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부탁해> 리얼리즘 난임극복소설
시간은 오후 2시를 지나고 있었다.
식사를 마친 준수가 분만대기실에서 사라진 은설을 찾아 부랴부랴 분만실로 들어왔다.
“왜 이렇게 오래 먹었어?”
준수가 없는 사이 홀로 무수히 많은 일들을 겪은 은설이 우는 소리를 섞어 준수를 혼냈다.
“아버지랑 엄마 차표 좀 알아봐 드리느라 밖에 있었어. 통화 계속해야 돼 가지고.”
“우리 엄마, 아빠는?”
“오고 계시대. 괜찮아?”
“배가 너무 아파. 뱃가죽이 아스팔트에 다 갈려버린 것 같은 기분이야. 계속 똥도 마렵고 허리에는 누가 자꾸 전기 충격기를 갖다 대는 거 같아.”
은설이 부러 준수가 충분히 상상할 수 있을 만한 것들을 예로 들어 자신의 진통 상황을 중계했다.
어릴 적 가벼운 감전사고 경험이 있는 준수가 뭔지 알 것만 같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얼굴 표정을 찌그렸다.
“무통주사 맞았다며. 그거 해도 그래?”
“아직 주사 안 놨어. 바늘만 꽂혀 있는 거야. 그거 자궁문이 3cm는 열려야 놔준대.”
“지금 얼마나 열렸는데?”
“몰라요.”
의사가 수시로 들어와 은설의 자궁문을 체크했지만 속시원히 먼저 상태를 말해주지는 않았다.
“지금 몇 센티예요?”
은설은 의사를 만날 때마다 물었다.
“2센티쯤이요.”
“2.5 약간 안 되는 거 같아요.”
“2.5쯤이요.”
“아직 3까지는 아니라······.”
자궁문은 더디게 열렸고, 은설은 잠시도 쉬지 않고 몰아치는 진통에 점점 지쳐갔다.
“3cm 되겠는데요. 선생님께 말씀드릴게요.”
어린 의사가 말하는 선생님은 아마도 현준을 뜻하는 듯했다.
진료시간인 줄은 알고 있지만, 분만실에 코빼기도 비추지 않는 현준에게 은설은 은근히 화가 났다.
“담당의면 좀 들여다봐야 하는 거 아냐?”
“바쁜 시간이잖아. 알면서······.”
괜한 은설의 화에 준수가 나서서 현준을 감싸는 말을 했다.
“내 편들어.”
“넴.”
괜한 불씨를 준수에게 튀기려는 찰나에 밝은 표정으로 분만실에 재입성한 어린 의사가 은설에게 무통주사를 투여할 수 있다는 소식을 알렸다.
“이제 천국으로 갈 수 있나요, 저?”
은설의 물음에 소녀처럼 깔깔거리는 웃음을 잠깐 짓고는 의사가 예의 냉철한 모습으로 돌아와 찬찬히 무통주사 사용법을 은설에게 알렸다.
“요 버튼 누르면 주사액이 나와요. 참기 힘들 때마다 한 번씩 누르면서 산모님 스스로 조절하시는 거고요. 할 수 있으시죠?”
“네.”
“너무 자주 누르면 오히려 힘들 수 있으니까 적당히 조절해서 누르셔야 해요.”
“아껴 누를 거예요.”
무통주사의 효과는 실로 대단했다.
한번 누르고 잠시 기다리면 고통의 크기가 10분의 1로 줄어드는 듯했다.
“아주 없진 않지만 견딜만한 수준으로 떨어졌어요. 그냥 누가 실수로 한 방 때린 거 맞았을 때 느끼는 고통? 뭐 그 정도?”
무통주사의 효과를 묻는 준수에게 은설은 한 번 더 준수가 알법한 비유를 들어 설명했다.
“나 무통 효과 잘 받는 체질인가 봐요. 영선이는 맞으나 안 맞으나 그게 그거여서 셋째 때는 안 맞았다고 그랬거든.”
무통주사가 몸속에 들어오고 나서부턴 내진도 힘들지가 않았다.
