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8년 차, 부부싸움 끝에 알게 된 것
남편과 나는 올해로 결혼한 지 8년이 되었다. 결혼할 때 할머니는 나에게 네가 더 좋아하지 라고 놀렸고, 시어머니도 내 아들 어디가 좋냐고 물어보셨다. 괜히 놀리는 것 같아서 아니라고 우겼지만 8년 정도 살아보고 나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남편을 더 좋아했다는 것을. 우리의 부부생활을 돌아보면 공격과 수비가 따로 있듯, 내가 묻고 그가 답하는 모습이었다.
그런 연애를 해오던 내가 늘 질투하며 부러웠던 것은 언니였다. 형부는 언니가 승낙할 때까지 한 달간 인턴을 거치며 사귀어주길 기다렸던 사람이었다. 잘 나고 괜찮은 사람이 늘 언니에게 맞추면서 쩔쩔매는 모습을 보니, 어째서 나는 저런 쿨한 연애를 할 수 없는지. 미저리처럼 질척거리는지 한심스러워졌다. 그러나 이내 스스로를 설득했다. 남편이 매달릴 때도 있었지만 그러다가도 한없이 차가운 모습으로 돌아설 때 매력을 느꼈다는 것을. 내 마음이지만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우리의 결혼생활은 늘 다가가기만 하던 내가, 더 이상 다가갈 힘을 잃으면서 균열이 생겼다. 2015년과 2018년. 나는 두 번의 출산을 겪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몸과 마음이 망가져버린 나 자신이 싫었다. 거울을 보는 것도 괴로웠다. 나는 어떤 사람이고 무슨 일을 하고 싶었는지를 그때 오히려 더 절절히 느낄 수 있었다.
자유롭게 내가 원하는 일을 하면서 성장하는 것. 내 삶의 주인공으로 살아가고 개척하는 것. 타인의 기대와 평가와 간섭이 없는 삶이었다. 나는 그런 이상을 가졌지만 독립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아이를 낳고 나서는 경제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남편에게 기댈 수밖에 없었었다. 내가 그에게 기대고 의지했던 것은 내가 두 아이를 낳고, 남편이 직장을 옮겨 바빠지면서 퇴근이 늦어지자 점점 문제가 되었다. 나는 의지할 대상이 없어졌고, 남편은 새 직장에서 격무에 시달리면서 상사의 폭언을 견뎌야 했다.
나는 못나고 부족한 것이 있다. 갈등 상황에서 불만을 건강하게 말하며 제대로 잘 싸우는 일을 참 못한다. 기다렸다가 서운했지만 늦게 왔다고 화내지 않고 다음에는 올 수 있으면 빨리 와 달라고 좋게 말하지 못했다. 그런 진심을 지는 것 같아도 그대로 털어놓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말을 못 하고 자존심 때문에 화를 내는 것은 서로에게 좋지 않은 싸움이 될 뿐이었다. 나는 두 아이를 키우며 집에 있는 사람이었다. 그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고, 남편은 상사 때문에 올 수가 없었다. 나는 기다리지 않을 수 없었고, 내가 오라고 해도 남편은 올 수 없었다. 우리는 생계라는 강 사이에서 갈라져 아이를 키워냈다.
나보다 먼저 결혼한 언니에게 형부와 잘 지내는 비결을 물으니, 언니는 내게 ‘사실, 우리 쇼윈도 부부야'라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하고 깔깔 웃는다. 그리고선 서로 마음 상하는 일이 있으면 바로 말싸움하지 않고 감정이 식을 때까지 시간을 둔다고 했다. 그렇게 기다리는 것도 내가 잘 못하는 것이었다. 나는 다툼이 있다면 바로 남편과 대화로 그 갈등을 빨리 풀고 화해하고만 싶었다. 그러나 감정이 격한 상태에서는 그런 노력이 의미가 없었다. 상대방에게는 그저 내 입장에서의 고집이나 변명, 불평일 뿐이라는 걸 오래도록 싸우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내 진심이나 감정만을 일방적으로 토로하는 것이 아니라 듣는 상대의 감정을 고려하여 말해 주는 것. 그에게 내 사랑의 말을 그대로 전하려고 애쓰니, 나의 부부생활은 한 걸음씩 다시 회복할 수 있었다.
어느 날 어린이집 선생님은 아이를 하원 하려고 나란히 서 있는 나와 남편을 보고 ‘뿌듯하시죠?’라고 물었다. 우리는 조금 겸연쩍었다. 우리의 과거가 어떠했는지를 선생님께 들킨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아마 선생님은 아이를 데려다주며 내 얼굴 표정을 보시면서 이미 눈치를 채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어린이집이 없었다면, 아무런 일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을 것이다. 가까이서 우리를 늘 지켜보았던 선생님이었기에,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낸 우리에게 그런 말씀을 하실 수 있었던 것이다. 어찌 되었든 나와 남편은 그 시간을 견디며 아이를 키워냈다. 그렇게 한 걸음을 겨우 나간 것이다.
오래된 부부일수록 다가갈 때 더 용기가 필요하다. 남편은 내가 다가와 주길 바라면서도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내가 늘 다가가면서도 그것이 자존심이 상하고 서글펐다. 남편과 나는 그렇게 속마음을 말하지 못한 채 엇갈려왔다. 우리는 그렇게 자꾸만 서로 기다리며 알아봐 주기를 먼저 손을 내밀어주기만 했었다. 아이에게 몰입하면서 아이들에게만 사랑한다고 안아주고 뽀뽀를 해주면서 사실은 서로를 기다렸다.
그때마다 더 좋아하는 사람이 지는 걸까 나는 속으로 이 말을 되뇌어보았다. 먼저 고백을 받고 사랑에 우위에 서 있는 남편은 내가 이렇게 대접해 주니 참 편하겠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남편이 취중진담처럼 사실 자기도 내가 와주길 기다렸다고 고백했다. 참으로 웃기지만 그도 그런 자신을 이해할 수 없고 바꿀 수가 없다고 했다. 그에게도 그런 속 사정이 있었던 것이다. 내 쪽에서 다가와 주길 원하지만, 내가 오지 않으면 말하지도 못하고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나의 경우는 반대로 내가 가면서도 자괴감을 느꼈었다. 내가 늘 손을 내밀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손을 내미는 게 매번 나라는 것이 늘 서운한 마음이었다. 나도 확인받고 싶었으니까. 어쩌겠는가. 나는 이런 사람, 남편은 그런 사람인 것을. 나는 그냥 먼저 다가가기로 했다. 그가 내가 다가오기를 기다리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기 때문에. 사랑에 이기는 것보다 남편을 택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