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너무 무시하지 마라. 내가 갈 길이다.
우리 엄마에게 나의 할머니는 단칸방에서 아들 며느리와 끼어 자던 달갑지 않은 시어머니였지만 나에게 할머니는 첫 손주였던 내게 무한한 애정을 쏟아 주었던 따뜻한 어른이었다. 돌아가신 지가 한참이지만 나는 여전히 할머니가 많이 그립다. 그리운 만큼 후회도 많다. 받은 사랑만큼 제대로 돌려드리지 못한 것이 늘 후회되고 아프다. 할머니라는 단어만 들어도 마음 한편이 시큰거리는 것과는 다르게 나는 노인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기준이 되는 연령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예전엔 어르신들에게 복지 차원에서 교통비가 계좌로 지급이 됐다. 삼만 육천 원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 당시 은행에 근무했던 나는 그 교통비가 지급될 쯤엔 며칠 전부터 홍역을 앓아야 했다. 주로 할머니들이 오시긴 했는데 교통비가 언제 들어오는지 계속 확인을 요구했고 아직 날짜가 되지 않았음에도 왜 아직 들어오지 않냐고 채근을 했다. 어쩌다 한 번씩 그런 일을 겪는다면 삼만 육천 원에 기대야 하는 어르신들의 고달픈 생활을 공감하고 작은 일이라도 도움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응대했겠지만 그러기엔 너무 많은 할머니들이 오셔서 나를 볶아대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이해 못 할 상황도 아니지만 그때의 나는 어렸고 많은 업무량으로 인해 지쳐 있었다. 노인 혐오까지는 아니었지만 나이 드신 분들을 피했던 이유는 교통비 통장들을 버거워하던 시절 훨씬 이전부터 있었다.
엄마를 따라서 초등학생부터 절에 다녔던 나는 절에서 참으로 많은 할머니들을 만났다. 지금도 그렇지만 절은 젊은 사람보다 나이가 지긋한 사람들이 월등히 많다. 그때 만났던 할머니들은 억세게 표현하는 분들이 참 많았다. 절에서 점심을 먹기 위해 줄을 서는데 남자가 우선이라며 한참 젊은 남자에게 줄을 양보하고 젊은 여자들에게도 양보를 강요하는 경우가 있었다. 정말로 이해할 수 없고 그 상황들이 너무 싫었다. 한 번은 동생이 우리가 다니던 절을 지나가게 돼서 시간이 난 김에 잠깐 들른 적이 있었다. 양말을 안 신고 있어서 그냥 맨발로 법당에 발을 디디려는데 경우 없이 맨 발로 법당에 들어간다고 호통을 치며 삼대가 짐승으로 태어날 거라는 악담을 퍼부어댔다고 했다. 너무나 기가 찼던 얘기에 더해서 술 취한 할아버지가 버스 옆 자석에 앉아서 피하려는 나를 옴짝 달짝 못 하게 했던 기억까지 쌓이고 쌓여 할머니 할아버지만 보면 되도록 마주치지 않으려고 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사회화가 덜된 분들이라 부딪히면 나만 손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이번 여름 지하철 안에서 에어컨 바람 느끼며 시원하게 앉아 있는 것도 잠시뿐 시간이 지나니 추워지길래 가방 안에서 카디건을 꺼냈다. 양 옆에 앉아 있는 승객을 팔꿈치로 건드릴까 봐 조심조심 옷을 걸치는데 한쪽 팔이 유난히 안 들어가서 계속 팔이 허공에서 허우적댔다. 그때 옆 쪽에 앉아 계시던 할머니가 내 쪽으로 몸을 돌리셨다. 다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예민한 상태인데 내가 팔로 몸을 건드렸나 싶어 잠깐 움찔했는데 할머니께서 카디건의 한쪽 소매를 입기 쉽게 정리해서 펴 주셨다. 제대로 입은 후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는 동시에 마음이 참 이상해졌다. 다정하게 옷을 정리해주신 할머니가 한소리 하실 줄 알고 지레 겁부터 낸 내 마음이 한참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얼마 전 수영장에서 급하게 수영복을 입느라 끈이 꼬인 상태였는데 뒤에서 입기 편하게 옷을 늘려주신 할머니가 생각나고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어느 할머니가 "아유 곱다." 하시며 다정한 눈길을 보내주시던 모습도 생각났다. 지하철에서 의자에 앉아 있는 내 앞으로 할아버지가 오시길래 얼른 양보를 했는데 얼마 안 가서 내린다며 고맙다고 인사하시던 점잖은 할아버지도 생각나고 마트에 갔다가 주차장에서부터 무거운 짐들을 끌고 오는 모습을 보며 "내가 좀 들어줘도 괜찮을까요"라며 제일 무거운 걸 힘겹게 들어주시던 할아버지가 생각났다.