아주 미미하게 느낌이 났지만 내진을 받는 쪽의 통증은 전무했다.
고통이 덜하니 창피함도 덜어지는 듯했고, 수시로 들어와 은설의 상태를 체크하는 의사를 보는 것도 덜 민망했다.
다만 마음에 걸리는 것은 내진을 할 때마다 갸웃거리는 의사의 고갯짓뿐이었다.
“왜 그러세요?”
“아니요, 그게······. 아직도 자궁문이 3cm 여서요. 진행이 좀 늦네요.”
“그럼, 저 언제 낳나요?”
은설의 시선이 반사적으로 시계를 향했다.
오후 4시였고, 10시쯤 분만대기실로 들어와 촉진제를 맞았으니 벌써 6시간이 흐른 셈이었다.
“그건 저희도 몰라요. 이러다 갑자기 화악~ 열려서 급하게 아기 받는 경우도 있고, 내일까지 진통하실 수도 있고요. 아무리 늦어도 내일은 무조건 아기 얼굴 보실 거예요.”
“하하, 내일이라니요. 오늘 낳을 거예요, 저.”
무통주사가 자신에게 다시 웃을 여유를 준 것에 감사하며 은설이 의사에게 슬쩍 농을 던졌다.
은설은 애초의 다짐대로 아끼고 또 아껴가며 천천히 주사버튼을 눌렀다.
한번 누른 후 약효가 퍼지길 기다렸다가 버틸 만큼 버티고 다시 진통이 견디기 힘들 만큼 강해지면 한 번 더 누르는 식이었다.
“아직 남았네요?”
은설의 상태를 들여다보는 간호사와 의사가 남은 무통주사액을 보며 놀라워했다.
“견딜만해서요.”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은설과 달리 간호사와 의사의 표정은 그다지 여유롭지 않았다.
“흐음.”
“왜 그러세요?”
“아직도 3cm여서요. 진행이 많이 느리네요.”
급격히 어두워지는 은설의 표정을 보며 간호사가 위로했다.
“이러다 한 시간 만에 확 열리는 경우 많으니까 너무 걱정 마세요.”
현준의 얼굴을 다시 본 것은 6시가 넘어서였다.
지친 표정의 현준은 마지막 외래 환자까지 보고 난 후 곧바로 분만실로 달려온 듯했다.
“참을만하구나?”
“장난해?”
까칠한 은설의 반응에 현준이 슬쩍 말을 돌렸다.
“진행이 빠른 편은 아니야. 촉진제가 아직 들어가고 있는 중이니까 좀 더 기다려 봐야 할 거 같아. 고생이 길어지네.”
“초산이라 그런가? 그냥 수술할 걸 그랬어.”
은설은 수술을 할지 자연분만을 할지 확실히 못을 박을 새도 없이 분만실로 들어왔던 것을 떠올렸다.
현준에게 떠밀려 분만실로 밀어 넣어지다시피 했던 것이 못내 억울해선지 현준에게 자꾸만 뾰루퉁해지고 싶었다.
“이미 자연적으로 진통이 시작된 상태였잖아. 아기들 위치도 좋고. 수술하긴 아까워.”
“나는 안 아까워.”
“당직 바꿨어. 아기들 내가 받아준다는 약속 지키려고. 다른 걱정은 하지 말고 잘 견뎠다가 이따 쑴풍 쑴풍 잘 낳아보자.”
현준의 뒤에서 어린 의사가 낮게 시간이 다 되었다는 말을 하는 것이 들렸다.
그리고 곧 은설도 아는 근처의 일식당 이름이 들려왔다.
어린 의사를 툭툭 치며 은설의 앞에서 민망해하는 현준에게 은설이 눈치껏 물었다.
“6시 넘었지? 너는 밥 먹으러 언제 가?”
“이제 가야지.”
“초산이지만 당장 1~2시간 안에는 애들이 안 나올 거라는 건 느낌으로 알겠어."
“그럼 저녁 좀 먹고 올게. 오래 안 걸려. 당직이잖아.”
