼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것들이! 무통주사 맞으라는 말만 하고 어떻게 맞는 건지는 설명을 안 해줬어!’

당한 기분이 들었다.

출산의 고통을 먼저 겪은 선배들에게 배신을 당한 것만 같아 열이 받으면서도 당장 등 뒤의 서늘한 주삿바늘의 기운에 몸이 떨렸다.

“아악.”

“이런 주사 처음 맞아보시는 거예요?”

“네, 니요.”

은설은 그제야 자궁 외 임신으로 수술을 했을 때 등에 바늘을 꽂았던 적이 있었음을 떠올렸다.

그때도 간호사가 무통주사라는 단어를 사용했던 것이 어렴풋이 기억났다.

“전엔 수술하고 일어나 보니 등에 바늘이 꽂혀 있는 상태였어서 꽂을 때 이렇게 아픈 건 줄은 몰랐어요.”

척추신경을 타고 전해지는 쎄한 바늘의 촉감에 은설의 등근육이 파르륵 떨리는 것을 보며 의사가 안쓰럽다는 듯 위로를 건넸다.

“그래도 조금 참고 이거 하시는 게 더 나아요. 간혹 무통주사 효과 못 보는 분들도 계시긴 한데, 대부분은 무통주사 덕에 한결 편안하게 진통시간 견디시더라고요.”

은설은 의사의 말이 귀에 들리지 않았다.

무통주사를 맞는 것만으로도 은설은 이미 자신의 영혼이 녹다운된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다가올 고통을 아직 알지 못했으므로.




출산 가방을 가지러 주차장에 내려갔던 준수가 부랴부랴 분만대기실로 들어왔다.

“가져왔어.”

“거기 둬요.”

“응.”

“나 척추에 주삿바늘 꽂았어.”

“응? 무슨 주사?”

수술도 하지 않는데 척추에 바늘을 꽂았다는 은설의 말에 놀란 준수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무통주사.”

“그거 팔에다가 맞는 거 아니었어?”

“이거 전에 맞아봤던 거야. 수술했을 때.”

“아, 그거구나. 그걸 맨 정신에 했다고? 아기 낳는 것보다 이게 더 아팠겠는데?”

“그러게. 헤헤.”

이때까지만 해도 은설은 간간이 웃음이 났다.

보호자용 의자에 앉아 멀뚱히 있는 준수에게 은설이 물었다.

“부모님들께는 연락드렸어?”

“아니.”

“드려야지.”

“벌써?”

“그래야 준비를 하시지. 아무리 늦어도 내일이면 아기들 나올 텐데 지금 말씀드려야 부산 부모님도 차편을 알아보실 거 아냐.”

“그런가?”

“그건 건 좀 알아서 하면 안 돼? 아야······. 아야······.”

“은설 씨, 왜 그래?”

“촉진제 맞았어요. 벌써 효과가 나타나나 봐. 저기요, 간호사 선생님?”

은설의 부름에 어린 간호사가 한달음에 달려왔다.

“산모님, 왜 그러세요? 어디 불편하세요?”

“저 지금이라도 관장하면 안 될까요? 화장실이 가고 싶어요.”

“원래 관장은 촉진제 맞기 전에 하는 건데요······. 아 어쩌나······.”

간호사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잠시 망설이는 듯하더니 곧바로 수간호사쯤 되는 나이 지긋한 간호사를 불러왔다.

다른 간호사들과는 달리 하얀 가운을 입고 있는 수간호사가 대자연의 어머니처럼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은설에게 다가왔다.

“변의가 느껴져서 그러지요?”

“네.”

“괜찮아요. 진짜로 가고 싶은 거 아니에요. 촉진제 때문에 몸이 출산할 준비를 하면서 아래쪽에 자극이 가서 화장실 가고 싶은 것 같은 느낌이 나는 거예요.”

“그치만 정말 느낌이······.”

“어젯밤에 시원하게 일 봤다고 했죠?”

“네.”

“그럼 걱정하고 있는 일은 안 일어나요. 괜찮아요. 그리고 지금은 감염의 위험 때문에라도 관장을 진행해 주기가 어려워요.”

“네······.”

감염의 위험이라는 말에 은설은 더 우기지 못하고 참기로 했다.

‘이건 똥이 아니야. 이건 찰떡이 머리야.’

마법의 주문이라도 되는 듯 같은 말을 반복하여 생각하니 화장실에 가고 싶은 느낌이 더 심해지지 않고 그 상태 그대로 유지가 되었다.




