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탁소일지
망가진 책의 종이를 이어 붙이고, 살을 고치는 과정의 시작은 그 책을 완전히 해체하는 일부터 시작되는 것 같다. 아직 보수한 책의 매무새가 완벽하진 않지만, 어떤 일종의 확신을 가지고 내가 찢는 책의 종이가 보수를 위한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지만 죄책감 없이 책을 찢을 수 있게 되었다.
그 해체된 종이들의 단면을 보다 보면, 상처받은 종이의 단면이 내 마음속 같아 보이기도 해서, 그 안에 약을 바르듯 풀을 발라 넣어주기도 한다. 의사처럼 날카로운 메스를 들고 숙련된 선생님들을 더욱 날렵하게 책에 상처를 남기지 않고 치료하기도 하지만. 나는 여전히 고치고 또 고치고 주저하듯이 여러 번 손이 간 흔적을 남는다. 노련해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과정이기도 하다.
2년간 책을 보수하면서 달라진 점은, 내가 일을 선택하면서 가장 큰 선택의 기준이었던 돈과 시간당 일당을 개념에서 벗어나서 봉사를 하면서 새로운 카테고리의 일을 해보았다는 점이다. 봉사가 아니었다면 이런 책보수를 하면서도 도서관의 다양한 책들의 사례를 접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다양한 책들의 훼손과정을 관찰하고 고치고, 숙련된 선생님을 소개받아서 제대로 교육을 받을 기회도 없었을 것이다. 계산기를 두드려서 일을 진행하고 정당한 수익을 받는 것이 이치에 맞고 영리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그 가성비를 벗어난 일을 했을 때만이 다른 사람들과는 차별된 길이 열린다는 점을 이번 책탁소 봉사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가성비를 생각하고 움직였다면 계속 나 역시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길만을 걷게 되었을 것이다. 그건 답답하고 싫었다. 좋아하는 일이라면 돈이 안 되어도 그냥 좀 하면 안 되나… 아직 좋아하지 않더라도 좀 해보면 안 되나. 나는 그런 마음으로 그냥 책보수를 하고 있다. 이제는 놀랍게도 좋아하게 되었다.
돈을 벗어나, 내가 정말로 이 일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것인지를 고민해 보자고 생각했었다. 책보수는 책을 해체하고, 책의 내적인 내용에만 천착하며 고민했던 나에게, 책의 피부와 같은 종이, 다양한 제본의 특성, 그 책을 엮는 제책의 과정을 상상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또한 책을 사용하거나 읽는 독자의 성향에 따라 갈리는 다양한 훼손 양상을 보며 독자를 상상할 수 있는 변태적 시선을 갖게 해 주었다. 아이들이 이 책을 이렇게 좋아한다고? 의아한 책들이 많았다. 내가 선택하고 보았던 책의 카테고리를 벗어난 책을 책탁소를 통해서 만날 수 있었다
처참하면 처참할수록 헤어진 정도만큼. 나는 이 책을 누가 어떻게 읽었는지. 얼마나 그 책을 사랑했는지를 느낀다. 아이들이 사랑하고 완전히 빠져든 책은 거의 걸레의 형태로 무너져 내린다. 간신히 제본된 풀 끝에 종이가 붙어있는데도 아이들은 괘념치 않고 계속 페이지를 넘기며 읽는다. 그 구겨진 종이를 읽고 또 읽고. 아이들의 마음속에서 그 이야기들은 얼마나 생생하게 살아있을까. 헤어진 내지가 페이지가 넘어가져 갈라진 자국을 보며 나는 내심 그 책을 만든 작가들에게 질투를 느낀다. 나도 이렇게 사랑받는 책을 만들고 싶다. 만들어내서 열심히 읽는 손을 만나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 찢어진 틈에 풀을 붙이며, 폴더로 꾹꾹 눌러주다가.. 질투어린 마음으로 아이디어가 가끔 떠오른다. 그것들을 틈틈이 옆에 다이어리를 펴놓고 책보수를 할 때에도 내가 만들고 싶은 책 이야기를 메모해 둔다. 언젠가는 그 책이 도서관에서, 누군가의 집에서, 독자를 만나게 되기를 상상하면서.
책을 찢으며 만들기 이전의 형태로 해체한다. 그리고 다시 조립해서 독자에게 돌려보낸다. 나는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내가 겪은 이야기를 단어로 해체해서 모으고 다시 이야기를 만들어서 쓴다. 찢고 해체하고 다시 조립하고 정리해서 만드는 일. 정말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