회식이 있는 듯했지만 당직을 바꾼 현준은 1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은설의 앞에 다시 나타났다.
그리고 수시로 은설의 상태를 체크하고 있던 어린 의사에게 이런저런 것들을 물었다.
“은설아, 아직 더 기다려야 해.”
“내 자궁인데도 내 맘대로 안되니까 짜증 나.”
“드물지만 종종 있는 경우야. 너무 걱정하지 마. 촉진제 반응이 느린 산모들도 보통은 12시간 안에 출산을 하니까 오늘 밤엔 아기들 얼굴 볼 수 있을 거야."
"오늘 밤에 나오기는 나오는 거지?"
현준이 살짝 말을 바꿨다.
"아, 양수가 터진 후로 24시간 안에 출산하는 것이 원칙이니 늦어도 내일 오후 1시 전까지는 무조건 아기들 만나는 거야. 이건 내가 장담할게.”
“으응.”
“그래서 말인데······.”
“응?”
“다른 산모 먼저 좀 아기 받아주고 올게.”
“아! 응!”
현준이 총총히 은설의 분만실을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괴성이 들려왔다.
“어쩐지 아까부터 바깥에서 계속 소리가 난다 했어.”
“은설 씨보다 늦게 들어온 사람 아니야?”
준수가 부러운 듯 물었다.
“응.”
현준이 다른 산모의 아이를 받는 사이 어린 의사가 다시 들어왔다.
극한의 상황을 종일 겪으며 수시로 들여다본 얼굴이라 그런지 금방 익숙하고 편안한 사이가 된 어린 의사에게 은설이 물었다.
“저분은 초산 아닌가 봐요. 저보다 한참 늦게 들어오신 거 같은데 벌써 낳으시네요.”
“저분도 초산이에요.”
“아······.”
부러움과 걱정이 뒤섞인 은설의 표정을 읽은 의사가 은설을 위로했다.
“저분이 좀 빠른 거예요. 이미 많이 진행이 된 상태에서 오신 거기도 하고요.”
곧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본 것 같은 괴물의 포효소리가 들려왔다.
“저도 곧 저렇게 되겠죠?”
은설이 자신의 미래를 미리 들여다본 사람처럼 물었다.
“저 산모님도 원래 되게 교양 있는 분이신데······.”
의사가 말을 아꼈다.
약간의 텀을 두고 다시 짐승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고, 은설이 얕은 지식을 동원하여 의사에게 물었다.
“후산할 때도 저렇게 아파요?”
“아니요, 그게 아니라. 저분 지금 회음부 꿰매고 계신 건데요. 아기 머리가 커서 두부살처럼 말랑한 질벽 양쪽을 찢으면서 내려왔어요."
경험이 적은 어린 의사가 양손으로 11자를 그려가며 출산을 앞둔 산모에게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설명을 자세히 이어갔다.
"거기가 잘 꿰매지지도 않기도 하고 또 엄청 통증이······.”
점점 사색이 되어가는 은설을 상태를 파악한 의사가 얼른 말을 바꾸었다.
“산모들마다 질벽 상태가 달라요. 저분은 유독 두부처럼 말랑한 분이셨고 보통 그런 일은 잘 일어나지 않아요."
고통스러운 상상에 빠진 은설의 눈이 점점 흐릿하게 초점을 잃어갔고, 놀란 의사가 얼른 은설의 손을 살짝 흔들었다.
"근데 이은설 님은 쌍둥이라 아기들이 작아서 저런 일은 안 일어나요.”
“지금 수술한다고 해도 되나요?”
“예? 아, 선생님 나오시면 여쭤는 볼게요.”
어린 의사가 자리를 피하듯 총총히 분만실을 나가고, 10시가 다 되어갈 즈음 현준이 돌아왔다.
“안색이 좋네.”
“아직은 견딜만해서 그런가? 아니야. 안 좋아. 아무래도 수술해야 할 거 같아.”
빠르게 내진을 마친 현준이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괜찮은데? 아직도 자궁문이 3cm 정도밖에 안 열려서 그럴 거야.”
“아직도?”