배는 견딜만한 아픔으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 옥죄었다 풀리기를 반복했다.

드라마에서 보던 식의 아픔이 아닌 것을 인지한 준수가 아침나절의 긴장이 풀렸는지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지금 자는 거야?”

“······. 아니야. 그냥 눈만 감고 있는 거야.”

“눈 떠.”

“넴.”

“몇 시야?

“12시 반.”

“점심 먹고 와요.”

“아냐, 괜찮아. 안 배고파.”

“먹고 오라고 할 때 먹고 와. 괜히 이따 잠깐 요기만 하고 온댔다가 그 사이 애기들 나오면 나 진짜 가만 안 둘 거야, 준수 씨.”

“진짜 안 먹고 싶은데. 은설 씨는 아무것도 못 먹잖아.”

“안 땡겨도 뱃속에 넣어 놔. 기운 없어서 나보다 먼저 쓰러지지 말고."

"에이. 은설 씨만 여기 두고 내가 어떻게 혼자 밥을 먹고 오나, 이 사람아."

"울 아빠가 점심 안 먹고 버티다가 결국 못 견디고 잠깐 짜장면 먹으러 간 사이에 나 나왔대. 기억도 안나는 태어날 때 얘긴데도 아직까지 섭섭해, 아빠한테.”

“알았어요. 후딱 먹고 올게요.”

“맛있는 거 먹고 와요. 내 몫까지. 돈까스 먹고 와. 나 어제 그거 먹고 싶었어.”

조금 전까지 성질내듯 이야기하던 은설이 별안간 농을 섞어가면서 준수를 배웅했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은설의 상태에 정신을 못 차리고 당황하던 준수도 이때는 보조를 맞춰 은설에게 화답을 했다.

“고치돈으로 먹고 올게요. 은설 씨가 제일 좋아하는 걸로.”

“오케이. 얼른 먹고 와요. 혼자 있기 싫어요.”

“알았어.”




준수가 은설을 돌아보며 종종걸음으로 분만대기실을 나가고 은설은 고요해진 분만대기실에 홀로 누워 아주 잠시 명상을 했다.

“내진 좀 할게요.”

“네.”

어린 의사의 손가락이 속을 휘젓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갸우뚱 고갯짓을 하더니 금방 어디론가 총총 사라졌다가 몇 분 후 다시 나타나

“내진 한번 더 할게요.”

하며 이번엔 은설을 의아하게 했다.

푹. 팍. 푹. 팍.

갈고리 모양으로 꺾어진 손가락이 태낭을 잡아 뜯는 장면이 은설의 시신경을 타고 전달되는 듯했다.

마구잡이. 무자비. 가혹. 인권유린 따위의 단어가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을 누르고 은설이 의사에게 물었다.

“지금 양수 터뜨리시나요?”

푹.

거의 동시에 뜨뜻한 물줄기가 은설의 아래에서 흘렀고, 생각처럼 찢기지 않은 태반 때문에 고생을 한 의사가 삐질삐질 흐른 땀도 닦지도 못하고 은설의 눈치를 살폈다.

“네. 터뜨려야 촉진이 더 빨리 되어서요.”

“말씀을 좀 해주시지······.”

과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친절한 분만실의 간호사들과는 달리 의사들은 냉정했다.

‘현준이도 이러려나······.’

종합병원식의 처치인지 출산과정의 거의 모든 단계가 은설에게 사전 예고 없이 진행이 되었고, 은설은 그때마다 불안하고 답답했다.

“걸어서 이동하실게요.”

“저 지금 분만실로 가는 건가요?”

“네.”

팍.

은설이 몸을 일으켜 침대 끝에 걸터앉자 좀 전의 의사가 터뜨리지 못했던 위쪽의 쑥떡이 양수가 터져 흘렀다.

“어머, 어머. 어떡해! 바닥에 다 흘렀어요.”

침대 아래로 흐르는 연노랑의 양수를 보며 은설이 당황하자 간호사들이 얼른 은설을 안심시켰다.

“괜찮아요. 괜찮아. 우리가 바로 다 치워요. 걱정 안 해도 돼요.”

은설이 느끼고 있는 뭔지 모를 부끄러움을 간호사들을 이미 알고 있었다.

친정어머니와 연배가 비슷해 보이는 수간호사가 시종 ‘괜찮아요. 우리가 바로바로 다 깨끗하게 해 놔요.’를 이야기해 주며 아픈 아이를 어르고 달래듯 은설을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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