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댓국에도 행복이 있고, 넘치는 막걸리도 행복이었다
평생직장 퇴직하며 아내가 선물한 차는 벤츠다. 물론 좋은 차다. 하지만 차에 대한 욕심이 크지 않다. 낚시짐 가득 싣고 시골길만 달려주면 되니 힘 좋고 튼튼한 SUV를 사주기 원했으나 아내는 나이에 맞는 차를 타야 한다며 세단을 사줬다. 벤츠는 이미 낚시차가 되어 트렁크를 열면 흙 묻은 낚시도구와 말리지 않아 비린내 나는 살림망이 실려 있다. 아내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차를 사줘 고맙기는 하나 SUV를 사줬다면 더욱 고마워했을 것이다. (눈치 없는 남편은 하지 않아도 좋은 말까지 한다.)
‘요즘 어떻게 지내냐는 친구의 말에 그랜저로 대답했습니다.’라는 광고카피에 등장하는 그랜저는 이제 소나타를 밀어내고 국민차가 되었다. 강남소나타라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벤츠는 포르쉐에 내줬다. 이제는 국산차도 프리미엄급이 등장했으며 포르쉐도 대중화되었다. 페라리나 람보르기니 또는 벤틀리나 롤스로이스 정도 되어야 명차취급을 받는 것이 아닐까? 개성의 시대이니 ‘명차’와 ‘명차 아님’을 구분하는 경계 자체가 없어졌는지 모른다.
차는 튼튼하고 고장 나지 않는 차가 좋은 차다. 색상도 희거나 검은색보다 폐차시킨 은하색차량이 최고였다. 시골길을 달렸음에도 1년 동안 세차하지 않아도 되는 아주 실용적인 색상이었다. 깨끗한 상태로 유지하려다 보면 차의 노예로 전락하게 되어 행복감이 떨어진다. 또한 외제차의 경우 AS Network이 부족해 고장 나면 번거로움이 배가되어 행복감이 떨어진다. 운전기사를 고용하지 못할 형편이라면 식구수와 활용도, 안전을 고려해 차량 크기와 차종을 정하는 것이 행복해지는 방법이다.
발전소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지방(발전소가 위치한 곳은 대부분 奧地(오지))을 떠도니 회사에서 제공하는 사택에 살았다. 일반적으로 나이와 직급이 비례했으므로 장성한 자녀들이 있는 간부직원 사택은 직원들 사택보다 면적이 넓다. 하지만 간부직원 상당수는 혼자 살고 있으니 작은 면적이 실용적이나 팀장, 처장사택은 이미 지정되어 있다.
공기업 지방이전조치로 나주 혁신도시에 이전할 때도 광주에 지정아파트가 있었지만 담당자에게 나주에 있는 작은 아파트나 원룸을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출퇴근 시간이 단축되고 청소하기 쉬운 장점이 있다.
사택담당자 입장에서 보면 이처럼 기준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밉상이다. 후임 처장이 가족동반으로 부임할 수 있고 원룸을 답답해 할 수 있다며 절충한 것이 투룸짜리 오피스텔이었다. 투룸 오피스텔에 입주했으나 청소하기 귀찮아서 방하나는 사용하지 않았다. 손 뻗으면 무엇이든 손에 닿을 수 있었던 오피스텔의 거실에서 원룸처럼 사는 것이 좋았다.
현재 살고 있는 집은 37평이다. 4 식구 살 때는 그리 넓은지 몰랐지만 2 식구로 줄어드니 휑하다. 게다가 요즘 묵은 짐들을 버리고 있는 중이라 계속 넓어지고 있다. 2 식구 살기에는 20평으로 충분하다. 예전에 학교에서 배웠던 내용 중에 1인당 적정 주거평수는 6평이란 내용도 있으니 20평도 넓다. 식구수에 맞춰 평수를 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기름진 음식보다는 동료들과 어울려 먹는 순댓국이 더 맛있고 마음 편했다. 잔잔한 음악이 깔린 곳에서 와인에 스테이크를 써는 것보다 순댓국에 막걸리 한잔하는 것이 취향에 맞는다. 회사 공금으로 먹는 것은 순댓국 수준으로 먹는 것이 합법(김영란법)적이다.
외부 손님들도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내국인은 점심 순댓국, 저녁은 파전과 도토리묵에 막걸리였다. 같이 일했던 식구들에게 맛나고 고급진 것을 먹이지 못해 미안했으나 허위서류 꾸미는 양심저촉사례도 없었고 떳떳함을 선물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본인돈으로 먹는 음식에는 합법과 불법이 없다. 호화스러운 식당에서 세계적인 진미를 맛보는 것이 본인의 행복이며 경제적인 여유가 된다면 그렇게 해도 된다. 동행인이 거북해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애당초 직급이나 직위에 대한 과시욕이 없었다. 보통 부장진급할 때까지 정신없이 일하고 부장이 되면 팀장으로서 팀을 이끌어야 하니 실무에서는 손을 떼는 것이 맞다. 하지만 일복을 타고났는지 처장시절에도 실무에서 손을 떼지 못했다. 망한 부서 또는 신설부서를 담당하다 보니 회사에서 처음 하는 일들이 많았다. 하지만 한 번도 일이 많음을 탓해보지 않았다. 새벽에 나와 일하는 것이 행복했다.
머리 숙이고 다닌다고 상대방이 쉽게 보지 않는다. 오히려 상대방에게 더 대접받고 다녔다. 보이기 위해 머리 숙이고 쓰레기를 주우며 다니지는 않았다.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을 같은 인격체로 인정해 주면 후배들은 빗나가지 않고 따른다. 선배들이나 고객들도 내 속마음을 알아차린 분들은 후원을 해줬지 적어도 해코지는 하지 않았다. 어려움에 처하거나 주위 도움이 필요할 때 알아서 도와주셨다. 그들로 인해 재직기간 내내 행복했고 퇴직 후에도 행복하다.
혹시 반대성향인 분들로 인해 불행한 적이 있지 않았냐고? 물론 있었지만 무시하면 된다.
某(모) CEO의 부정한 지시로 스트레스를 받은 적이 있었지만, ‘당신은 3년 임기, 나는 30년 평생직장’이란 정신승리 공식을 끄집어냈다.
부정한 지시는 이행하지 않고 버티면 된다. 마음에 오래 담고 있는 사람만 손해다. 해야 할 의무만 하고 그들을 무시하고 상대하지 않으면 된다. 이제는 그들의 이름도 생각나지 않는다. 무시하고 마음에 담지 않으니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무엇이 행복이며, 기준점은 무엇인가? 적어도 돈, 지위, 명예가 행복의 기준점이 아닌 것은 확실해 보인다. 돈이 행복의 기준이었다면 우리나라에서는 이재용 회장만 행복하고 지위가 기준이라면 대통령 빼고는 전부 불행해야 한다. 돈, 지위, 명예는 많을수록, 높아질수록 더 집착하게 되며 경쟁하고 싸워야 한다.
순댓국에도 행복이 있었으며, 부서원들과 막걸리잔을 부딪칠 때 흘러넘치는 것이 행복이었다. 명차와 넓은 아파트에 산다고 걱정 없이 행복하기만 할까? 세차를 자주 해야 하며 청소하기 귀찮아 거실에서만 살았더니 오히려 거추장스럽기만 했다. 행복은 그곳에 있지 않고 내 마음속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