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부탁해> 리얼리즘 난임극복소설
“의사 불러줘!”
은설의 포효에 준수가 달려 나갔고, 어린 의사가 들어와 은설의 자궁문을 살폈다.
“이제 확확 열리기 시작하네요. 근데 아직 멀었어요. 조금 더 기다려야 해요.”
은설의 의지와 상관없이 가슴부터 허벅지까지의 모든 근육들이 일정한 주기에 맞춰 제멋대로 힘을 주어댔다.
“우워어어어어억!”
[콧구멍에서 수박 나오는 기분이야.]
[눈에 안 보이는 트럭이 내 허리 위를 지나갔지.]
[변비 있어? 걸려서 들어가지도 나오지도 않은 경험 말이야. 그거 곱하기 백만 정도 해.]
그간 친구들이 들여줬던 출산의 고통에 대한 묘사들이 은설의 머릿속을 스쳤다.
‘아니다. 이건, 이건! 능지처참의 고통과 맞먹는 것이야!’
팔과 다리를 각각 두 마리의 말에 묶고 반대방향을 향해 달리도록 채찍질을 하는 집행관의 환영이 보이는 듯했다.
때론 빨래처럼 쥐어짜지는 몸통의 근육들에 의해 척추뼈가 아작이 날 것만 같은 느낌도 들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 어린 의사가 한 무리의 간호사와 의사들을 몰고 분만실로 들어왔다.
일사불란하게 분만침대를 변신시키고 은설이 오랜만에 실험실의 개구리와 같은 자세를 취했다.
“저, 혹시 이제 낳나요?”
“네.”
“말을 좀······, 해주고······.”
“자 이제 저희가 힘주라고 하면 힘주시는 거예요.”
“아직 마음의 준비가······.”
“힘주세요!”
말로는 은설더러 힘을 주라고 하고, 간호사와 의사들이 힘을 줄 수밖에 없게끔 은설을 유도했다.
갑작스럽게 자신의 몸을 덮쳐오는 타인의 힘에 불편감을 느낀 은설이 몸부림을 쳤다.
“아니, 아직이요. 아직. 아니라니까. 이거 놔!!!”
당황한 은설에게서 괴력이 뿜어져 나왔고, 허공에 내지른 발길질에 의사 하나가 나가떨어졌다.
“아악. 미안해요. 아, 반말해서 미안해요. 그래도 이거는 놔. 엉엉.”
은설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
패닉 상태에 빠진 은설을 쉬게 두고 의사와 간호사들이 일단은 분만실을 나갔다.
“잠깐 쉬세요. 근데 지금은 힘을 주면 안 돼요.”
“네헤.”
라고 대답은 했지만 은설의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준수만 다시 입장한 분만실에서 준수의 손을 꼬옥 붙잡고 은설이 최대한 힘을 조절하여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산통에 맞춰 힘을 줬다 풀기를 반복했다.
“은설 씨! 은설 씨! 괜찮아?”
“응. 왜?”
“힘주다 갑자기 평온한 얼굴이 되고, 힘주다 갑자기 평온한 얼굴이 되고 그래서.”
“기억 안 나.”
준수가 간호사를 불렀다.
“애기 엄마가 자꾸 혼수상태가 되는 거 같아요.”
얼굴이 잿빛이 된 준수가 간호사에게 은설의 상태를 말했고, 은설의 상태를 가만히 살피던 간호사가 준수를 안심시켰다.
“밤새 제대로 못 주무셔서 순간적으로 잠에 빠졌다가 산통 때문에 다시 깨고 그러시는 거예요. 그래도 선생님들 다시 모셔 올게요.”
어린 의사보다 조금 더 연차가 있어 보이고 말투가 꽤나 단호한 의사가 들어왔다.
“다시 시작해 볼게요.”
좀 전의 시도로 마음의 준비가 어느 정도 된 은설이 이번에는 고분고분 의사의 지시에 따라 제법 힘주기 답게 힘을 주었다.
의사의 말실수가 있기 전까지.
“애기가 좀 걸린 거 같은데?”
은설이 듣지 말았어야 할 말을 듣고 말았다.
