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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대가: 우크라이나가 남긴 경고

우크라이나의 오늘, 대만과 한국의 내일

by 온기록 Warmnote
"나치가 공산주의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그들이 사민당원들을 가두었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민당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그들이 노동조합원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나에게 닥쳤을 때는, 나를 위해 말해 줄 이들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 마틴 니묄러


이 글귀는 역사적으로 반복되어 온 진실을 경고하고 있다. 부당한 상황이 벌어질 때 침묵하면, 결국 피해는 우리에게 돌아온다는 것이다. 최근의 국제 정세를 보면, 이 경고가 단순한 과거의 교훈이 아니라 오늘날 대만과 대한민국이 직면한 현실이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 미국과 우크라이나 간의 광물 협정, 그리고 미국이 대만의 TSMC(타이완 반도체 제조 회사)에게 인텔의 반도체 사업을 떠넘긴 상황은 단순한 경제 협력이 아니다. 이는 미국이 지정학적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동맹국들의 핵심 산업을 장악하는 과정이며, 이러한 흐름 속에서 아시아 국가들이 향후 어떤 운명을 맞이하게 될지에 대한 중요한 신호이기도 하다.


우크라이나의 자원, 미국의 전략적 선택


미국과 우크라이나가 최근 체결한 광물 협정은 국제 정치에서 자원의 중요성을 다시금 강조하고 있다. 미국은 우크라이나의 광물 자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함으로써 자국의 기술 및 산업 패권을 유지하려 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는 전쟁으로 인해 피폐해진 경제를 재건하기 위해 이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 협력은 우크라이나의 자주적 선택이라기보다는 생존을 위한 필연적 선택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미국과 유럽은 민주주의와 자유의 이름으로 우크라이나를 지원하지만, 동시에 냉정한 현실 정치의 논리를 따르고 있다. 서방 국가들은 우크라이나를 러시아와의 대리전에서 전략적 전초기지로 활용하고 있으며, 경제적 지원 또한 철저히 자국의 이익과 연계된 조건부 협력이다. 우크라이나는 미국의 전략 속에서 자국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기 어려운 위치에 놓였고, 자원의 통제권을 점차 상실하며 서방의 의존도가 높아지는 과정을 겪고 있다.


이러한 흐름을 보면, 대만 역시 비슷한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이 두 국가는 이미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 속에서 전략적 요충지로 간주되고 있으며, 반도체 및 희귀 광물 등의 핵심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미국은 자국의 산업을 보호하는 동시에, 동맹국들의 전략 자산을 통제하려는 움직임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의 반도체 전략:

TSMC에 떠넘겨진 인텔의 미래


이러한 흐름 속에서 최근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미국이 대만의 TSMC에 인텔의 반도체 사업 일부를 떠넘긴 것이다.


인텔은 한때 세계 최고의 반도체 제조업체였지만, 최근 몇 년간 TSMC와 AMD, 삼성전자 등 다양한 기업에 밀려 경쟁력을 잃고 있다. 이에 미국 정부는 반도체 공급망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인텔을 지원하면서도, 생산 역량이 부족한 부분을 TSMC에 맡겼다. 표면적으로는 협력처럼 보이지만, 이는 사실상 미국이 자국 반도체 산업의 부담을 대만에 전가한 것이다.


TSMC는 이미 미국의 압박 속에서 애리조나에 반도체 공장을 세우고 있으며, 점점 더 미국의 공급망에 깊숙이 편입되고 있다. 그러나 이는 TSMC가 미국 경제에 필수적인 기업이 된다는 의미인 동시에, 대만이 미국의 전략적 도구로 더욱 종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린다는 뜻이기도 하다.


중국과의 긴장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대만이 미국의 전략적 의존도를 높이면 높일수록 자국의 자율성을 잃고 국제 갈등 속에서 휘둘릴 위험이 커진다. 대만이 현재 미국의 요구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미래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불확실하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크라이나가 전쟁 속에서 서방의 도움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게 된 것처럼, 대만 역시 점점 미국에 경제적·군사적으로 종속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대한민국은 예외가 아니다


대한민국 역시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국의 반도체 공급망 재편 전략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미국은 반도체 산업을 무기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한국 기업들을 적극 활용 하고 있다. 최근 미국이 반도체 기업들에 대해 중국과의 협력을 제한하는 조치를 취한 것은 단순한 경제적 결정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미국의 전략 속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이미 정해져 있다는 신호다.


한국이 미국의 요구를 무조건 따르게 되면, 우리는 자주성을 잃고 특정 강대국의 전략적 도구로 전락할 위험 이 크다. 오늘날 우크라이나가 전쟁 속에서 서방의 지원을 받으며 경제적·군사적 의존도를 높이고 있는 것처럼, 대한민국도 경제적 협력이라는 이름 아래 미국의 전략적 이해관계에 의해 움직이는 국가가 될 가능성 이 점점 커지고 있다.


침묵하면 결국 피해자는 우리다


마틴 니묄러의 경고처럼, 우리는 지금 다른 나라의 위기 속에서 침묵하고 있지만, 언젠가 그 위기가 우리에게 닥칠 수도 있다. 우크라이나가 처음에는 러시아의 위협을 경고했지만 국제 사회가 충분히 대응하지 않았던 것처럼, 대만과 대한민국 역시 지금의 지정학적 변화 속에서 방관한다면 비슷한 운명을 맞이할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자주성’이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 속에서 대한민국과 대만이 독립적인 경제 및 외교 전략을 구축하지 않는다면, 미래는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을 것이다. 지금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강대국들의 전략적 도구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독립적인 목소리를 내어 우리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것인가?


침묵은 당장은 편할지 몰라도, 그 대가는 혹독하다. 시간이 남아 있을 때, 능동적으로 우리의 입장을 정리하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도움을 필요로 할 때 우리의 입장을 대변해 줄 사람은 아무도 남아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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