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좋은 날 되소서
요즈음 손녀 돌보기를 하고 있다. 세 번째 직업이지만 프로페셔널하지 못하고 좌충우돌한다. 아이를 둘이나 길렀지만 보육경험이나 방법이 기억나지 않는다. 매일 술 마시고 다녔던 나는 당연하지만 독박육아를 담당했던 아내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한다. 다른 집을 보면 할머니 혼자 쌍둥이도 보살펴 준다는데 어설픈 초보 둘이 모여 한 명이 해도 될 일을 하고 있다. 2살도 되지 않은 손녀가 시키는 대로 노래도 부르고 춤도 췄었다.
노래 부르고 춤춰야 하는 직장, 호구지책이라면 다니지 못한다. 김영란법 시행이전부터 노래방, 룸살롱을 드나들지 않았다. 드나드는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보스 취향에 맞춰 우르르 몰려다니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용불용설에 따라 사용치 않는 가무 능력은 퇴화되어 음치에다 박치까지 완벽한 능력을 갖췄다.
원치 않는 가무를 시키지만 하루가 다르게 손녀가 커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행복이 생겼다. 게다가 도서관이 바로 옆이라 책 빌려보는 행복도 생겼다. 인터넷서핑을 통해 책 사는 행복을 앗아 갔지만 용돈이 절약된다. 호수공원을 한 바퀴 도는 행복도 생겼다. 분당중앙공원과 율동공원과는 색다른 풍경을 제공한다.
무엇을 해 먹을까 또는 사 먹을까 하는 것은 고민이다. 아내와 외식할 기회가 많지 않았으나 집을 나선김에 외식하는 행복한 고민도 생겼다. 어린이집에서 손녀를 데리고 올 때까지 아내와 오랜 시간 같이 있는 것도 행복이다. 퇴직 후 매일 놀 때는 몰랐지만 주중 휴일을 얻게 되면 엄청 소중하게 느껴진다. 흐르는 시간이 아까워 바쁘게 차려입고는 인근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찾는다.
사실 우리가 행복이라고 이야기하는 것들, 호화주택, 대형차, 기름진 음식, 높은 지위 등으로 치환된 행복, 대부분은 행복이 아니라 욕망이나 탐욕에 가깝다. 행복은 주관적인 것이므로 사실 옳다 그르다를 명확하게 정의할 수는 없다. 또한 모든 욕망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도를 지나치는 욕망은 건강하지 않은 욕망, 탐욕이다.
욕망에는 한계가 없기에 먹어도 먹어도 배고프고 소금물과 같아 아무리 들이켜도 갈증만 난다. 20평짜리 아파트를 사고는 그렇게 행복했었다. 하지만 친구의 30평짜리 아파트를 보곤 불행해져 30평짜리 아파트를 갖기 원한다면 이는 욕망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30평짜리 아파트를 구입해도 40평짜리 아파트를 보면 급 불행에 가까워질 가능성이 높다. 비교하기 시작하고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기 시작했다면 불행의 문이 활짝 열린 것이다. 넓은 아파트를 볼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는다.
20평짜리 아파트에서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다가 아이들이 커감에 따라 열심히 일하고 저축하여 30평짜리 아파트를 취득하는 과정은 쉽지 않다. 먹는 것, 입는 것, 노는 것을 몇 년간 줄여야 하는데 그 과정을 행복하게 여긴다면 30평짜리 아파트를 꿈꾸는 것 자체도 행복으로 변한다.
얼마 전 아내와 커피 먹을 때 사용하는 머그컵을 사러 그릇 아웃렛에 갔다. 인터넷에서 만원정도되는 ‘시라쿠스’ 머그컵이 아내가 원하는 색상과 디자인이었다. 마음에 드는 색상이 없어 인터넷으로 구입하기로하고 대중적인 포크를 몇 개 구입하곤 만족해했다.
일반적으로 아웃렛은 유명브랜드이나 한철 지난 상품을 팔기에 품질은 높고 가격이 헐한 것이 장점이다. 잘 고르면 취향에 맞는 상품을 좋은 가격에 구할 수 있다. 창고형 매장에는 저가부터 고가까지 그릇, 냄비, 수저가 가득했다.
