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은 타인의 기억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한국', '대한민국'이라 부르지만, 세계는 우리를 'Korea'라고 부른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스스로는 '中國(중국)', '中華(중화)'라 하지만, 전 세계에서 통용되는 이름은 'China'다. 익숙해서 아무렇지 않게 느껴질 뿐, 이 이름들은 사실 우리 스스로 지은 이름이 아니다. Korea도, China도 모두 외부 세계가 붙인 이름이다.
이 낯선 이름들에는 역사가 담겨 있다. Korea는 고려에서, China는 진나라에서 비롯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고려도 진나라도,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와는 거리가 있는 고대 혹은 중세의 나라들이다. 그 많은 왕조들 가운데, 왜 고려와 진의 이름만이 오늘날까지 살아남았을까?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존재를 기억하는 방식이다. 그 존재가 어떤 모습으로 세상에 등장했는지를 말해 주는 흔적이다. 우리가 세계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던 그 순간의 기억이, 지금도 이 이름들 속에 남아 있다.
Korea라는 이름은 고려에서 비롯되었다. 당시 고려는 송나라와 교류했고, 아라비아 상인들과도 무역을 하며 동아시아의 중요한 나라로 인식되었다. 고려청자나 불교문화와 같은 고유한 문물은 외부에 강한 인상을 남겼고, 이로 인해 외국인들은 이 나라를 Goryeo, 또는 Coree, Corea라 부르기 시작했다. 이 발음이 점차 굳어져 오늘날의 Korea가 된 것이다.
흥미로운 건, 조선이라는 새 나라가 세워진 뒤에도 외국에서는 여전히 Korea라는 이름을 사용했다는 점이다. 조선은 자국의 정체성을 새롭게 만들려 했지만, 세계의 기억 속에서는 고려의 이미지가 더 강하게 남아 있었다.
그 혼란은 훗날 대한제국 때까지 이어진다. 대한제국은 분명 조선의 뒤를 잇는 새로운 국가였지만, 영미권에서는 여전히 Korean Empire로 불렸다. 대한제국 입장에서 보면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자신들과는 500여 년 전 단절된 고려의 이름이 제국의 공식 국호로 불리는 셈이었기 때문이다. 대한제국은 Empire of Dai Han 같은 표현을 사용하려 시도했지만, 끝내 Korea라는 이름을 국제사회에서 완전히 걷어내지는 못했다.
China라는 이름은 기원전 3세기, 중국 대륙을 최초로 통일한 진(秦, Qin)나라에서 비롯되었다고 여겨진다. 진시황이 세운 이 국가는 비록 짧은 기간만 존재했지만,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와 법가적 통치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 이름은 실크로드를 따라 서쪽으로 전해졌고, 인도나 페르시아 지역을 거쳐 'Cina', 'Chin' 같은 형태로 불리다가, 오늘날의 China로 정착되었다.
재미있는 건, 진나라는 중국 역사 전체에서 보면 아주 짧은 순간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불과 15년 남짓 존속했던 이 제국이, 어떻게 동아시아 전체를 대표하는 이름으로 남게 되었을까? 이는 중국이 세계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던 시점이 바로 진나라였기 때문일 것이다. 외부 세계가 처음 마주한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 그것이 바로 진이었다.
내부적으로는 '중화'나 '한족' 중심의 정체성이 있었지만, 외부의 기억은 단순하고 선명한 이미지를 따라간다. 진나라의 힘과 규모는 중국이라는 거대한 문명권의 '얼굴'로 각인되었고, 그 기억은 이름으로 굳어졌다. China라는 이름은 단지 한 왕조의 흔적이 아니라, 중국이라는 문명이 세계에 처음 보여준 자국의 이미지라고도 할 수 있다.
Korea와 China라는 이름은, 지금의 한국과 중국을 그대로 담고 있지 않다. 오히려 그 이름이 붙여졌던 바로 그 시점, 우리가 세계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던 순간을 가리킨다. 고려와 진나라, 지금은 사라진 이름들이 오늘까지 이어져 오는 이유는 그 순간이 하나의 기억으로 굳어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한국이라 부르고, 중국은 자신을 중국이라 부른다. 하지만 세계는 여전히 Korea, China라고 부른다. 그 이름은 결국 우리 입에서 시작되지 않았다. 이름은 타인이 우리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흔적이다. Korea와 China라는 말속에는, 우리가 세계에 남긴 첫인상이 여전히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