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맛있을까?
국민학교 다닐 때였나? 중학생 때였나
오래전에 외삼촌에게 라면을 끓여준 기억이 있다. 그때 한 젓가락 먹던 삼촌이 깜짝 놀라 했던 게 의아했는데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이유를 알게 됐다. 그땐 라면을 끓일 때 적정량의 물을 넣어야 한다는 걸 몰랐다. 내 손으로 처음 끓인 라면이었는데 냄비에 물을 한강만큼 넣고 끓였었다. 싫은 소리 없이 밍밍한 라면을 끝까지 드셨던 외삼촌께 한 번씩 마음으로 죄송해하고 있다.
결혼 전에 세탁기 대신 맨손 빨래도 했을 정도로 살림에 손 안 대고 산 것도 아닌데 요리는 제대로 배워본 적도 관심도 없었다. 결혼 후 다른 살림은 그럭저럭 하면서도 콩나물 국이라도 끓이려면 한 시간을 넘게 콩나물과 씨름하곤 했다.
남자든 여자든 부모님을 도와 기본적인 살림을 좀 배워놔야 나중에 내 살림을 수월히 하겠구나란 생각을 하면서도 딸아이한테는 전혀 가르치지 않았다. 그 작은 손으로 라면이라도 끓이다가 혹시나 델까 봐 항상 코 앞에 음식을 갖다 주기만 했었다. 아이는 가끔 요리에 관심을 보이긴 했지만 뭐든 엄마가 해줘 버릇 하니 냉장고에 든 음식도 혼자 꺼내서 먹는 일이 없었다. 다른 집 아이들은 초등학생 때 달걀 프라이도 하고 요리 비슷한 것도 만들어 먹는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이젠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그저 생각뿐이었다. 하나뿐인 딸이라 더 그랬을까? 뭘 시키기엔 딸의 시간이 아까웠고 행여나 다칠까 봐 조심하느라 중학교 졸업할 때까지 라면 몇 차례 끓이고 내가 부친 달걀 프라이를 뒤집어 본 것이 딸이 요리에 동참한 전부였다. 그마저도 가스 불은 위험할 것 같아서 전기레인지로 바꾼 후에 시도하게 했다.
그렇게 키운 딸이 고등학교에 입학하니 내 시간이 아주 많이 남게 되었다. 경력이 단절된 지 오래돼서 사회생활을 하고 싶은 바람만 있던 내게 좋은 기회가 생겨 취업을 했다. 출근 횟수가 주 2~3회라 부담이 덜 할 것 같아 용기를 내고 설마설마했는데 덜컥 취업이 돼버렸다.
남편, 아이 모두 응원해줘서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일을 시작하게 됐지만 코로나 시국이 문제였다. 지금은 아이가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하지만 한 달 전까지만 해도 격주로 등교를 했었다. 등교하지 않는 주에 아이 점심이 마음에 걸렸다. 점심 도시락을 미리 만들어 놓으려고 했지만 아이가 스스로 해 먹겠다고 했다. 기껏해야 라면이나 끓여먹겠지라는 생각으로 뜨거운 거 만질 때 조심하라는 주의를 주고 출근을 했다. 바쁜 때가 살짝 지나서 휴대폰을 보니 딸에게 카톡이 와 있었다. 본인이 직접 만든 볶음밥을 보라며 사진을 전송해놨는데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혼자서 해 본 적 없는 달걀 프라이까지 올린 볶음밥을 직접 만들었다는 게 정말 놀라웠다. 아침에 먹고 남은 제육볶음을 김치와 함께 잘라서 만든 딸의 첫 요리였다. 심지어 맛도 있단다. 뿜어져 나오는 기특함과 대견함을 담아 칭찬을 한가득 해주면서도 요리 과정이 너무나 궁금했다.
퇴근 후 물어보니 제육볶음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어 도전해봤다고 한다. 또 잔뜩 칭찬을 해주고 돌아서는데 서운하지는 않냐고 물어본다. 자기가 요리를 척척 해내면 엄마가 좀 서운하지 않겠냐고 물어보니 생각지도 않았던 서운함이 그때서야 약간 올라왔다. 마냥 어린 줄 알았는데 품 안의 자식에 대한 엄마의 역할이 줄어들어가면서 느낄 감정까지 물어볼 줄은 몰랐다. 대학을 가면 학교 근처에서 자취하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길래 콧방귀도 안 뀌었는데 정말 자취한다고 나가면 내 마음이 얼마나 허전할지 미리 서운해졌다.
볶음밥 하나로 만감이 교차하던 그때가 한 달쯤 전이다. 지금은 아이가 일요일에 기숙사로 들어가서 금요일이면 집에 온다. 끼고 살 때는 몰랐는데 아이가 며칠 동안 집을 비우니 내 손 갈 일이 훨씬 줄어들었다. 그런데 별로 서운하지가 않다. 공부하고 휴대폰 그만 보라는 잔소리가 잔소리인 줄 모르고 살아왔는데 아이가 있는 시간에 다시 잔소리를 하려니 갑자기 힘이 든다.
일요일에 남편이 아이를 데려다주려고 나가면 그렇게 홀가분할 수가 없다. 난 그동안 딸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될 때까지 매일 머리를 감겨주고 치실 사용도 대신해주고 모든 흔적을 고스란히 남기고 등교하는 딸 방을 정리하는 게 그렇게 에너지가 훅훅 주는 일인지 몰랐다. 나도 나이가 들어가서 그런 걸까? 친구에게 얘기하니 학교 기숙사에 자녀를 보내는 엄마들이 그런 얘길 하는 걸 몇 번 들었다고 한다.
딸아!!! 자취하고 싶으면 엄마가 적극적으로 말리지는 않을게. 기왕이면 요리도 많이 연구해서 스스로 해 먹어보렴. 그럼 결혼하고 나서 엄마처럼 콩나물과 한 시간 동안 싸울 일은 없을 거야.
엄마도 그 제육 김치볶음밥 한 번 먹어보고 싶다. 그런데 정말 맛이 있었니? 아직도 궁금하긴 하네.
아이는 기숙사에 들어가고 오늘은 출근하는 날이 아니다. 저녁은 스스로 먹겠다는 남편 덕에 아주 오랜만에 브런치에 글을 올려본다. 이제 아이 핑계 대며 게을리했던 일들을 피하기가 어렵게 됐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해가는 딸과 함께 이제 나도 적극적으로 성장하는 삶을 살아서 볶음밥을 자랑하던 딸처럼 멋진 결과물을 자랑하는 엄마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