해외 유명브랜드의 냄비, 압력솥 등이 40% 정도 할인된 가격이지만 3~40만 원을 호가한다. 그래도 주물로 만든 제품이며 성능이 검증된 것이니 그런대로 수긍할만한 가격이다. 그러나 눈이 의심되는 가격표를 봤다. 직경 30Cm 정도 되는 에르메스(Hermes) 타원형 접시 2개 가격이 159만 원이다. 4인가족 한 세트 가격인 줄 알았다. 할인된 가격이니 아마도 할인전에는 200만 원 이상 하지 않았을까 싶다. 접시 한 개에 백만 원!
밥그릇, 국그릇, 접시... 부부가 간단한 식사를 하기 위해서는 1000만 원 이상의 식기를 식탁 위에 깔아야 한다. 그릇이 깨질까 걱정되어 밥 먹는 행복을 누릴 수나 있을까? 에르메스 접시에 김치와 콩나물무침을 올려놓는 것이 어울릴까? 에르메스 접시에는 어떤 음식이 어울릴까? 물론 에르메스보다 비싼 高價(고가)의 식기도 있겠으나 팔리니까 에르메스 접시도 진열대에 올랐을 것이다.
에르메스접시에 스테이크 먹는 사람 앞에서 양은냄비에 끓인 라면을 맛있게 먹는다면, 행복하고 즐겁게 살 수 있는 경지라고 생각한다. 부자 앞에서도 당당함을 잃지 않는다면, 상사나 권력자에게 직언을 할 수 있다면, 미천한 능력이지만 자부심을 갖고 있다면 행복의 기준을 낮춰도 무방하다.
만약 당당함을 잃는다면, 직언을 망설인다면, 자존감이 떨어진다면 행복이 아닌 욕망의 기준을 높여야 행복해진다. 당당함을 잃는데도 행복의 기준을 낮춘다면 불행해지고 위선적이 된다. 하지 마라.
의도적으로 행복에 대한 기준을 낮췄고 관점을 바꿨다. 샐러리맨에게 진급이란 커다란 행복이지만 퇴직할 때까지 3~4번뿐이다. 진급에만 목을 매면 10년에 한 번밖에 행복하지 못하다. 출근이 행복이라면 매일이 행복이고 일주일에 5번이나 행복하다. 스테이크가 아닌 순댓국이 행복이라면 매일도 가능하다. 평수 작은 아파트라도 반겨줄 사람이 있다면 퇴근도 행복이다.
당나라 운문스님은 사람들에게 ‘日日是好日(일일시호일)’ 즉 ‘날마다 좋은 날 되소서’라고 말했다 한다. 매일매일 아니 시시각각 좋은 순간이 되려면 행복에 대한 기준을 더욱 낮추거나 기준 따위를 없애버리면 된다.
오늘은 산책길에 버들강아지에 핀 노란 꽃을 보았다. 아직 바람이 차가워도 본격적인 봄을 알리는 기쁜 소식이니 행복이다. 아내도 노안이 찾아와 초점을 맞춰 자세히 봐야 보인단다. 버들강아지 꽃은 좁쌀보다 작아 돋보기로 봐야 할 정도다. 이럴 때는 문명의 이기를 사용해야 한다. 핸드폰 촬영 후 확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꽃에도 행복이란 글자가 써져 있다.
이미 행복한 삶을 살고 있지만 보이지 않아서 혹은 무심코 지나쳐서 행복하지 않을 수 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한술 더 떠서 ‘자기가 행복하다는 걸 모르기에 불행하다’고 했다. 잘 보이지 않는 소소한 행복을 찾아보면 행복이 보인다.
경우에 따라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 행복일 수 있다. 원하는 대학과 직장에 합격하는 것 권력을 얻는 것도 행복일 수 있다. 주관적인 것이니 사람마다 다르고 강도 또한 다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행복은 强度(강도)가 아니라 頻度(빈도)다’라는 문장의 의미를 깨달은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