“응. 기왕 이렇게 된 거 내일 낳자. 내일 낳고 싶어 했잖아.”
은설은 오전 진료실에서 준수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사주명리학을 좋아하는 아버지가 제왕절개를 하게 되거든 꼭 피하라며 알려준 날이 하필 오늘이라며 준수가 우스갯소리를 했었다.
“그래도 돼?”
“현재 상태로 봐선 충분히. 촉진제 투여를 멈출 거야. 너무 많이 맞는 것도 좋지 않으니까. 자연스럽게 출산 진통이 걸려서 이른 새벽에 낳게 될 수도 있고."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
"그렇지 않으면 좀 쉬었다가 내일 새벽 5시에 촉진제 투여 재개해서 출산 시도하는 걸로. 그럼 늦어도 6시엔 아기들 안겠지.”
“으응.”
현준이 준수 쪽으로 고개를 돌려 말했다.
“11시 전까지 은설이 뭐 좀 먹이세요. 너무 많이는 말고. 지치지 않고 힘낼 수 있을 정도로만.”
현준의 말대로 준수가 임신기간 내내 은설이 좋아했던 카스텔라를 사 왔다.
12시간 만에 입속으로 물과 음식이 들어가니 은설은 한결 살 것 같았다.
촉진제 투여를 끊은 후로 무통주사의 효과를 뚫고 찾아오던 진통의 아픔도 잦아들었다.
“드라마에서 보던 거랑 너무 다르지 않아?”
아이러니한 평온 속에서 은설이 준수에게 물었고, 준수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신랑 이빨은 몽땅 다 들떠버렸네요.”
은설의 눈치를 보며 망설이다 내뱉은 응석이었다.
“애는 내가 낳는데 준수 씨가 왜?”
“그러게······.”
한 시간가량의 꿀 같은 휴식을 마친 은설이 오지 않는 잠을 청했다.
잔 듯 못 잔 듯 비몽사몽 간의 시간이 흐르고 새벽 5시가 되자, 어린 의사가 은설을 깨우러 들어왔다.
“이제 낳아 볼까요?”
한잠 자고 왔는지 촉진제가 달린 링거 밸브를 여는 의사의 손에 의욕이 넘쳐 보였다.
만날 때마다 당연한 통과 의례처럼 내진이 이루어졌고, 의사의 표정이 다시 심란해졌다.
“아직도 3cm네요.”
“촉진제 끊은 후로 조금도 안 열린 거예요?”
은설이 울상이 되어 물었다.
“네. 다시 촉진제 들어가고 있으니까 이제 화악! 열릴 거예요. 걱정 마세요.”
의사의 말대로 열리긴 열렸지만 1시간에 고작 1cm 정도씩만 열릴 정도로 은설의 자궁문 확장은 진행이 느렸다.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는지 6시부터 분만실을 들락날락거리던 현준이 회진 시간을 기해서 특단의 조치를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무통 제거하세요. 촉진제 최대로 올리고.”
현준을 포함한 한 무리의 의사들이 우르르 몰려 나가고 현준의 지시대로 어린 의사가 촉진제 밸브로 최대로 풀며 안쓰러운 목소리로 은설에게 속삭였다.
“이제 단 한 번도 상상해 보지 못한 수준의 고통이 올 거예요. 힘내세요.”
의사의 말과 달리 30여분 즈음이 지나도 참을만한 고통만이 이어졌다.
준수와 함께 밤새 분만실에서 대기하고 있던 친정어머니에게 은설이 물었다.
“나 진통 되게 잘 참나 봐요. 상상도 하지 못한 고통이랬는데, 촉진제 올리고 무통도 끊었는데도 견딜 만 한데?”
칭찬을 바라던 은설의 기대와 달리 친정어머니는 혀를 끌끌 차며 도리질을 했다.
“아직 멀었어. 눈물이 줄줄 나게 아파야 애기가 나오는 거야.”
“진짜요? 눈물이 날 정도로 아프진······.”
그때였다.
“아프진···우워어어어억!”
은설이 터져 나오는 눈물과 함께 뱃속에서부터 끌어올려진 짐승의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