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생일을 기억하려 할까?

날짜가 아니라 마음을 기억하는 일

by 온기록 Warmnote

생일은 해마다 같은 날, 조용히 찾아오는 익숙한 기념일이다. 하루는 어김없이 지나가지만, 우리는 그날을 잊지 않으려 애쓴다. 누군가는 축하 메시지를 보내고, 누군가는 케이크를 고르고, 누군가는 좋아하는 사람들과 작은 자리를 만든다. 매년 반복되지만, 그 하루만큼은 다른 날들과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결국 365일 중 하루일 뿐인데, 왜 우리는 굳이 그날을 특별하게 여기고, 의미를 붙이려 할까? 하루하루가 바쁘고 무심하게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굳이 생일이라는 기억을 꺼내어 다시 바라보는 이유는 뭘까?

어쩌면 생일은 단순히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날이 아니라, 시간을 돌아보는 작은 장치일지도 모른다. 나라는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사실, 그 시작점을 되새기고 싶은 마음. 나 자신을 돌아보는 동시에, 다른 누군가의 존재를 기쁘게 여기는 마음이기도 하다. 그렇게 생일은 존재를 확인하고, 지나온 시간과 기억을 붙잡는 하나의 방식이 된다.

반복되는 시간 속에서도 어떤 날은 유독 특별하게 남는다. 우리는 왜 특정한 날짜에 마음을 얹고, 그날을 기억하려 하는 걸까? 생일에서 시작해, 기념일이라는 이름이 붙은 날들의 의미를 하나씩 되짚어보려 한다.


시간을 기억하려는 방식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흐르지만, 기억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날은 선명하게 남고, 어떤 날은 금세 잊힌다. 우리는 그 많은 날들 가운데서 몇 개의 순간을 고르고, 그날에 의미를 붙인다. 그 하루가 특별했다기보다,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은 날이었기 때문이다.

기념일은 그런 마음에서 생겨난다. 시간은 계속 흘러가지만, 그 안의 어떤 날은 놓아버리지 않고 붙잡아두려는 시도다. 무심하게 지나가는 시간 속에서, 그날만은 다시 바라보고, 다시 의미를 불어넣는다. 그건 날짜를 기억하는 일이 아니라, 그날의 마음을 기억하는 방식에 가깝다.

결혼기념일은 둘이 함께 걷기 시작한 첫날을, 독립기념일은 한 나라가 다시 일어선 날을 되새기는 시간이다. 창립기념일, 추모일, 기일 같은 이름으로도 우리는 그날을 다시 기억 속에서 꺼낸다. 모두가 똑같이 지나가는 하루지만, 어떤 날은 이름을 갖게 되고, 기억할 이유를 얻는다. 기념일은 그렇게 감정이 머물던 자리를 다시 찾아가는 일이다.


감정과 관계를 이어주는 날


기념일은 단지 어떤 사건을 기념하는 날이 아니다. 그날을 기억하는 건, 그 사건을 둘러싼 감정과 관계를 다시 붙잡는 일이기도 하다.

생일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보통 생일을 축하하면서, 그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사실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함께 있어줘서 고맙다는 마음을 전한다. 너라는 사람이 있어서 참 좋다는 마음을 다시 한번 건네는 날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떤 생일은, 그보다 더 절실한 감정을 품고 있다.

오래전에는 아이가 돌을 맞기 전에 세상을 떠나는 일이 흔했다. 그래서 돌잔치는 단순한 생일 파티가 아니라, 죽지 않고 살아냈다는 것에 대한 안도와 감사의 표현이었다. 아이가 무사히 자라 첫돌을 맞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축하할 이유는 충분했다.

현충일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의 죽음을 슬퍼하고 그 희생을 기억하는 날이지만, 동시에 그 희생을 함께 기억하려는 사람들의 마음이 모이는 날이기도 하다. 그날의 의미는 지나간 사건 자체보다, 남은 이들이 이어가는 감정과 태도 속에 더 오래 남는다.

그렇게 기념일은 때로는 기쁘고, 때로는 안도하며, 때로는 애도하는 마음으로 흘러간 시간 속에서 감정을 묶는 끈이자 관계를 확인하는 틀로 작동해 왔다. 그리고 오늘날의 우리 역시, 그날이 되면 문득 그때의 감정을 다시 꺼내 보게 된다.


흘러가는 하루에 의미를 새기는 일


어떤 날은 그냥 지나가고, 어떤 날은 마음에 남는다. 우리는 그날을 반복해서 떠올리고, 기념일이라는 이름을 붙여 기억하려 한다. 그것은 단지 날짜를 챙기는 일이 아니라, 한때의 마음을 놓치지 않으려는 태도에 가깝다. 시간은 흘러가지만, 우리는 그 흐름을 따라가며 스스로를 돌아보고, 관계를 확인하고, 감정을 다시 불러낸다. 기념일은 그 모든 걸 가능하게 하는 작고 조용한 장치다.

기념일은 '시간을 기억하는 방식'이다. 흘러가는 하루에 마음을 머무르게 하고, 그 마음을 통해 시간을 다시 새긴다. 우리는 그렇게 기억하고 싶은 시간을 스스로 만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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