[내 동생도 얼마 전에 아들 낳았어. 진통할 거 다 하고 애기 머리가 걸려서 수술했잖아. 수술했잖아. 수술했잖아. 수술했잖아······.]
영선의 말이 떠올랐다.
“수술시켜 주세요!”
“네? 아니 잘하고 계신데 왜.”
“머리 걸렸다면서요! 수술해 주세요!! 애기 잘못되면 어떡해요.”
“애기 머리 살짝 돌려주면 돼요. 류현준 선생님이 아기 머리 돌려 빼내는 거 진짜 잘하세요. 걱정 마시고······.”
“남편 불러주세요!”
은설의 성화에 본격적인 출산이 시작되면서 밖으로 나가 있던 준수가 불려 들어왔다.
“수술시켜줘. 엉엉.”
탯줄 자를 준비인지 하얀 모자와 가운을 요리사처럼 입고 있던 준수가 멀뚱히 은설을 바라보다가 은설의 눈을 외면한 채 도로 분만실 밖으로 나갔다.
“수술시켜 달라고. 나쁜 놈아!”
준수와 바통 터치를 하듯 현준이 들어왔다.
아는 얼굴이 보이자 은설은 구세주를 만난 것처럼 현준이 반가웠고, 저절로 존댓말이 나왔다.
“아악, 선생님! 선생님!”
허공에 손을 내젓는 은설의 손을 현준이 덥석 잡아주었다.
“어, 왜, 왜!”
“제가, 제가. 정신줄을. 놓은 거 같아요.”
“괜찮아. 진정해. 진정해.”
현준의 손을 잡고서야 은설의 포효가 잦아들었다.
현준이 변신주문을 외운 후의 마법전사처럼 전혀 다른 얼굴이 되어 은설에게 아주 의사다운 목소리와 말투로 이야기를 했다.
“쌍둥이 엄마. 지금 수술 들어가면 준비만 40분 정도 걸려요. 그런데 내가 40분 안에 애기 둘 다 낳게 해 줄 수 있어. 할 수 있죠?”
“흐흐흐흑. 네에.”
현준이 곧바로 아기가 있는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마취로 피부가 얼얼한 와중에도 아래쪽에서 둔탁한 손의 움직임이 느껴졌고, 곧 다시 현준이 무어라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알 수 없는 기계 소리가 들리고 , 아마도 압력을 높이라는 듯한 현준의 지시가 이어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현준이 은설의 안도를 이끌어낼 소식을 전했다.
“아기 머리 나왔어요. 자, 이제 내가 힘주라고 할 때 힘 팍팍 주면 돼요. 지금!”
조금 전 10여분의 시간 동안,
분만실 안에서 가장 노력을 안 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분만의 당사자인 자기 자신이라는 생각이
은설의 머릿속에 스쳤다.
뱃속에서 고생하고 있을 아기들을 생각하니
죄책감이 밀려왔고,
잠재된 능력이 깨어난 용사처럼
은설이 드디어 힘을 주기 시작했다.
눈에 실핏줄이 터져 멍이 오르도록 힘을 주는 은설의 귓전에 간호사가 계속 주의 사항을 읊었다.
“산모님, 어금니에는 힘주면 안 돼요. 이 다 나가요.”
"흐으으읍!"
주르륵하며 아기가 빠져나가는 느낌이 났다.
“이쁜 공주 나왔어요. 잘했어! 쌍둥이 엄마.”
현준의 칭찬이 귀에 들릴 리 만무한 은설이 본능의 지배를 받고 있는 듯한 목소리를 내며 소리쳤다.
“아악, 하나 더 있어!! 뱃속에! 뱃속에 하나 더 있어!!!”
포효 후 다시 정신이 혼미해지려는 은설에게 현준이 냉철한 목소리로 말했다.
“쌍둥이엄마. 10분 안에 둘째 나와야 해요. 아무리 길어져도 둘째 나오기까지 30분은 넘기지 말아야 해. 정신 차려요.”
현준의 말에 은설이 번쩍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곧 첫째의 탄생과 함께 잠시 잦아들었던 산고가 다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