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0. 소풍

'귀천'과 '하늘가는 길'

by 물가에 앉는 마음

천상병 시인 (1930.1.29 ~ 1993.4.28.)은 일본에서 태어나 광복 후 경남 마산으로 귀국했다. 서울대 경제학과에 입학했으나 중퇴, 1967년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어 6개월간 고문과 옥고를 겪었다. 고문으로 인해 불임, 정신착란 등의 병을 얻었으며 평생을 가난하게 보냈다.

“귀천”은 1970년 '창작과 비평'에 발표한 시다. 워낙 유명한 시로 한 번쯤은 읽어봤거나, 대중가요로도 불렸으니 알게 모르게 들어봤을 법하다. 대중가요로 만들어진 ‘귀천’은 두 가지 버전이 있다. 이동원 씨가 부른 서정적 느낌의 노래와 장사익 씨가 부른 격정적인 노래가 있다.

시인의 삶이 동심과 천진난만함에 가까웠다고 하나 고문이전의 삶도 그러했는지는 불확실하다. 고문 후유증으로 그의 삶은 산산조각 났을 가능성이 높고 사람들은 시인을 바보라고 불렀다. 궁핍하게 떠돌던 시절, 절도죄로 신고되어 정신병원에 입원하였다. 친구들은 행방이 묘연한 그를 위해 유고 시집을 발간되기도 했다. 그 후 그가 발견되었을 때 약봉지에 써져 있던 시가 귀천이었다고 한다. 결혼하였으며 아내는 생계를 위해 안국동에 찻집이자 막걸리 주막인 ‘귀천’을 열었다.

* 서베를린(서백림)에 거주하던 교민과 유학생들이 동베를린(동백림) 북한대사관 사람들과 접촉하며 이적 및 간첩혐의를 받은 사건이 동백림 사건이었다.

* 그의 삶을 생각하면 서정적 느낌의 이동원 씨 노래보다 피 토하는 듯한 장사익 씨 노래가 어울린다.


귀천(천상병 작시, 장사익 작곡 장사익 노래),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나이 들어 읽어보니 새로운 맛이 있고 아 그렇구나! 하며 무릎을 치게 된다. “‘바보’라는 천상병 시인은 바보가 아니라 천재였구나.”

귀천을 읽으면 장자의 세계를 연상하게 된다. 전지자적 시점에서 보면 인생은 길기도 하고 짧기도 하다. “인생은 마치 준마가 빠르게 지나는 것을 좁은 틈새로 보는 것과 같다.”

좁은 틈새로 준마가 지나갔다. 이제 소풍을 즐긴 후 노을빛 퍼지는 즈음이 되었다. 이 같은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노래는 장사익 씨의 “하늘 가는 길”이다. “하늘 가는 길”을 듣다 보면 “귀천”의 2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작사가도 같은 사람이 아닐까 하는 착각을 하게 된다.


하늘가는 길 (장사익 작사, 작곡, 노래)


간다 간다 내가 돌아간다.

왔던 길 내가 다시 돌아간다.


명사십리 해당화야 꽃잎 진다 설워 마라

명년 봄이 돌아오면 너는 다시 피련마는

한 번 간 우리 인생 낙엽처럼 가이없네


하늘이 어드메뇨 문을 여니 거기가 하늘이라

문을 여니 거기가 하늘이로구나


하늘로 간다네

버스 타고 갈까 바람 타고 갈까

그름 타고 갈까 하늘로 간다네


하늘로 가는 길 정말 신나네요


건강하시던 고종사촌형님 부고를 받았다. 越南(월남) 2세대 중 처음이다. 나이 75세 심장마비, 요즈음에는 빠른듯하지만 가는 순서는 없기에 그리 어색한 연배도 아니다. ‘갑자기 돌아가셔서 당황스럽겠지만, 아프지 않고 고통 없이 가셨으니 위안이다. 그것도 복이다.’ 상주인 조카 귀에 들어오는 이야기는 아니었을 것이다.

인생의 노을이 조금 빨리 졌을 뿐이다. 어찌 즐겁고 행복하기만 했겠냐만은 아름다웠던 소풍이 끝나고 왔던 길 다시 돌아가는 길이 부디 평탄하기만을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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