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2021년의 마지막 주가 되었습니다. 이제 며칠이 지나고 나면 2021년은 과거로 흘러가버리고 우리는 2022년을 살아가게 됩니다. 연말이 되면 뭔가 감성적이 되면서 1년 동안의 일들이 막 생각나고 하네요. 그래서 오늘은 2021년의 예능 콘텐츠 트렌드를 결산하는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이 글은 저의 유튜브 채널 <고찬수TV>에 영상으로 올려져 있기도 합니다. 다들 예능 콘텐츠에는 관심들이 많으시니 어찌 보면 상당히 흥미로운 주제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네요. 콘텐츠 제작에 참여하고 있는 프로듀서로서 과연 2021년의 예능 콘텐츠에는 어떤 트렌드들이 있었을까 하고 곰곰이 생각을 더듬어서 다섯 가지의 트렌드로 정리 해보았습니다.
2021 예능 콘텐츠 트렌드 첫 번째로 제가 선정한 것은 바로 ‘1인자 유재석’입니다.
다섯 개의 트렌드 중 이것을 먼저 꼽은 이유는 이것의 중요도가 높아서가 아니라 제일 재미있는 현상이고 많은 분들이 흥미롭게 생각하실 것 같아서입니다.
얼마 전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유재석과 많은 프로그램을 오랫동안 함께했던 연예인 ‘하하’가 아주 재미있는 애기를 했습니다. ‘무한도전’을 같이 할 때 ‘그랬구나’라는 게임에서 하하가 유재석에게 “너 친구가 없지?”라고 말을 했다가 하하 하차 청원 운동까지 생기면서 문제가 크게 생겼다고 합니다. 이 에피소드를 말하면서 하하가 한 말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유재석에게는 대한민국이 친구라는 것을 깜빡했다는 말이었습니다. 그 정도로 유재석은 정말 많은 분들이 호감을 가지고 있는 연예인입니다. 그리고 2021년 한 해 유재석은 다시 한 번 더 1인자라는 것을 확인시켜주었습니다.
유재석 1인의 무한도전이라고 할 수 있는 ‘놀면 뭐하니?’와 새로운 형식과 느낌의 토크쇼 ‘유퀴즈 온 더 블록’으로 다른 인기 진행자들과의 격차를 더욱 벌리며 예능 콘텐츠 최고의 1인자 모습을 확실하게 보여준 한 해였습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한결같은 인기를 누리는 그의 비결은 성실함과 인간미 그리고 그가 선사하는 웃음이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으로 생각됩니다.
2021년 예능 콘텐츠 트렌드, 두 번째 흐름은 ‘트로트 열풍’입니다
트로트 열풍은 이미 2020년 미스 트롯 송가인의 등장으로 시작되었지만, 2021년 더욱 견고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동안 일부 계층만의 콘텐츠로 받아들여지고 있던 트로트 음악의 인기는 한국 콘텐츠 시장의 극적인 변화를 보여주는 현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콘텐츠 소비가 주로 40대 이하의 젊은 세대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믿던 기존의 생각들이 완전히 무너진 것이죠. 트로트 가수들의 음악에 열광하며 팬으로서의 열성적인 활동도 보여준 시니어 세대들의 모습은 흡사 아이돌 스타에 열광하는 10대 팬들을 연상시킬 정도가 되었습니다. 특히 ‘임영웅’이라는 최고의 스타가 등장하면서 2021년의 예능 콘텐츠 시장은 완전히 다른 양상을 보여주게 되었습니다. 미스터 트롯의 6인방 ‘임영웅, 영탁, 이찬원, 정동원, 장민호, 김희재’가 출연하는 방송 콘텐츠가 시청자들의 큰 호응을 얻으며 시청률 판도를 완전히 뒤집어 놓았습니다. 이들이 출연하는 콘텐츠들이 기존의 평균 시청률을 크게 상회하는 좋은 성적을 내면서, 트로트 가수들이 방송계의 블루칩으로 인정받는, 기존에 보지 못했던 모습들을 연출해냈습니다. 엄청난 팬덤을 가진 트로트 스타의 등장은 과거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현상이었습니다.
지금의 시니어 세대들은 과거와는 다릅니다. 경제 성장기에 젊은 시절을 보낸 그들은 상당한 재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소비 성향도 높고, 어릴적부터 음악을 듣고 즐겼으며 영화와 공연 등의 문화생활을 자연스럽게 즐기던 세대입니다. 문화 콘텐츠 소비가 일상생활이 되어 있는 그들은 나이가 들어서도 자연스럽게 문화를 향유하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고 소비 여력까지 있는 것이죠. 그들에게는 본인들이 열광할 수 있는 스타가 필요했던 것이고, 여기에 잘 맞아떨어지면서 미스 트롯이나 미스터 트롯이 대박난 것입니다.
2021년 예능 콘텐츠 트렌드, 세 번째는 ‘강한 여성 캐릭터들의 등장’입니다.
