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키스를 먼저 했는가에 대한 논쟁

술 먹고 키스를 하고 사귄 커플이라면.

by 심가연


세상에 가장 재미없는 연애로 인생을 보낸 여자가 있다면 나 일 것이다.

수많은 남자들과의 경험을 자랑하는 여자들도 있지만. 나는 사막의 오아시스를 만난 것도 아닌데 딱 한 남자를 만나서 결혼했다. 이런 연애관은 누구로부터 기인한 것인지. 엄마는 억울하겠지만 엄마를 소환할 수밖에 없겠다.


그렇게 안 키웠는데.

종종 답답할 때마다 엄마는 나에게 이런 말을 한다. 그러나 엄마가 아빠를 대하는 모습을 내면화해서 자란 나의 자세는 그대로 연애관에 반영이 된다. 나는 그렇게 엄마처럼 처음 사귄 남자와 결혼을 해서 살고 있다. 사실은 본인이 나를 그렇게 키우신 것이다.


왜였을까?

한 번만 잘 끊어냈으면 결혼까지 가지 않고도 다른 남자들도 만나보고 차암 좋았을 텐데. 이십 대에 한 선택이나 그 자유가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게 얼마나 좋은 것이었는지는 돌이켜 생각해보면 더 그립다. 유부녀가 된 지금은 더욱.


이십 대의 우리는 서로를 힐끔 거리며, 누구든지 언제든지 만날 수 있었고. 그런 심리적 긴장감 속에 늘 사랑의 대상을 찾는 일이 참 즐거웠다. 어디를 가나 나도 남자를 힐끔거리고, 남자도 나를 힐끔거려주는 것. 그 자체로 즐거웠다. 물론 싱글라이프에서 아직도 그렇게 즐기고 계신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 세상에서 끝난 것이겠지 싶기도 하지만.


삼십 대의 연애란, 욕정이나 본능보다는 ‘조건’이라는 타이틀로 단추가 꿰어지지 않는다면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아 보인다. 차갑게 계산기를 두들기는 것 같은 상대의 눈빛과, 나 역시 마찬가지인 상황이라면 서로에게 마음이 가기가 참 어려울 것 같다.


그거였다. 순수한 사랑에 대한 미련. 아마도 그것 때문에 나는 처음 만난 상대와 결혼을 하고 이 사랑을 고집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내 사랑은 순수했던 것일까. 이십 대에 만난 남편과 나는 그랬지만. 지금은 아주 다른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다. 같지만 다른 삼십 대의 가죽을 뒤집어쓰고 있다. 어디 갔어 순수?!


누가 더 사랑하는가에 대한 우리의 논쟁은, 내가 다가간다고 해서 내가 더 사랑한다고 할 수 있을까. 1화에서 다루었던 내가 다가간다고 했던 말을 곱씹으며. 사실은 마냥 다가오는 것이 매번 좋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지분거림이 얼마나 지겹기도 한가 싶어 졌다. 말했듯이 나는 그가 돌아서는 모습에 매력을 느꼈고. 다가와서 질척거리면 금세 식었다. 못생겨 보이기도 했다. 이기적 이게도 내가 원할 때는 시크하게 다가오고, 원하지 않을 때는 저리 가 줄래. 그런 마음이 숨어 있는 것 같다.


더 사랑하는가에 대한 논쟁은 영원히 풀리지 않지만 그와 내가 사귀게 된 시발점은 바로 술 먹고 한 키스 때문이었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도대체 누가 먼저 키스를 한 것인지. 그는 기억이 있는 것 같은데 시종일관 내가 먼저 했다고 한다. 그렇게 우기면 나는 이렇게 받아친다.


“무슨 소리. 나는 그게 첫 키스였다고. 내가 먼저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할지도 모르는데.”


내 반응에 그는 늘 의뭉스럽고 장난스럽게 웃을 뿐이다. 한 때 서로 좋아서 사랑했던 커플이라고 하더라도, 지나간 추억을 뜯어먹으며. 오늘의 부부 싸움을 좋게 좋게 마무리하며 살아간다. 그와 나는 그런 두 세계를 번갈아 오가며. 냉탕과 온탕에서 서로를 덜 미워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살아간다. 우리가 힘들고 미운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결혼을 통해 서로에게 너무 얽혀버렸기 때문이다. 자식을 키우고, 그 아이를 키우느라 나는 독박 육아, 그는 외벌이를 하며 서로 다리가 묶여 있기 때문이다. 때론 그 다리가 기댈 수 있어 따뜻하다가도 이내 짐스럽고 떼어버리고 싶어지는 것 같다.


결혼은 그런 온갖 맛이 나는 해리포터의 젤리 같은 것이다. 때론 귀지 맛이 나더라도. 드셔 보고 싶다면. 수요일마다 올라오는 나의 글을 읽어보시길. 살포시 권해본다.


아무도 궁금하지 않겠지만. 나는 누가 먼저 했냐는 논란에서 당연히 굶주렸던 복학생인 그였을 거라고 짐작한다. 웃긴 건 이제는 더 이상 그도 나도 이 진실을 크게 궁금해하지 않게 된 것 같다. 그는 이미 오래전 사실을 알고 있었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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