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이 만든 강대국의 윤리적 책임
제러드 다이아몬드는 그의 저서 《총, 균, 쇠》에서 국가 간 힘의 격차가 인종이나 민족의 우월성이 아니라, 오히려 지리적이고 환경적인 요인에서 비롯되었다고 역설했다. 비옥한 초승달 지대의 풍부한 곡물과 가축, 그리고 이에 따른 질병 저항력의 발달이 유럽 문명의 우위를 결정지었다는 그의 분석은 역사적 우연과 환경적 행운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현대의 미국 또한 이러한 지리적 행운으로부터 출발했다. 대서양과 태평양에 둘러싸인 광대한 영토, 풍부한 천연자원, 그리고 이민자들이 가져온 다양한 문화적 자산과 기술력은 미국이 글로벌 강국으로 성장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 산업 혁명과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며 미국은 경제력과 군사력을 급속히 확장했고, 냉전 시대를 통해 유일무이한 초강대국의 위치에 올랐다.
그렇다면 지금 세계의 강대국은 이러한 운의 산물로 형성된 자신의 위치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최근 미국이 여러 힘없는 나라들을 대하는 태도에서 답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강대국이 환경적, 지리적 행운으로부터 얻은 힘을 당연한 권리처럼 행사하고, 약소국에 무례와 압력을 가하는 상황은 다이아몬드가 지적한 역사적 우연성을 망각한 결과다.
국제 사회에서 국가 간 힘의 불균형은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윤리적 책임, 즉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요구한다. 역사적으로 운 좋게 풍요로운 환경을 물려받고, 기술과 힘을 축적한 국가는 그 지위를 이용하여 타국을 착취하는 것이 아니라, 더 공정하고 지속가능한 국제 질서를 구축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미국과 같은 강국이 약소국에 가하는 일방적인 무례는 국제 사회의 공정성을 해치고, 장기적으로는 자신들의 도덕적 권위와 신뢰까지 무너뜨린다. 제국주의 시대의 쓰라린 경험을 통해 인류가 배운 교훈은 힘의 남용은 결코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최근 미국과 우크라이나 간 체결된 희귀 광물 협정은 강대국이 국제사회에서 힘을 행사하는 또 다른 방식을 보여준다. 러시아와의 전쟁으로 인해 우크라이나는 경제적·군사적으로 극심한 부담을 지고 있으며, 이를 지원하는 명목으로 미국은 경제적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특히 우크라이나가 보유한 리튬, 니켈, 코발트, 희토류 등 첨단 산업과 군사 기술에 필수적인 광물 자원에 대한 접근권을 확보하는 것은 미국의 전략적 이익과 맞닿아 있다.
표면적으로는 미국이 우크라이나 경제를 재건하는 데 기여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 협정이 사실상 우크라이나의 자원을 미국 중심의 공급망에 종속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판이 제기된다. 미국은 자국의 반도체, 배터리, 군사 기술 발전에 필수적인 희귀 광물의 안정적 공급을 보장받는 반면, 우크라이나는 전후 복구 과정에서 자국의 자원을 스스로 통제할 능력을 점차 잃어갈 가능성이 크다.
이와 유사한 사례는 역사적으로도 많았다. 제국주의 시대 서구 강대국들은 경제적, 군사적 약점을 가진 국가들에게 '원조'와 '협력'을 명분으로 내세우며 자원을 통제하고 산업 기반을 종속시키는 방식을 사용했다. 오늘날에도 이러한 패턴이 반복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는 전쟁이라는 극단적 상황 속에서 자국의 미래 자원 주권을 타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로 재편되고 있다.
이는 결국 강대국이 국제사회에서 힘을 행사하는 방식이 어떻게 반복되는지를 보여준다. 미국이 과거 제국주의 국가들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경제적 원조와 자원 협력을 우크라이나의 장기적인 경제 자립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설계해야 한다. 강대국의 역할은 단순한 경제적 이익 추구를 넘어서는 것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 협정은 결국 또 하나의 신식민주의적 자원 수탈 구조로 남게 될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강대국의 역할과 책임에 대한 논의는 더욱 중요해진다.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이 자신의 위치를 공고히 하기 위해서는 힘뿐 아니라 도덕적 리더십과 윤리적 책무성을 보여야 한다. 국제사회는 이미 역사적으로 강대국들의 이기적 행동과 일방적 권력 행사로부터 많은 피해를 경험했다. 지금 우리가 바라는 것은 힘 있는 나라들이 자신의 특권적 위치를 당연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큰 책임감과 도덕적 의식을 갖고 행동하는 것이다.
결국 강대국의 진정한 힘은 군사력이나 경제력이 아니라, 책임 있는 행동과 배려를 통해 쌓이는 국제적 신뢰에서 비롯된다. 제러드 다이아몬드가 강조한 것처럼, 강대국들은 자신들의 위치가 단순한 실력만이 아니라 환경적·역사적 행운에 기인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하며, 이에 대한 윤리적 책임을 다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