2021년 후반 들어 이런 모습은 더 강해지는 듯 보입니다. 과거 주로 남성 위주의 출연자들이 많이 등장했던 예능 콘텐츠에 최근 들어 특히 개성 강한 이미지의 주도적인 여성 캐릭터들이 예능 콘텐츠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특히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라는 프로그램의 엄청난 성공은 콘텐츠 소비자들이 얼마나 달라지고 있는가를 확실하게 느끼게 합니다. 콘텐츠를 제작하는 사람들의 생각보다도 훨씬 빠른 속도로 우리의 콘텐츠 소비자들이 변하고 있었다는 것을 제대로 알게 된 것입니다. 그동안은 가수의 뒤에서 가려져 있던 백댄서들을 프로그램의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시도가 시청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으며 출연자들 모두를 스타로 만든 이 프로그램은 콘텐츠 소비자들의 변화를 잘 캐치한 멋진 기획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올해 가장 크게 성공한 방송 콘텐츠로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를 당연히 선정해야할 정도로 이 프로그램에 대한 소비자들의 호응은 대단했습니다. 특히 젊은 여성들이 열광하는 콘텐츠가 되면서 광고주들에게도 큰 사랑을 받았죠. 또한 최근 편집 순서를 바꾼 행위로 비난을 받고 있는 <골 때리는 그녀들>도 2021년 강한 여성 캐릭터에 대한 시청자들의 호감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겠습니다. 기존의 스포츠 콘텐츠가 보여주지 못했던 새로운 감동과 재미를 연출해낸 이 프로그램 역시 강한 여성 캐릭터에 대한 시청자들의 호감을 확실히 보여주었습니다.
2021년 예능 콘텐츠 트렌드, 네 번째는 ‘세대별 콘텐츠 소비 플랫폼 분화’ 현상입니다. 제가 지금 몸담고 있는 방송(TV와 라디오)이라고 하는 플랫폼은 꽤 오래 전부터 주 소비층이 40대 이상, 평균 60대가 되어버린 올드 미디어입니다. 이런 현상을 큰 문제라 인식하고 해결해 보려는 노력으로, 한때는 20-40대 시청자를 타깃으로 방송 콘텐츠 제작을 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고 프로그램들이 제작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이제는 시니어 콘텐츠 소비자들이 가진 영향력을 인정하게 되면서 지상파 방송은 자신들이 확보한 기존의 시청자들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죠. 광고주들도 시니어 콘텐츠 소비자들이 가진 구매력을 인식하여 지상파 방송에는 주로 모든 세대를 타깃으로 하거나 시니어 세대를 타깃으로 하는 광고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젊은 세대들은 방송보다는 OTT 플랫폼의 콘텐츠를 소비하는 경향을 보이면서 세대별로 콘텐츠 소비 플랫폼이 분화되는 현상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연령대가 높은 시청자를 보유하고 있는 방송에서는 주로 옛날의 향수를 자극하는 내용으로 콘텐츠가 보여지고 있다면, 젊은 세대들의 문화를 대변하는 콘텐츠들은 OTT 플랫폼에서 주로 소비가 되고 있는 것이죠.
2021년 예능 콘텐츠 트렌드, 다섯 번째는 ‘리얼리티 콘텐츠 독주’입니다. 올 해만의 것은 아니고 꽤 오래전부터 나타난 한국 예능 콘텐츠의 특징이라 하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낙 올해도 강하게 이런 모습이 나타났기 때문에 그냥 넘어가기는 어려운 흐름인 것 같습니다. 한국의 예능 콘텐츠 소비자는 ‘리얼하다’라고 느껴지는 것을 특별히 좋아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재미가 가장 중요한 예능 콘텐츠에서도 작위적이라는 느낌이 드는 순간, 그 콘텐츠를 더 이상 보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이런 이유로 오랫동안 예능 프로그램의 중심인 ‘리얼리티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올해도 역시 그랬구요. 여기에 경연 형식의 오디션 프로그램의 강세가 함께 겹치면서 인기를 끈 대부분의 콘텐츠는 리얼리티 성격이 강한 경연 프로그램이었네요. 리얼리티 콘텐츠의 강세는 전 세계적인 흐름이지만, 특히 한국 콘텐츠 소비자들의 리얼리티 사랑은 더 강한 듯합니다. 이런 성향으로 인해 국내에서는 콩트 코미디나 시트콤이 큰 사랑을 받지 못하고 모습을 보이고 있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2021년 예능 콘텐츠 트렌드를 다섯 가지 키워드로 나누어 얘기를 해보았는데요. 다섯 가지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지만. <머니 게임>이라는 유튜브 예능 콘텐츠의 성공 같은 미래 콘텐츠 산업을 크게 변혁시킬 새로운 변화도 올 해 나타난 흥미로운 사건이었지만 조금은 성격이 다른 것이라 여기서 다루지는 않았습니다. 매년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간에 1년이라는 시간을 돌아보면 참 많은 사건들이 일어났고, 또 큰 변화들이 만들어졌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언제나 변화하는 소비자들을 쫓아서 더 새로운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이 분야에서 살아남는 최고의 전략이기에 콘텐츠 산업은 항상 새로움이 넘치는 곳입니다. 작년에도 그랬고, 올해도 그랬으며, 내년에도 그러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