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도 이제 초고령사회에 들어선다. 2024년 국내 65세 이상 주민등록인구가 1000만명을 넘어서면서 빠르면 올 해 하반기, 늦어도 2025년 상반기에는 공식적인 ‘초고령 사회(전체 인구에서 65세 이상이 차지하는 비율이 20% 이상인 국가)’가 되는 것이다. 2000년 노인 비중이 7%가 넘어 고령화사회에 진입한 한국은 17년 만인 2017년 노인 인구 비중이 14%를 웃도는 고령사회가 되었고, 2025년 20% 넘겨 초고령사회가 예상되고 있다. 보통 100년 정도가 걸린다고 여겨졌던 고령화사회로부터 초고령사회로의 변화를 유례가 없는 빠른 속도로 25년 만에 달성해 버렸다. 2005년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세계 최고의 고령국가 일본을 빠른 속도로 한국이 따라가고 있는 형국이다. 급격한 인구 고령화는 국가의 존립을 흔들 정도의 심각한 문제로,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대책 마련에 안간힘을 쓰고 있는 전지구적인 최우선 과제가 되었다. 콘텐츠 분야도 예외가 아니다.
2017년 노인 인구 비중이 전체 인구의 14%를 넘어선 한국, 이런 인구 구조의 변화는 TV와 라디오 등 전통적인 방송 미디어 환경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 스마트폰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미디어 플랫폼을 이용하는 젊은층이 기존 미디어를 떠나면서 TV 시청자와 라디오 청취자의 연령대가 급격하게 높아져 버렸다. 방송 프로그램을 만드는 PD들 사이에서는 시청자들의 평균 연령이 60대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돌기 시작했다. 고령의 시청자를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들이 늘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동안의 관성이 바로 사라지지는 않았다. 여전히 방송 제작자들은 대부분의 콘텐츠 소비자들이 자신의 나이보다 낮은 연령대인 20-30대의 문화를 선호한다고 생각했었다. 게다가 방송의 최대 돈줄인 광고주들이 20-40 여성을 타깃으로 한 콘텐츠에 광고를 집중적으로 집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시청자 연령의 고령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젊은 콘텐츠 소비자 취향의 방송 프로그램들이 더 많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업계의 분위기를 급격하게 바꾼 프로그램이 등장했다.
2019년 2월 종편채널 TV조선을 통해 방송된 <내일은 미스트롯>은 고령화사회 한국 시청자가 완벽하게 변했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준 히트작이다. 여기에 2020년 같은 채널에서 방송된 <내일은 미스터트롯>이 더 큰 성공을 거두면서 이제 한국의 음악 시장은 시니어 그룹이 주도하는 새로운 시장을 형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방송 시장에도 폭풍같은 변화를 몰고 왔는데, 트롯 가수들의 엄청난 팬덤으로 인해 이들이 출연하는 방송 프로그램들이 큰 시청률 상승을 보여주며 방송 시장에서의 시니어 소비자 파워를 확실하게 보여주게 된 것이다.
우리보다 20년 먼저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도 당연히 이런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일본의 지상파 중 도라에몽이라는 만화 콘텐츠로 유명한 ‘TV아사히’가 있다. 이 방송사는 2017년 ‘시니어 시프트(Senior Shift)’라는 전략을 세워 연령대가 높은 시청자들을 타깃층으로 자사의 프로그램 특히 드라마 콘텐츠에 변화를 줬다. 고령의 시청자들이 좋아할 만한 소재와 내용으로, 40-50대 이상의 배우가 주인공인 프로그램을 주요 시간에 편성하는 전략적 선택을 추진한 것이다. 그 결과로 실제로 일정 수준의 시청률 상승이 있었다는 긍정적인 결과를 만들어냈다고 한다. 그러나 TV아사히 채널 이미지가 ‘올드(Old)’해지는 부정적인 결과도 얻게 되었다고 한다. 방송 채널이 올드하다는 이미지는 20-40 여성을 주요 타깃으로 생각하는 광고주들이 채널을 회피하는 결과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방송사의 수익구조에 치명적이다.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고령화 시대 대중을 상대로 하는 콘텐츠 창작자들이 빠져 있는 딜레마(dilemma)라 하겠다.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하려면 50대 이상의 연령대가 좋아할 콘텐츠를 만들어야 하는데, 계속 변하는 젊은 세대의 트렌드와 함께 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는 순간, 콘텐츠 시장에서 아예 도태될 가능성이 있다는 무서운 딜레마가 놓여져 있는 것이다.
젊은 감각을 유지하면서도 시니어 콘텐츠 소비자들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어려운 숙제가 이 시대 대중매체의 콘텐츠 창작자들에게 주어져 있다. 끊임없이 변하는 콘텐츠 소비자들의 취향은 언제나 새로운 그 무엇을 원하고 있다. 초고령화사회가 요구하는 대중적이면서 젊은 감각을 가진 콘텐츠를 만들어낼 창작자는 어떤 능력을 갖춰야할까? 결국 콘텐츠 소비자들의 변화를 끊임없이 예의주시하며 자신의 개성을 작품에 녹여내는 창작자가 다음 트렌드의 승자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