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이 중심이 된 교육, 무력한 학교
요즘은 학원이나 과외 없이 공부하는 아이가 드문 풍경이 됐다. 사교육은 부족한 부분을 메우는 '보충 수단'이 아니라, 학습의 출발점이자 사실상 교육 시스템의 일부가 됐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학원에서 선행학습을 하고, 학교 수업은 복습처럼 흘러간다. "학교는 이미 배운 걸 확인하는 곳"이라는 말은 이제 농담이 아니라 현실이다.
이런 구조 속에서 사교육은 더 이상 개인의 선택이나 노력으로 설명할 수 없는 문제로 커졌다. 학교가 맡아야 할 학습의 기능을 학원과 과외 같은 민간 시장이 대신하면서, 사교육은 어느새 교육의 중심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학원에서 먼저 배우고 학교에서 다시 듣는 흐름이 당연한 일처럼 굳어졌다. 학교는 더 이상 '배움의 시작점'이 아니다. 아이들도, 부모들도 학교만으로는 불안하다고 느낀다.
사교육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뒤처지는 건 더 이상 낯선 일이 아니다. 그런 격차는 개인의 능력이나 노력 때문이 아니라, 사회가 만든 구조에서 비롯된 결과다. 교육은 모두에게 평등한 기회를 보장해야 하지만, 사교육이 기본값이 된 사회에서는 출발선 자체가 이미 제각각이다.
사교육이 점점 확장되면서, 공교육은 학습의 중심 자리에서 조금씩 밀려났다. 처음 배우는 곳은 더 이상 학교가 아니다. 학원에서 선행학습을 마치고 온 학생들이 수업의 기준이 되고, 수업은 복습처럼 흘러간다. 학교는 따라오는 아이들을 전제로 움직이고, 따라오지 못하는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소외된다.
문제는 이런 흐름이 이제는 거의 모든 교실에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점이다. 교사들도 현실을 인정한 채 수업을 조정하고, 학생들 역시 학교보다는 학원에서 진짜 공부를 한다고 믿는다. 학습의 주도권은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공교육의 손을 떠났다.
이제는 사교육이 기준이고, 공교육은 그 흐름을 따라가는 구조가 됐다. 교실은 점점 더 '이미 배운 아이들'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같은 교실에 있어도 누군가는 복습을 하고, 누군가는 처음 배우고, 누군가는 아예 따라오지 못한다. 똑같은 수업을 듣고 있어도, 아이들마다 배우는 양도 다르고 이해하는 깊이도 천차만별이다.
사교육이 일상이 된 지금, 아이들 사이의 격차는 단순한 실력 차이가 아니라, 부모가 자녀에게 얼마만큼의 교육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가에서 출발한다. 비싼 학원, 1:1 과외, 입시 컨설팅처럼 돈이 많이 들어가는 교육일수록 효과도 크고, 그에 따른 격차도 더 빠르게 벌어진다. 결국 부모의 경제력이 아이의 학업 성취를 가르고, 그 차이는 대학과 진로, 미래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문제는 이 격차가 시간이 갈수록 더 정교한 방식으로 굳어져간다는 데 있다. 교육은 원래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사다리여야 하지만, 지금은 그 사다리 앞에 가격표가 붙은 셈이다. 누구는 학원에 다니고, 누구는 못 다니는 것만으로도 결과는 크게 달라진다. 문제는 그 차이가 단순한 점수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교육에서 비롯된 격차는 인생의 가능성 자체를 다르게 만든다.
이미 사교육 중심으로 굳어진 교육 흐름은, 누구 한 사람의 선택이나 노력으로는 바꾸기 어렵다. 학교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고, 그 자리를 사교육이 대신하고 있다. 학부모는 공교육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끼고, 학생은 선행학습을 따라잡는 데 급급해, 스스로 배우고 생각할 여유를 잃고 있다. 문제를 인식하는 이들은 많지만, 누구도 이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못하고 있다.
지금 필요한 건 '공교육 강화'라는 막연한 말이 아니다. 학원 없이도 아이가 수업을 따라갈 수 있다는 믿음, 학교가 처음 배우는 공간이라는 확신이 회복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교에 더 많은 자원이 투입되고, 교사가 수업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뒷받침돼야 한다. 교육의 기준이 다시 공교육으로 돌아오지 않는 한, 격차는 줄어들지 않는다.
교육은 점수가 아니라 사람을 기르는 일이다. 그리고 그 교육의 기회는 누구에게나 평등해야 한다. 출발선이 다르면 결과도 달라질 수밖에 없고, 그 차이는 곧 삶의 격차로 이어진다. 학교가 다시 배움의 출발점이 될 때, 교육의 평등은 비로소 실현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