중학생이 된 딸이 어릴 때 가입했던 육아카페가 있다. 비공개 카페라 유입되는 회원은 별로 없고 초창기 멤버들이 또래 아이들 키우면서 이런저런 사는 얘기를 나누는 카페인데 그곳에 어느 회원이 배우 박중훈의 방송 출연 동영상을 짧게 올렸다. 박중훈의 모친이 하신 말씀이 자막으로 띄워졌다. '어린아이 너무 나무라지 마라 내가 걸어왔던 길이다. 노인 너무 무시하지 마라 내가 갈 길이다' 마음이 너무 찡했다. 요즘 젊은 엄마들을 맘충이라고 하도 폄하해서 어린아이 키우는 엄마들이 엄청 눈치 본다는 얘기를 들었다. 기저귀를 아무 곳에나 버리고 주변 사람들에 대한 배려 없이 모든 포커스가 아이에게만 맞춰진 철없고 몰지각한 엄마 아빠들도 일부 있다. 그렇다고 해서 어린아이 키우는 엄마를 맘충이라고 싸잡아서 욕하는 것 또한 각박한 시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삐뚤어진 단면이라는 얘기들이 카페 내에서 오고 갔다. 나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태극기 부대, 틀딱이라고 비웃던 의견에 적극 찬성하는 쪽이었다. 지혜로운 어른은 별로 없고 나이만 많은 노인들만 점점 늘어난다고 불평하기도 했다. 내 마음도 참 많이 비뚤어져 있다는 걸 이번 여름 지하철 안에서 처음 느꼈고 그 후 박중훈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정말 많은 반성을 했다.
오늘 친정에 잠시 다녀왔다. 추석에 아빠가 감기 기운이 있다고 절대 집에 오지 말라고 해서 방문을 미루다가 김치 담갔으니 가져가라는 엄마 연락에 김치도 가져갈 겸 겸사겸사 들리게 됐다. 엄마는 김치 담가놓고 볼 일 보러 나가셨고 아빠만 친정집에 계셨다. 오랜만에 만난 아빠 얼굴이 영락없는 할아버지였다. 너무나 마음이 아프고 속상했다. 약속이 있어서 오래 머물지 못 하고 일어서는 내게 반찬 챙겨 먹으라는 말을 반복하시는 아빠를 뒤로 하고 나오는데 만감이 교차했다. 부모가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가는 것도 모르고 그동안 무슨 생각으로 살아온 건지 나 자신이 너무나도 한심하게 느껴졌다. 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제대로 교육받을 기회가 없었고 그들의 부모들에게서 배운 대로 그저 먹고사는 일이 우선이었던 분들이다. 표현 방법이 투박하고 세련되지 못하다고 혹은 고지식하다고 열심히 피해 다닌 나도 나중에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일이다. 내 마음 어딘가에 또 다른 못난 마음 편견이 있는지 다시 한번 잘 살펴보며 살아가야겠다.
요양병원에 계신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우울증이 유례없이 깊어진다고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면회가 아예 제한되는 까닭에서이다. 그렇게 우울하게 계시다가도 자식들 영상통화엔 눈이 반짝거린다는 얘길 들었다. 며칠 전에 지인이 부모님 돌아가시니 모든 게 후회가 된다며 지금이라도 통화 자주 하고 빵 한 조각이라도 맛있는 게 있으면 꼭 사드리고 오라며 내게 이런저런 당부를 했다. 할머니 돌아가신 후 아직까지도 후회하고 있는데 이미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신 부모님이 돌아가신다면 내 마음이 어떨지 상상이 잘 안 된다. 길에서 마주치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피해 다니던 지난날의 나를 반성하며 부모님께 전화라도 자주 드려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